1980년대, 쌍문동 사람들 [허영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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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쌍문동 사람들

2016.01.12


30년 전의 쌍문동 주택가를 떠올립니다, 슬레이트 지붕의 단독 가구들 옆으로 규격형 연립주택이 나란히 들어서 있던 서울 북쪽의 변두리 지역. 의정부와 동두천으로 향하는 간선도로를 조금 벗어나 주변에는 아직 띄엄띄엄 논밭이 남아 있었고, 골목길과 개천가에는 연탄재나 쓰레기가 버려져 있는 모습이 그리 낯설지 않은 동네였습니다. 서울이 자꾸 팽창하면서 외지인들의 유입이 갑자기 늘어나던 시절, 1980년대 쌍문동의 어설픈 풍경입니다.

쌍문동만이 아닙니다. 북한산 기슭의 우이동 정도를 제외하고는 미아동이나 수유동, 창동, 번동, 방학동 등 주변 지역의 모습이 거의 다르지 않았습니다. 주택 수요가 늘어나면서 곳곳에 들어섰던 벽돌공장들이 이미 더 외곽지역으로 빠져나가기는 했지만 가끔씩 모래 알갱이나 석탄가루가 섞인 먼지바람이 불어오기는 매한가지였습니다. 요즘 한창 시청률을 올리며 종영을 앞두고 있는 ‘응답하라, 1988’ 드라마의 배경이 바로 그 시절의 쌍문동입니다.

가진 것 없이 연립주택에 오밀조밀 세 들어 살던 이웃들. 그래도 명절이면 음식을 나누며 서로 정을 주고받던 사람들이었습니다. 빨랫줄도 같이 쓰는 바람에 널어놓은 양말이나 속옷이 뒤바뀌는 것도 예사였다고 하지요. 그런 가운데서도 청소년들은 저마다 미래의 꿈을 키워가던 때였습니다. 최근 텔레비전 드라마로는 드물게 중년층 세대까지 폭넓게 포함하여 상당한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어렵게 지냈던 지난날의 향수 때문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드라마에서 엿보이듯이 중산층 동네라고 하기에도 약간은 떨어진 지역이 아니었던가 싶습니다. 우리 경제의 급속한 성장세를 타고 강남 지역이 개발 바람을 주도하던 시절이었으니까요. 곳곳에서 부동산 열풍이 불어도 이 일대는 조용하기만 했습니다. 어떻게 보면 당시 서울에서 그렇고 그런 지역의 하나였습니다. 쌍문동이 아니라 다른 변두리 지역을 배경으로 설정했더라도 드라마 전개에 큰 차이가 없었을 것으로 여겨지는 것이 그런 때문입니다.

하지만 쌍문동은 그중에서도 유별났습니다. 1980년대를 보내고 1990년대 중반까지도 서울에서 대기오염이 가장 심한 지역이었습니다. 미세먼지나 오존주의보가 발령될 때마다 빠지는 법이 없었지요. 심지어 쌍문동에 내리는 눈과 비에서는 신맛이 느껴질 정도라는 게 환경부의 발표였습니다. 산성도가 높은 탓이었습니다. 구로동이나 성수동, 문래동, 화곡동 등이 번갈아 포함되는 가운데서도 쌍문동은 단골로 꼽히곤 했지요. 그만큼 생활환경이 열악했다는 뜻입니다. ‘흙수저’ 동네였다고나 할까요.

그런 가운데서도 쌍문동 친구들이 저마다 고민하면서 꿈을 이루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다는 스토리 전개가 마음에 와 닿습니다. 그중에서 누구는 의사가 되었고, 비행기 조종사가 되었고, 가수나 스튜어디스가 되었을 것입니다. 사법시험에 합격해 변호사가 된 경우도 없지는 않을 겁니다. 드라마 속의 얘기가 아니라도 그런 식으로 지내 온 것이 그동안의 우리 모습입니다.

그때라고 권력층이나 부유층으로 대변되는 ‘금수저’ 계층이 왜 없었겠습니까마는 이 세상이 꼭 그들만의 독차지가 아니라는 사실을 쌍문동 친구들은 보여줍니다. 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은 것이 변변치 않다고 해도 자신이 노력하기에 따라서는 얼마든지 꿈을 이룰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드라마 속의 얘기를 현실에 대입하는 것이 가능하지도 않고 경우에 따라 무척 위험한 일이기도 합니다만 이 설정이 눈길을 끄는 것은 그때의 상황을 매우 사실적으로 표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이 세상에는 금수저들만 있는 것도 아닙니다. 어려움에 처할 때마다 자신이 흙수저라고 신세를 한탄하기 쉽지만 그보다 더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이 얼마든지 있다는 점을 깨달아야 합니다. 실제로 우리 주변을 돌아보면 흙수저는커녕 맨손가락을 빨면서 자라나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갈수록 우리 사회의 빈부격차가 심해진다고 하는 만큼 흙수저 계층도 늘어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한편으로는, 지금 금수저 계층에 올라선 사람들 가운데는 과거 쌍문동 친구들도 상당히 포함돼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인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쌍문동 친구들이 아니라 누구라도 마찬가지입니다. 화려한 성공 스토리 뒤에는 남모르게 흘린 눈물자국이 있었을 겁니다. 물론 노력한다고 해서 누구나 성공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자기 노력에 따라서는 적어도 흙숟가락 신세만큼은 충분히 면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마치 복권에 당첨되듯이 단번의 노력으로 성공을 거머쥐겠다는 생각이 더 위험할 수도 있습니다.

지금은 과거보다 자수성가의 기회가 상당히 줄어들었다고들 개탄합니다. 개천에서 용이 나기 어렵다는 것이지요. 그런 지적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한숨만 쉰다고 해결될 일이 아닙니다. 앞으로도 이런 추세가 더욱 지속될 가능성이 큽니다. 그럴수록 인생의 금수저를 얻으려면 소질과 능력에 맞는 각자의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지난날 쌍문동 친구들이 어려운 환경에서도 열심히 앞날을 개척해 나가던 모습이 하나의 해답입니다.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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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허영섭

이데일리 논설실장. 전경련 근무. 경향신문과 한국일보에서 논설위원 역임. '일본, 조선총독부를 세우다', '대만, 어디에 있는가', '영원한 도전자 정주영' 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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