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사라진 과학계 별들] 홀로 연구해 노벨상까지 탄 ‘리처드 헤크(Richard Fred He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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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마다 마지막 과학카페에서 필자는 ‘과학은 길고 인생은 짧다’라는 제목으로 그해 타계한 과학자들의 삶과 업적을 뒤돌아봤습니다
2015년도 한 해도 여러 저명한 과학자들이 유명을 달리했습니다. 이번에도 이들을 기억하는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과거와 마찬가지로 과학저널 ‘네이처’와 ‘사이언스’에 부고가 실린 과학자들을 대상으로 했습니다. ‘네이처’에는 ‘부고(obituary)’, ‘사이언스’에는 ‘회고(retrospective)’라는 제목의 란에 주로 동료나 제자들이 글을 기고했는데 이를 바탕으로 했습니다.
올해 ‘네이처’에는 18건, ‘사이언스’에는 4건의 부고가 실렸습니다. 두 저널에서 함께 소개한 사람은 두 명입니다. 두 곳을 합치면 모두 20명이나 되네요. 이들을 사망한 순서에 따라 한 사람씩 소개합니다.
리처드 헤크(Richard Fred Heck,1931. 8.15 ~ 2015.10. 9)
홀로 연구해 노벨상까지 탄 유기화학자
리처드 헤크 - 델라웨어대 제공
요즘 청년실험은 지구촌의 문제다. 그런데 막상 어렵게 취직을 해도 1년 내 이직률이 30%에 이른다고 한다. 직장 내 상사와 갈등이나 업무 불만(주로 단순 반복 작업)이 주된 이유라고 한다.
그런데 막상 신입사원이 “하고 싶은 거 마음대로 해라. 대신 당신 혼자서” 같은 말을 들어도 꽤 당황스러울 것이다. 지난 10월 9일 84세로 타계한 리처드 헤크(Richard Heck)는 바로 이런 상황에서 홀로 연구에 몰두해 놀라운 업적을 낸 화학자다.
미국 매사추세츠주 스프링필드에서 태어난 헤크는 UCLA 화학과에서 학부와 대학원을 다녔다. 스위스연방공대에서 박사후연구원을 했고 1956년 화학회사 헤라클레스사에 취직했다.
2년이 지난 어느 날 연구소장이 부르더니 바로 앞의 말을 했다. 당황한 헤크는 곧 정신을 차리고 광범위한 문헌조사에 들어갔고 전이금속을 촉매로 한 화학반응을 연구하기로 했다.
이해 헤크는 팔라듐촉매를 이용해 상온에서 두 작은 분자가 탄소-탄소 결합으로 하나의 큰 분자를 만드는 반응에 처음으로 성공했다. 이전까지는 이런 반응을 하려면 열을 가하거나 용액을 강한 산성으로 만들어 얌전한 탄소 원자도 반응할 수밖에 없는 조건이 필요했다. 그 결과 에너지도 많이 들고 불순문도 많이 나와 환경 문제도 있었다.
헤크는 전이금속인 팔라듐이 분자에 다가가면 접촉하는 탄소의 반응성이 높아진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여기에 에틸렌 같은 올레핀(이중결합이 있어 약간 불안정한 탄소가 있는 분자)를 넣어주자 팔라듐을 매개로 두 분자의 탄소 원자 사이에 반응이 일어났던 것. 이 방법을 쓰면 벤젠과 에틸렌을 결합시켜 스티렌을 쉽게 만들 수 있다. 스티렌을 줄줄이 연결하면 플라스틱 폴리스티렌이 된다.
1968년 저명한 학술지인 ‘미국화학회저널(JACS)’에 헤크 단독저자의 논문 일곱 편이 줄줄이 실리면서 화학계가 깜짝 놀랐고(‘도대체 헤크가 누구야?’) 덕분에 1971년 헤크는 델라웨어대로 자리를 옮겼다. 헤크 교수는 이 업적으로 2010년 노벨화학상 수상자로 선정됐는데, 한 인터뷰에서 “사실 연구를 거의 혼자서 했다”며 “혼자 일하는 스타일이어서가 아니라 당시 그런 여건이었다”고 설명했다.
1989년 헤크 교수는 아직 한창 일할 나이인 58세에 은퇴하고 아내 소코로의 나라인 필리핀으로 떠났다. ‘네이처’ 11월 19일자에 부고를 쓴 캐나다 퀸스대 빅터 스닉쿠스 교수는 글 말미에 헤크 교수와의 특이한 인연을 소개했다. 즉 2006년 헤크에게 연락해 과거 헤크가 했던 코발트 촉매 실험법을 전수해달라고 수개월 일정으로 초빙한 것. 17년 만에 현장에 복귀한 헤크는 매일 아침 8시에 실험실에 출근했고 당황한 대학원생들은 그보다 더 일찍 나오느라 고생했다고 한다. 헤크는 “필요한 정보는 모두 다 얻어야 한다”며 학생들에게 각종 분석기기의 사용법과 데이터 해석법을 가르쳤다고 한다.
2010년 노벨상 수상 뒤에도 헤크는 미국으로 돌아가지 않았고 2012년 필리핀인 아내가 먼저 세상을 떠난 뒤에도 여전히 필리핀에서 살다가 마닐라에서 별세했다. 모르긴 몰라도 그는 화학보다 아내를 훨씬 더 많이 사랑했던 것 같다.
※ 필자소개
서울대 화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LG생활건강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했으며, 2000년부터 2012년까지 동아사이언스에서 기자로 일했다. 2012년 9월부터 프리랜서 작가로 지내고 있다. 지은 책으로 『강석기의 과학카페』(1~4권, 2012~2015),『늑대는 어떻게 개가 되었나』(2014)가 있고, 옮긴 책으로 『반물질』(2013), 『가슴이야기』(2014)가 있다.
강석기 과학칼럼니스트 sukkikang@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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