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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조선’ 탈출의 지름길
2016.01.05
‘헬(hell)조선’이라는 단어가 새삼스레 부상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생활이 고된 것은 사실이지만 본 적이 없는 지옥에 우리가 사는 현실을 비유한다는 것은 너무 자학적이라고 봅니다. 지옥이 희망을 잃은 땅을 뜻한다면 OECD 최고의 자살률, 연애·결혼·취업에 인간관계와 꿈까지 모두 일곱 가지를 포기했다는 ‘7포 세대’, 평균 연봉 1억 원의 어떤 대기업 근로자와 거리로 내몰리는 비정규·일용직의 근로 양극화, 몇 년 만에 거의 다 무너지는 자영업자, 걸핏하면 도심에서 굿판을 벌이는 시민단체들의 일탈이 이를 상징하는 것일까요. 우리 사회의 암울한 단면을 들자면 끝이 없을 것입니다.‘한강의 기적’으로 칭송받던 이 나라는 왜 이렇게 미래를 잃고 노쇠한 일본에게도 뒤지는 혼미한 저성장 경제의 늪에서 허우적대는 것일까요. 다급한 정부는 국민들이 경기 상승을 실감하려면 물가가 좀 올라줘야 할 것이기 때문에 물가상승률까지 포함된 경상성장률을 경제 관리 지표로 쓴다며 올해 물가상승률을 1.5퍼센트로 하겠다고 합니다. 2015년 소비자 물가는 0.7퍼센트로 너무 안 올랐다는 것이죠. 수긍 못 할 국민이 많겠습니다. 담배 한 갑은 2,500원에서 4,500원으로, 서울 지하철과 시내버스 기본요금은 카드 기준 1,050원에서 150~200원 올랐습니다. 0.7퍼센트를 안 넘은 게 드물죠. 농촌경제연구원은 지난 연말 장바구니로 소비자가 체감하는 물가가 12.2퍼센트 올랐다고 발표했습니다. 그럼 서민에게 가장 고통스런 전월세는요. 웬만한 수도권 지역의 중형 아파트는 2년의 전세 기간 사이에 수천만 원 이상 억대까지 올랐습니다. 그런데도 물가가 1퍼센트 미만 올랐다고요? 전세는 물가통계의 비중에서 담뱃값보다도 낮다고 합니다. 오르는 전세금을 감당하지 못해 주변부로 밀려나는 전세 난민의 대열이 꼬리를 뭅니다. 탈 서울은 30~40대가 주도하고 있고 서울시 인구는 곧 1,000만 명을 깰 것이라고 합니다. 주택의 문제는 밥이나 옷과 다르죠. 먹고 입는 거야 아무 데서나 되지만 집은 가정의 삶의 질, 정서와 연결되는 뿌리인데 광복 70주년이 되도록 주택의 문제는 해결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전세 가격 폭등이 쓰나미처럼 몰려왔는데 새로운 주거 형태는 소유가 아닌 이용이라며 ‘전세가 비싸면 월세 살면 되지 않아’ 하는 식으로 한가롭게 ‘뉴스테이’를 찬양합니다. 오늘의 전세난은 정치인들이 부자아이들에게까지 주는 무상급식, 무상보육 등 굉음을 내고 파열 중인 지속 불가능한 포퓰리즘에 홀려 정책의 우선순위를 대충대충 훑은 탓이라고 봅니다. 성장 없는 낭비의 참담한 결과이기도 합니다. 수도를 쪼개 공무원 1만 명이 근무하자고 22조 원을 들이는 세종시는 낭비와 비효율의 상징이죠. 그럴 돈이면 서민 주택 수십만 채를 쉽게 건설하거나 신성장동력 발굴에 집중 투자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전두환 대통령 시절 도입하여 주택 임차인의 권리 보호에 신기원을 기록한 주택임대차보호법의 정신을 살렸다면 전세 기간을 현행 2년에서 3년으로 연장하거나 계약갱신청구권을 도입한다든가, 전세 인상률을 물가와 연동하거나, 전세가를 매매가의 일정 비율 이하로 막아 깡통 전세를 예방한다든가 하여 민생을 다각적으로 보살필 궁리를 해야 했건만 정치인들은 전 전 대통령의 격하에만 열을 올렸을 뿐, 정쟁에 골몰했습니다. 정부는 경기를 북돋는다고 투기하기 좋도록 여러 가지 규제를 풀어 집값을 부추겼고 무주택자에게는 빚을 내서 집을 사라고 재촉해 실제로 불안한 전세를 피해 능력 밖의 집을 구입하고 보니 가계 부채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처럼 1,200조 원대로 폭증했죠. 물가가 안 올라서 경기가 안 좋은 게 아닙니다. 물가가 안 올라도 소비가 늘면 되는데 대출받아 오른 전월세금을 집주인에게 안겨준 사람들은 더 검소하게 생존하는 길 외에는 방법이 없죠. 월 소득 대비 임차비용 지출(RIR)은 작년말 현대경제연구원의 조사 결과 2014년 기준으로 24.2퍼센트였는데 임차인들은 14.9퍼센트가 적당하다고 보았습니다. 그러니 주거비 부담으로 소비를 줄였다는 응답이 절반 가까이 되는 것입니다. 다른 입법 태업도 그렇지만 무주택 서민과 중산층의 삶의 질이 전월세의 폭등으로 중대하게 위협받는 상황인데도 음풍농월하는 정치권에게 강력한 징치(懲治)가 필요합니다. 무능과 부패에 민생 입법마저 외면하는 최악, 최저질의 19대 국회의원들은 전원 퇴출시킨다는 비장한 결의가 필요할 판국입니다. 이렇게 국민을 철저히 능멸하는 국회의원들에게 4월 13일 20대 총선거에서 투표자의 힘이 얼마나 무서운가를 증명해줍시다. 그것이 ‘헬조선’ 탈출의 지름길일지 모릅니다.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자유칼럼그룹은 특정한 주의나 입장을 표방하지 않습니다.
필자소개
김영환
한국일보, 서울경제 근무. 동유럽 민주화 혁명기에 파리특파원. 과학부, 뉴미디어부, 인터넷부 부장등 역임. 우리사회의 개량이 글쓰기의 큰 목표. 편역서 '순교자의 꽃들.현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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