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기 습관’의 노예 되기 [방재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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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 습관’의 노예 되기

2015.12.25


저물어가고 있는 을미년(乙未年)을 보내며 이런 저런 상념에 잠겨보다가 문득 ‘습관’에 대한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인간은 자신이 가진 ‘습관의 노예’라는 말이 있는데, 이는 좋은 습관에 길들여지기에 따라 삶의 색깔이 바뀔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재직 시절 ‘생로병사의 비밀’이란 교양과목 강의 시간에 좋은 습관 들이기의 하나로 걷는 습관에 대해 자주 이야기하곤 했습니다. 그것은 자신의 건강을 위해 별도의 운동을 하지 않는 사람들에 대한 생활지침의 하나로 하루에 30분 이상씩 1주일에 5회 이상 걷는 습관을 만들어보라는 것입니다.

그에 곁들여 습관 들이기 대한 ‘21일의 법칙’도 이야기합니다. 21일의 법칙이란 자기주도 학습법의 창안자로 잘 알려진 중앙대 정철희 교수의 '21일 공부모드'란 책에 있는 내용으로 우리 뇌는 충분히 반복되지 않은 일들에 저항하기 때문에 좋은 습관에 길들여지려면 21일간 의식적으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우리 몸의 생체시계(biological clock)가 교정되기 위해서는 최소한 3주 정도가 소요되기 때문입니다.

21일의 법칙과 더불어 좋은 습관을 간직하고 실행하려면 자신이 길들이려 하는 행동과 습관을 친한 사람들에게 공개하라고 합니다. 그러기가 어려우면 잘 적는 사람이 성공한다는 ‘적자생존’의 룰에 따라 언제든 다시 돌아볼 수 있게 기록으로 남겨 놓는 습관을 가져보라고 이야기합니다.
 
세월이 무척이나 빠르게 흘러 내 일상에서 걷기를 습관화하기 위해 매일 걸은 내용을 적어온 것이 내년이면 벌써 7년째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걷기 기록을 시작하고 나서 몇 달이 지난 다음 나 자신과 한 약속 이행 여부를 확인해보기 위해 4주일간의 기록을 점검하며 써놓은 특이한 걷기 일화를 옮겨봅니다. 
 
아침에 집 주변 공원을 50분간 산책을 하고 출근한 날이었다. 연구실에 나와 지난 4주 동안 걸은 기록을 살펴보니 30분 이상 걸은 날이 21일로 주 당 평균 5일 이상이 되어 기분이 좋았다.

오후에 친한 친구의 모친상 연락을 받고, 저녁 시간에 대학원 수업이 있는 날이라 수업을 마치고 법동(대전시)에 있는 병원의 장례식장으로 조문하러 갔다. 늦은 시간이라 친구들은 이미 귀가하고 없어 조문을 마치고 바로 장례식장을 나서며 시간을 보니 9시 30분이다. 택시를 타고 귀가할까 하다가 문득 오래전에 동부터미널에서부터 학교까지 걸었던 생각이 떠오르며, 집까지 걸어서 가보자는 마음이 들었다.

걷기 시작한 보도가 대로 옆이라 차들이 달리는 소리가 크게 들리고, 가로등도 제대로 밝혀져 있지 않아 걷기에 그리 좋은 조건은 아니었다. 그러나 발길을 옮기며 평소 걸을 때처럼 그동안 소홀했던 일들, 미진했던 일들을 하나씩 떠올리며 걷다보니 나름대로 많은 정리가 되는 느낌이 들었다.

한참을 걸어 대전 ‘정부청사역’ 입구에 도착해 시계를 보니 10시 30분이다. 한 시간을 걸었으니 평소 10분에 1Km 속도로 걷는 것을 감안해 보면 약 6Km를 걸은 셈이 된다. 더 걸을까 말까 망설이다가 오늘은 여기까지 걷고 다음 기회에 청사역부터 집까지 걸어보자는 마음으로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향했다. 집에 도착해 샤워를 하고 나니 약간 피곤하기는 했지만 ‘걷기 습관’을 실행했다는 생각이 들며 기분은 무척이나 상쾌했다. 
  
그로부터 며칠 지난 어느 일요일 아침이었다. 낮에 걸을 요량으로 아침에 산책을 하지 않고 연구실에 나와 그간의 밀린 일들을 정리하고 있는데, 휴대폰에 평소 가깝게 지내고 있는 동료의 장인상을 알리는 문자 메시지가 뜬다. 언제 조문을 갈까 생각하다가 저녁에 문상을 갔다가 다시 걸어서 귀가할 마음으로 학생들의 리포트와 논문 자료 점검 등 밀렸던 일들을 정리하고, 저녁 5시경 연구실을 나서 지하철을 타고 충남대병원의 장례식장으로 향하였다. 

문상을 마치고 병원을 나서며 시간을 보니 8시 10분이었다. 장례식장에서 ‘서대전네거리역’으로 향하며 집까지 걸을 생각을 하는데, 문득 지난번에 법동에서 집까지 걸으려다 ‘정부청사역’까지 1시간 걸었던 일이 떠올랐다. 기회가 생기면 다시 집까지 걸어야지 하고 마음먹었던 터라 청사역에서 내려 걷기로 작정을 하고 지하철을 탔다. 지하철 안에서 평소 하고 싶은 일들을 계속 마음에 담고 있으면 이루어지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며 피식 웃음이 흘러나왔다. 

청사역에서 내려 걷기 시작하며 옆을 보니 집 근처에 있는 월드컵경기장까지 5.1Km라는 표지판이 눈에 들어왔다. 평소 걷는 속도면 집까지 1 시간 안에 가리라 생각하며 걷기 시작했다. 35분이 지나 충남대 정문에 도착했으니 걸은 거리는 약 3.5Km 정도로 추정된다. 계속 걸어 월드컵경기장을 지나 집에 도착해 시간을 보니 1시간 5분을 걸었다. 오늘의 걷기 목표를 초과 달성해 기분이 좋은 것은 물론 지난번에 집까지 계속 이어 걷지 않고 청사역에서 지하철을 타며 가졌던 아쉬운 마음도 풀어지며, 다시 ‘걷기 습관’의 노예가 된 기분 좋은 하루였다. 
  
고혈압, 당뇨병, 암 등 생활습관에서 비롯되고 있는 우리나라 5대 질병의 예방을 위해 길들여야 하는 중요한 습관으로 금연과 자신에 맞는 운동이 꼽히고 있습니다. 요즘 금연 운동이 우리 사회의 주요 이슈로 대두되어 사회 전반에서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는 것도 그와 연계되어 실행되고 있는 것입니다. 

운동 중에서 우리가 가벼운 운동으로 인식하고 있는 '걷기'의 효과는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건강 유지를 위해 1주일에 5일, 하루 30분 이상 걸으라는 ‘기적의 걷기 치료법 530’이란 말도 있습니다.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TIME)’에 “뛰지 말고 걸어라(Walk, Don’t Run)”는 제목의 기사가 실린 적이 있습니다. 이는 장시간 걷는 운동이 강도는 낮지만 단시간 동안 달리는 고강도 운동보다 효과가 높기 때문입니다. 세계보건기구(WHO)도 걷는 습관이 각종 성인병의 예방과 치료에 도움을 줄 수 있는 필수운동이라고 제안하며, 매일 30분 이상 걷기를 권하고 있습니다.

꾸준히 걷는 것이 건강에 좋다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계획을 세워 실천에 옮기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도연명(陶淵明)은 권학시편(勸學詩篇)에서 '세월부대인(歲月不待人; 세월은 사람을 기다려주지 않는다)'이라고 했습니다. 이제 병신년(丙申年)을 맞이하여 습관 들이기 대한 ‘21일의 법칙’을 생각하며, 가족이나 이웃과 함께 ‘걷기 습관’의 노예 되기 운동에 동참해보세요.

필자소개

방재욱

양정고. 서울대 생물교육과 졸. 한국생물과학협회, 한국유전학회, 한국약용작물학회 회장 역임. 현재 충남대학교 명예교수, 한국과총 대전지역연합회 부회장. 대표 저서 : 수필집 ‘나와 그 사람 이야기’, ‘생명너머 삶의 이야기’, ‘생명의 이해’ 등. bangjw@cnu.ac.kr

게스트칼럼 / 이정원

‘할머니 표’ 쌀밥


“할머니, 이 밥 할머니가 지으신 거예요?”
“응, 근데 왜?”
“맛있어서요.”

어제저녁 5시 반경 아내와 15살 된 큰손자가 주고받은 식탁 위 대화 내용입니다.
아내가 손자한테 그 이유를 물어보니 다음과 같은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응, 그게요… 도우미 할머니가 차려준 밥보다 맛이 있어서요.”

아들네가 어제저녁부터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에서 함께 임시 기숙을 하게 되었습니다.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를 팔고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 같은 동의 1층 집을 샀는데 새로 수리를 해서 들어오려고 한 2주 동안을 우리 집에서 같이 생활을 하게 된 것입니다. 어제가 그 첫날이었고 아내는 묵은 밥이 있는데도 일부러 아들네 식구가 먹을 밥을 새로 지었습니다. 손자는 학원을 가야 하기 때문에 혼자서 먼저 밥을 먹게 되었고 아내는 밥 먹는 손자 모습을 보려고 옆에서 턱을 괴고 앉아서 지켜보다가 "밥이 맛있다"는 손자의 칭찬을 듣게 된 것입니다. 
 
아들 내외는 맞벌이를 하는 대학 교수입니다. 그래서 며느리가 집안 살림을 할 수 없기 때문에 도우미를 쓰고 있습니다. 오후 3시경 출근하는 도우미 할머니가 집안 청소와 빨래 등을 하다가 저녁때 하교한 두 손자들에게 학원에 가기 전 5시 반쯤 새로 밥을 지어 먹이면 아이들은 허겁지겁 밥 한술을 뜨고 학원으로 갑니다. 똑같이 새로 지은 쌀밥을 먹었는데 할머니가 지은 쌀밥이라고 특히 맛있을 리는 없습니다. 아마도 큰손자는 오랜만에 할머니가 직접 지어주는 쌀밥을 먹다 보니 평소 먹던 밥맛과 다른 맛을 느꼈음에 틀림없습니다. 할머니 손맛이 밴 정성스러운 밥맛에다가 할머니가 쏟는 가없는 손자 사랑을 함께 먹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그 새로운 쌀밥의 느낌을 제 할머니에게 말한 것이겠지요. 예부터 김장 맛, 장맛은 여인의 ‘손맛’에서 나온다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나는 충남의 한 깡촌에서 나고 자라 중·고등학교 시절에 고향에서 농사를 지으시는 할아버지 밑에서 학교를 다닌 적이 있습니다. 50년대 시절이니 1인당 국민소득 60불도 채 안 되는 가난 속에서 자라야 했고, 누구나 그랬듯이 여름철에는 꽁보리밥을 먹고 가을이나 되어야 귀한 쌀밥을 먹게 되었습니다. 가을철이면 꿈속에서도 쌀밥 먹는 꿈을 꿀 정도였고 일요일 날 누렇게 익은 벼 사이로 메뚜기를 잡으러 뛰어다니면 곧 먹게 될 쌀밥 생각에 꿀꺽 침을 삼키곤 했던 시절이었습니다.

실제로 그 어려웠던 시절에는 벼 익는 소리가 꿈결에 들리는 듯했습니다. 추수 때가 되어 바심하는 날 햇살로 지은 고봉밥을 눈앞에 두면 좌르르 기름기 흐르는 고슬고슬한 쌀밥에 뱃속에 있던 회가 동할 지경이었습니다. 다른 반찬이 없어도 간장이나 고추장에 쓱싹 비벼 먹으면 밥 한 그릇을 더 얹은 듯이 수북했던 고봉밥이 게 눈 감추듯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졌습니다.

지금은 임금님 표 여주 쌀이니, 김포 쌀, 담양 쌀, 김제 쌀, 오대산 쌀 등 전국적으로 입맛 나는 유명한 쌀을 골라 사서 먹을 정도지만 그 당시에는 쌀에도 이름이 있는 줄을 몰랐습니다. 아니 없었던 듯싶습니다. 다만 찹쌀과 멥쌀의 구분이 있었을 뿐입니다. 쌀이면 다 똑같은 줄 알았던 시절이었고, 또 설령 그런 구분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런 걸 골라 먹을 만큼 여유가 있지도 않았습니다. 그냥 쌀밥이면 최고의 밥이었습니다. 아니 보리밥이라도 배불리 먹는 게 소원이었을 만큼 농촌 살림은 어려웠습니다. 오죽하면 5·16 군사 쿠데타의 혁명공약(포고문) 네 번째에 ‘절망과 기아선상에서 허덕이는 민생고를 시급히 해결하고…’라는 구호가 들어갔겠습니까? “배가 고프면 라면이라도 끓여 먹지.” 하는 요즘 아이들은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어렸을 적 우리들 모습입니다.

손자는 갓 지은 더운밥을 먹으며 오랜만에 색다른 밥맛을 느꼈고, 아내는 어려서 쌀밥을 먹던 동심으로 돌아가 옛날을 회상하는 동상이몽을 꾸면서 둘은 ‘맛’이라는 공통인수가 딱 맞아 떨어져 거기에 취했던 게 틀림없습니다.

‘맛’이란 때와 장소와 뱃속 상태에 따라서 다르게 마련입니다. 특히 세대에 따라 느끼는 맛은 달라서 커피를 마시는 요즘 젊은 세대들은 우리가 어려서 어머니가 내어주시던 식혜 맛을 알 리가 없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같은 쌀밥이지만 우리는 어려서 배불리 먹는 게 목표였지만 요즘 아이들은 끼니를 때우는 한 수단에 지나지 않게 되었습니다. 밥이 아니더라도 빵이나 피자, 과일 같은 먹거리가 풍성한 요즘에 쌀밥을 맛을 보며 먹는 아이들은 드물 것입니다.

손자는 쌀밥이란 늘 그러려니 하다가 모처럼 태어나서 처음으로 할머니가 차려주는, 정성과 사랑이 듬뿍 담긴 색다른 밥맛을 느꼈는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아내는 생전 처음으로 귀여운 손자가 맛있게 밥을 먹으며 ‘할머니 표’ 쌀밥에 신기함을 느끼는 모습에서 갓난아이 때 기저귀를 갈아주던 ‘귀여운 내 새끼’의 정을 오랜만에 떠올린 게 아닌가 싶습니다. 큰손자는 며느리가 박사과정을 밟던 4년 동안 우리 집에서 데려다 키우며 할머니로서의 정을 쏟은 애라 그 정이 남다릅니다. 그러기에 저처럼 “손자가 머무르는 동안에는 매일 할미의 사랑이 담긴 갓 지은 밥으로 저녁을 차려주어야겠다”고 다짐하고 있는가 봅니다.

점심에 맛있는 거 뭐 좀 시켜 먹자고 했더니 밥통에 남아 있는 밥을 먹어 치워야 한다고 달달 긁어 공기에 채워 주는 아내에게서 가없는 할머니의 손자 사랑을 엿보았습니다. 그동안 떨어져 살면서 못해준 할머니 사랑을 한꺼번에 다 베풀려는 듯싶습니다. 2주일 동안은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리가 손주 목으로 밥 넘어가는 소리’라던 평소의 지론을 실천으로 보여줄지 곁에서 두고 볼 일입니다.

필자소개

이정원

시조시인. 1939년 충남 예산 출생. 고려대 경제학과 졸업. 고대신문 편집국장 역임. 공직에서 정년퇴임. 2005년 계간 ‘현대시조’ 신인문학상으로 등단. 한국시조시인협회·한국문인협회 강남지부 회원. 현대시조 ‘좋은작품상’ 등 수상. 시조집으로 ‘얼레와 어금니’ 등 3권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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