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베이에 엄습한 대륙 먼지바람 [허영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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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베이에 엄습한 대륙 먼지바람

2015.12.23


타이베이 거리는 평상시와 비슷합니다. 대만의 차기 총통 선거가 불과 20여 일 앞으로 다가왔다는 사실을 실감하기 어렵습니다. 연말을 맞아 백화점이나 쇼핑센터마다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띄우려는 정도일 뿐입니다. 길거리에서 후보들의 벽보조차 찾아보기가 어렵습니다. 지난주 한국대표부 주최로 열린 한국-대만 인문교류대회 참석차 타이베이를 방문해서 느낀 현지 분위기입니다.

물론 선거가 막바지로 치닫게 되면서 열기도 점차 달아오르겠지요. 그렇지 않아도 언론을 통한 흠집내기 공방전은 벌써부터 치열해진 마당입니다. 여론조사에서 월등한 차이로 앞서나가고 있는 민진당의 차이잉원(蔡英文) 후보가 더 멀리 달아나려는 데 비해 뒤늦게 선거전에 뛰어든 국민당의 주리룬(朱立倫) 후보로서는 열세를 만회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중입니다.

이번 선거에서 여야가 대립하고 있는 가장 큰 문제는 역시 양안관계입니다. 국민당은 2010년 중국과 경제협력기본협정(ECFA)을 맺은 이래 양안관계를 더 가깝게 유지해야 한다는 입장인 반면 민진당은 경제적으로는 물론 정치적으로도 일정한 거리를 두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동안 대만의 독립을 주장하던 상황에서 지금은 ‘현상 유지’라는 모호한 표현을 앞세우고 있는 정도가 차이점입니다. 적어도 선거 기간만큼은 중국을 자극하지 않겠다는 뜻이겠지요.

후보들의 부동산 투기 의혹에 대해서도 공방전이 벌어지고 있지만 그다지 파괴력은 없어 보입니다. 국민당은 지난날 차이 후보의 재산형성 과정에 대한 의혹을 제기하고 있으며 민진당은 주리룬 후보 부인의 토지 투기 의혹에 대해 역공을 취하고 있습니다. 거기에 비한다면 인권변호사로서 국민당 부총통 후보로 가세한 왕루시안(王如玄)의 군인주택 투기 의혹이 더 관심을 끄는 소식입니다.

총통 후보들의 텔레비전 토론회 개최에 대해서도 며칠 전에야 겨우 합의가 이뤄졌습니다. 친민당의 쑹추위(宋楚瑜) 후보까지 포함하는 세 후보의 토론회가 오는 25일부터 새해 1월 8일까지 전부 세 차례에 걸쳐 열리게 됩니다. 부총통 후보들도 별도로 한 차례의 토론회가 예정되어 있습니다. 그동안 거론됐던 모든 의혹에 대해 다시 불꽃 튀는 공방전이 펼쳐지겠지요.

그러나 현재의 여론조사를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선거는 이미 해보나 마나입니다. 민진당의 압승이라는 것이지요. 지지도 격차가 20%나 벌어져 있어 여간해선 막판 뒤집기가 어렵다는 분석입니다. 여론조사대로 결과가 나오게 되면 차이 후보로서는 4년 전 선거에서 마잉지우(馬英九) 총통에 대한 패배를 설욕하는 것은 물론 대만 정치사에서 첫 번째 여성 총통의 탄생이라는 기록까지 세우게 됩니다. 지난 2000년 집권에 성공했던 천수이볜(陳水扁)에 이어 두 번째 정권교체를 이루는 것이기도 합니다.

총통 선거가 이미 기울어진 상황에서 남은 관심사는 총통 선거와 동시에 실시되는 입법원 선거입니다. 민진당은 내친김에 입법원까지 장악함으로써 헌법 개정을 통해 대만의 정체성을 확인시키겠다는 의지를 과시하고 있습니다. ‘중화민국’이라는 지금의 국호를 ‘대만’으로 바꿔야 한다는 것입니다. 대만 사회의 정체성을 살려 중국과의 역사적 관계를 끊고 독립을 이루겠다는 취지입니다.

그러나 설령 민진당이 정권교체를 이룬다고 해도 현재 대만이 직면하고 있는 문제점들을 속 시원하게 해결할 방도가 없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민진당이 여론조사에서 앞서나가고 있는 것이 차이 후보의 인기가 높아서라기보다는 국민당의 실정에 대한 반사 효과라는 것이지요. 집값은 치솟고 대학 졸업자들의 취직은 어려운 가운데 경제는 계속 내리막길이기 때문입니다. 빈부격차도 더욱 벌어지는 추세입니다.

양안관계도 비슷합니다. 중국과의 관계를 외면한다는 것은 국제사회에서 고립을 감수하겠다는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급격한 정책 변화는 허용되기 어렵습니다. 지난달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마잉지우 총통과의 역사적인 싱가포르 회동에 전격 등장했던 것도 민진당에 대한 경고 의미였습니다. 현지에서 만난 사람마다 차이잉원의 당선을 기정사실화하면사도 그 이후의 걱정을 표명한 것이 그런 배경에서였을 것입니다.

최근 중국 반도체 기업인 칭화유니그룹의 대만 기업에 대한 지분투자 확대를 둘러싸고 논란이 빚어지는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차이 후보는 대만 경제가 대륙 자본에 의해 잠식된다는 ‘홍색(紅色) 위기설’을 들어 반발하고 있습니다. 국민당의 주리룬 후보도 역시 이에 대해 반대 의사를 밝히고 있지만 선거를 앞둔 상황에서 유권자들의 표심을 거스르지 않으려는 의도라 여겨집니다.

미국 오바마 행정부도 대만에 무기를 판매하겠다는 방침을 전격 발표함으로써 대만 선거에 노골적으로 개입하고 있는 모양새입니다. 대만 카드를 활용함으로써 남중국해 영유권 갈등 등에서 중국 정부를 압박하겠다는 것이겠지요. ‘하나의 중국’ 원칙에 따라 대만을 영토의 일부로 간주하고 있는 중국으로서는 당연히 반발하고 나설 수밖에 없습니다. 대만의 운명이 국민들의 자체 선택으로만 결정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얘기입니다.

선거를 통해 유권자들의 의사를 확인할 수는 있을지 몰라도 궁극적인 해결책은 될 수 없습니다. 한국대표부 주최의 일정을 마치고 귀국하는 타오위안(桃園) 공항의 저녁 하늘에는 뿌연 먼지바람이 흩뿌리고 있었습니다. 중국 대륙에서 날아온 스모그의 매연 덩어리입니다. 앞날이 불투명한 대만의 처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요.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자유칼럼그룹은 특정한 주의나 입장을 표방하지 않습니다.

필자소개

허영섭

이데일리 논설실장. 전경련 근무. 경향신문과 한국일보에서 논설위원 역임. '일본, 조선총독부를 세우다', '대만, 어디에 있는가', '영원한 도전자 정주영' 등의 저서가 있다.

박대문의 야생초사랑

콩다닥냉이 (십자화과)  Lepidium virginicum L


진눈깨비 오락가락 으스스하여 몸은 움츠러들고 앙상한 나뭇가지를 흔드는 찬바람 소리가 매섭습니다. 발아래 밟히던 그 많은 들풀도 시들고 사그라져 하나둘 흙 속에 묻혀가는 계절, 초록빛 떠나버린 황량한 들판에서 빈약하나마 꽃이 있고 파랗게 자라나는 들풀을 만났습니다.

필자소개

박대문

환경부에서 공직생활을 하는 동안 과장, 국장, 청와대 환경비서관을 역임했다.
우리꽃 자생지 탐사와 사진 촬영을 취미로 삼고 있으며,
시집 『꽃벌판 저 너머로』, 『꽃 사진 한 장』, 『꽃 따라 구름 따라』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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