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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유의 저주-베네수웰라
2015.12.18
‘자원의 저주’란 말이 있습니다. 풍부한 지하자원이 축복이 아니라 되레 국가경제를 파탄으로 몰고 갈 때 쓰이는 말입니다. 펑펑 쏟아지는 오일 달러를 미래를 위한 투자 재원으로 사용한 게 아니라 권력자의 대중 영합의 수단으로 낭비하다가 국민을 ‘공짜의 덫’ 속으로 몰아넣는 경우입니다. 베네수엘라가 이런 나라가 아닌가 생각합니다.최근 유가(油價)가 배럴당 30달러 대로 떨어졌습니다. 12월 초 빈에서 열린 석유수출국기구(OPEC) 회의에서 감산하지 않기로 결론이 나면서 일어난 일입니다. 작년 여름 유가가 100달러 대에 머물 때 50달러 이하로 떨어진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산유국들의 아우성이 세계 곳곳에서 터져 나오고 있습니다. 규모로 볼 때 가장 큰 피해자는 석유 수출량이 가장 많은 사우디와 러시아입니다. 사우디는 OPEC의 대장으로 석유 값의 변동에 전략적으로 대처해 온 나라이고 러시아는 산업이 다변화된 나라여서 어렵지만 견딜 만한 힘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베네수엘라처럼 대책 없이 그날 나온 석유 수입으로 그날 먹고 살아온 산유국들은 그 통증이 더욱 심합니다. 사우디가 통원 치료가 가능한 나라라면 베네수엘라는 응급 환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40년 전 이야기입니다.1973년 석유파동으로 석유 값이 폭등하면서 베네수엘라의 석유 재정수입이 4배나 늘어났습니다. 그즈음 석유에 대해 다음과 같은 독한 논평을 내놓은 베네수엘라 사람이 있었습니다.“지금으로부터 10년 후, 20년 후에 석유 때문에 우리 국민이 파멸에 이르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석유는 악마의 배설물이다.”이 말을 한 사람은 1959년부터 1963년까지 베네수엘라 민주 정부의 석유장관을 지낸 페레스 알폰소(Perez Alfonzo: 1903~1979)였습니다. 그는 석유의 역사에서 볼 때 기억될 만할 인물입니다. 그는 석유 가격 카르텔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씨앗을 뿌린 장본인입니다.변호사였던 페레스 알폰소는 1947년 베네수엘라 역사상 첫 민주정부의 개발 장관이 됐습니다. 그러나 곧 군부 쿠데타로 투옥됐다가 미국으로 망명했습니다. 그는 워싱턴에서 망명 생활을 하며 세계 석유산업에 대한 연구를 하던 중 석유 자원의 보호와 석유 가격의 보장을 위한 산유국들 간의 연대를 구상하게 되었습니다.그에게 기회가 왔습니다. 1959년 선거에 의한 민주정부가 수립됐고, 로물로 베탄코트 대통령은 그를 불러들여 석유 장관에 임명했습니다. 그는 1960년 미국과 메이저 석유회사들의 가격통제에 반기를 들고 OPEC 창립 구상을 품고 당시 사우디의 석유 장관 압둘라 카리키와 의기투합하여 석유수출국기구를 설립했습니다.40여 년 전 페레스 알폰소가 한 말은 오늘의 베네수엘라를 그대로 대변하는 명언이 됐습니다. 아마 그가 그런 예언자적 논평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조국 베네수엘라의 역사와 산업 그리고 정치문화를 종합적으로 꿰뚫어 볼 수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베네수엘라는 20세기 초까지 주요 작물의 변천에 따라 ‘코코아 국가’ ‘커피 국가’ ‘설탕 국가’로 불리는 가난한 농업국이었습니다. 이 나라의 운명이 바뀐 것은 1922년이었습니다. 1908년 이란에서 석유 시추에 성공했던 영국의 엔지니어 조지 레이놀즈가 마라카이보 평원에서 시추에 성공, 하루 10만 배럴이 쏟아지는 대박을 터뜨렸기 때문입니다.베네수엘라는 땅에서 공짜로 쏟아지는 오일 달러로 일약 남미 대륙에서 1인당 국민소득이 제일 높은 나라로 부상했고 정치도 잘 돌아가는 듯했습니다. 그러나 잠시뿐이었습니다. 오일 달러는 흥청망청 낭비되었고 국민생활을 피폐해지기 시작했습니다.베네수엘라 경제가 쏟아지는 오일 달러를 건강하게 소화할 수 없었습니다. 임금과 물가는 치솟았고 베네수엘라 상품은 국제 경쟁력을 잃어 수출을 할 수 없게 됐습니다. 기업가정신, 혁신정신, 국민의 근면성이 모두 파괴되어 버렸습니다. 미간 부분이 한없이 축소되는 반면, 정부는 석유로 벌어들이는 돈을 갖고 한없이 새로운 프로그램을 만들면서 재정지출을 확대해나갔습니다. 그러나 이런 재정 운용은 석유 값이 올라가는 동안만 유지될 뿐 가격이 떨어지면 감당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베네스웰라 대통령들 중에는 이런 고질병을 고쳐보려고 노력한 사람도 있지만 모두 실패했습니다. 국민이 이미 공짜 심리에서 헤어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어느 베네수엘라 대통령이 “멍청한 사람만이 세금을 내는 나라”라고 힐난했듯이, 경제는 오일 달러를 갖고 나눠먹는 판이 되었습니다. 20세기 후반 내내 정치는 쿠데타와 포퓰리즘에 의해 흔들렸습니다. 과거 여러 정부가 정부 재정지출을 줄이는 정책 시도를 했지만 결국 정권의 붕괴로 끝나고 말았습니다.이런 정치적 경제적 악순환의 와중에 1999년 권력을 잡은 것이 우고 차베스입니다. 사관학교 시절 체 게바라의 열렬한 신봉자였던 우고 차베스 대령은 1992년 봄 군부 쿠데타에 가담했다가 투옥됐지만 정권이 바뀌면서 석방되었습니다. 그는 총구가 아니라 투표를 통해 집권한 후 2013년 암으로 사망할 때까지 베네수엘라를 통치했습니다. 그는 삼권을 장악해서 반대파를 발붙이지 못하게 하는 철권정치, 오일달러를 풀어 가난한 사람에게 나눠주는 인기영합의 복지정책, 쿠바 등 남미 좌파 정권과 연합하여 서구 자본주의에 대항하는 반미정책을 추구했습니다.차베스가 장기집권에 성공한 것은 두 개의 기둥에 의지해서였습니다. 집권 초반기는 그의 폭발적인 인기로, 후반기는 폭발적인 유가 상승으로 그는 국민의 환심을 살 수 있었습니다. 석유시설 위주의 자본집약적인 베네수엘라 경제는 고용을 거의 창출하지 못해서 빈곤층이 눈덩이처럼 늘어났지만 차베스는 이를 넘쳐나는 오일 달러로 그때그때 땜질하는 복지정책으로 대응했습니다. 민간부분이 메말라버리고 재정에만 의존하는, 소위 서구 학자들이 말하는 전형적인 페트로국가(Petro-state)가 된 것입니다.2013년 차베스 대통령이 사망하자 부통령이었던 니콜라스 마두로가 여당인 통합사회당 후보로 출마하여 대통령에 당선되었습니다. 당연히 마두로 대통령은 차베스의 사회주의 정책(Chavismo)를 계승했습니다.그러나 지난 6일 치러진 베네수엘라 총선에서 집권당은 야당인 ‘민주연합’에 참패했습니다. 의석 중 거의 3분의 2를 야당에 내주었습니다. 선거의 패인은 두말할 것도 없이 경제문제이고 그 직접적인 원인은 유가의 폭락으로 보입니다. 집권 당시 100달러에 머물던 유가가 계속 떨어지다가 선거를 앞두고 40달러 이하로 곤두박질쳤습니다. 국가 경제를 석유 수출에 의존하는 베네수엘라는 올해 물가가 159% 뛰었고 경제성장률은 마이너스 10%나 뒷걸음질 쳤습니다. 아마 차베스가 살아있었더라도 뾰족한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세계는 야당의 선거 승리로 민주주의 승리라든지 또는 우파의 승리로 친서방적이 될 것이라는 데 더 관심을 가질 것입니다. 그러나 정작 베네수엘라 국민은 혼돈의 강가에 서 있을 것입니다. 정부는 차베스주의자들이 장악하고 있는 반면, 의회는 그동안 차베스의 철권정치에 의해 탄압받던 야당세력이 장악했습니다. 국가의 버팀목인 유가는 폭락했고 다시 더 떨어질지 모릅니다. 보나마나 정치는 살얼음판이고 국민 생활은 당분간 곤궁에서 빠져나올 수 없을 것입니다.카리브해와 아마존 열대우림 사이에 위치한 베네수엘라는 남한의 9배나 되는 넓은 국토에 인구가 3천만 명이 사는 나라입니다. 지난 세기 한국인들의 눈에는 남미 국가들 중 정말 돋보이는 나라였습니다. 바로 석유 자원을 가졌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베네수엘라는 ‘석유의 저주’에 빠져 있습니다. “석유는 악마의 배설물”이라는 페레스 알폰소의 말이 실감을 더합니다.인간은 환경에 적응하며 살아갑니다. 나라마다 사람이 사는 환경은 다릅니다. 남미 사람들은 낙천적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가난한 삶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불행으로 느껴지지 않을지 모릅니다. 다만 좋은 자원을 갖고 미래를 준비하며 사는 지혜를 아직 찾지 못한 베네수엘라 국민의 처지가 아쉬울 뿐입니다.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자유칼럼그룹은 특정한 주의나 입장을 표방하지 않습니다.
필자소개
김수종
한국일보에서 30년간 기자 생활. 환경과 지방 등에 대한 글을 즐겨 씀.저서로 '0.6도' '다음의 도전적인 실험' 등 3권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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