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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인 촌철, 살인 촌철
2015.12.11
올해엔 인신공격이 유난히 많았습니다. 특히 정치권에선 내년 총선을 앞두고 상대 당의 당직자나 유력 대권후보를 겨냥한 저속한 표현, 음해성 발언에다 조상의 행적까지 파헤치며 공박합니다. 내분에 휩싸인 야권은 청와대나 여권에 퍼붓던 ‘유신 독재’ ‘불통’ 같은 비방을 당내 인사들에게 퍼부으며 누워서 침 뱉기 식 혈투를 벌이고 있습니다. 그런 현상이 김영삼 전 대통령의 서거로 잠시 멈추는가 했더니 다시 도지고 있습니다. 선진국에서는 왕이나 대통령, 큰 정치인들의 유머가 사람을 살리는[活人] 해학으로 작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우리나라에서는 사람을 죽이는[殺人] 촌철(寸鐵)이 난무합니다. 현재도 그렇지만 과거에도 그랬습니다. # 무지의 대명사 김영삼(YS)1972년 ‘유신’이 발표되자 YS는 기자들의 질문에 소회를 밝혔다.-YS: 이것은 역사를 후퇴시키는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역사의 아이노리’(irony의 잘못된 표현)라고 아니할 수 없습니다. 클린턴 미국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위해 워싱턴에 간 YS가 호텔에서 조깅을 하다 변전 시설 벽에 그려진 해골과 x자 뼈 그림 밑에 쓰인 영어 단어를 가리키며 비서에게 물었다.-YS: 저기 단거(danger)라고 써 논 기 무신 말이고?-비서: 각하, 그건 단거가 아니고 데인저라고 읽어야 합니다. 위험하다는 경고판입니다.-YS: 아! 맞다. 내가 그걸 깜짝 이자뿠네. 오 마이 ㅈ~~(Oh my God). △1970년대 말 YS와 당권을 주고받던 소석(素石) 이철승 전 의원에게 어느 기자가 물었다.-기자: YS의 호 거산(巨山)은 거제(巨濟)에서 태어나 부산(釜山)에서 자라, 연고 지역 이름을 따 지었다고도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소석: (평소 유머감각이 뛰어난 그는) 어렵게 생각할 것 없어. 죽으면 산으로 간다[去山]는 소리야. # 불신을 못 벗어난 김대중(DJ)1984년 민주롸추진협의회(민추협)가 결성된 후 미국에서 귀국한 DJ가 동교동 측 대표로 내세웠던 Q 의원으로부터 그동안의 경과를 보고받고, 남은 돈이 의외로 적은 사실을 알고 못마땅한 심경으로 상도동 측 대표인 YS를 찾아갔다.-DJ: 김 총재, Q 그 사람 믿을 수가 없어요. 이름 석 자 빼고는 전부 거짓말이니.-YS: (고개만 끄덕)이 말을 전해 들은 Q 의원이 다시 상도동을 찾았다.-Q 의원: 총재님, 그 양반은 이름 석 자도 거짓말입니다.-YS: (눈을 지그시 감다) 노벨 평화상을 받고 귀국한 DJ가 비서에게 물었다.-DJ: 평화상 수상 기념우표는 많이 팔렸는가?-비서: 그게 잘 팔리지 않는다고 합니다.-DJ: 어째서?-비서: 우표가 봉투에 잘 붙지 않는다고 합니다.-그럴 리가 있나. 얼른 가져와 봐.-DJ:(비서가 가져온 우표에 침을 발라 붙여 보고) 잘 붙는데 왜 그래?-비서: 사람들이 우표 뒤쪽이 아닌 앞쪽에 침을 뱉어서…. # 정치적 스승도 비판한 노무현노무현 전 대통령은 1991년 노태우정권 퇴진 촉구 시민대회에서 3당 합당한 YS를 비판했습니다. 자신을 정계에 입문시킨 정치적 스승에게 직격탄을 날렸다.-호랑이 잡으러 호랑이 굴에 들어간다더니 들어가서는 호랑이 젖이나 빨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자신을 대통령으로 밀어준 DJ에게도 쓴소리를 퍼부었다.-김대중 전 대통령이 말을 길게 하니 맛있게 먹은 밥도 소화가 안 되더라. # 독선과 공포의 지도자 전두환95%는 자기주장만 펼치고 남의 말은 5% 정도만 들었다는 전두환 전 대통령 시절에는 이른바 ‘카더라 통신'으로 그것을 빗대는 은유가 많았습니다. 당시 체신부 장관이 광섬유(optical fiber) 개발 낭보를 대통령에게 보고했다.-장관: 각하, 우리도 드디어 광섬유 개발에 성공했습니다.-대통령: 잘 됐군요. 그런데 내가 대구에서 살아 섬유에 대해선 좀 아는데, 섬유는 염색을 잘 해야 돼요. 한 취객이 대통령을 비방했다는 신고로 경찰서에 넘겨졌다.-경찰: 전두환 대통령을 어떻게 생각하나?-취객: (술이 덜 깬 상태에서) 참 나쁜 대통령입니다.-경찰: 그래, 국가원수 모독죄에 해당되는군.-취객: (정신이 확 들어) 아닙니다. 참 좋은 대통령입니다.-경찰: 그래? 국가기밀 누설죄도 추가해야 되겠군. 서슬 퍼런 대통령을 움직이는 사람은 영부인이라 하여 이심전심(李心全心)이란 조어가 회자되던 당시 이화여대생들의 시위에 두 사람을 빗대는 플래카드가 등장했다.-문어는 바다로! 주걱은 부엌으로! 위에 든 예들은 일부 사실도 있지만 대부분 고의로 만들어 유포시킨 음해성 인신공격입니다. 역사는 권력자에게 아부하는 자들의 기록이라고 하지만 반대의 암유(暗喩 metaphor)가 항간에 회자한 것도 뒤안길 역사의 한 단편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익명의 비판, 특권의 독설, 복면의 폭력보다 민낯의 진실이 더 심금에 와 닿습니다.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자유칼럼그룹은 특정한 주의나 입장을 표방하지 않습니다.
필자소개
김홍묵
경북고, 서울대 사회학과 졸업. 동아일보 기자, 대구방송 이사로 24년간 언론계종사. ㈜청구상무, 서울시 사회복지협의회 사무총장, ㈜화진 전무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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