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축 건물 올리는 대학들..."정작 학생 공간은 뒷전"
올해 연대·이대·경희대 등 완공
학생들 조모임 가능한 공간도 없이
카페 등 상업적인 시설들만 들어서
대학들 기부금 활용 시설 확장 골몰
"등록금 내는 만큼 자치공간 보장을"
연세대학교 백양로 지하 공간에는 학생들을 위한 공간은 없고 상업시설과 외부인을 위한 회의실만 자리를 차지 하고 있다.
홍인기기자 hongik@hankookilbo.com
“깨끗해져서 좋긴 한데 돈 들인 것에 비해서 학생들에게 도움 되는 시설은 없어요.”
2일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서 만난 재학생 김모(26)씨는 두 달 전 공사를 마치고 문을 연 학내 백양로 지하공간 ‘백양누리’에 대해 이렇게 평했다. 그는 이 지하공간에 입점한 5곳의 프랜차이즈 상업시설 중 한 곳인 카페에서 과제를 같이 할 조원들을 기다리던 중이었다. 김씨는 “교내에 조모임 공간이 부족해 외부 카페에서 매일 마시지도 않는 커피를 주문하고 조모임을 해왔기 때문에 새로운 시설에 대한 기대가 컸다”며 “그런데 학교에도 조모임 공간 대신 카페가 들어선 걸 보니 화가 날 정도”라고 말했다.
대학마다 신축 건물을 올리고 학교 외관을 바꾸는 공사가 진행되고 있지만 정작 학생들을 위한 공간 확보는 미비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학생들은 비싼 등록금을 내는 만큼 수업 공간과 자치 공간을 보장받고 싶다고 입을 모은다.
연세대의 경우 2013년 8월부터 약 1,050억원의 공사비를 투입해 6만6,000㎡가 넘는 지상 공간을 차가 다니지 않는 녹지로 만들고, 지하공간에 주차공간과 각종 시설을 조성하는 ‘백양로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그 결과 이 지하공간에는 주차공간 외에 300명 이상 수용 가능한 연회장 1곳, 국제회의실 3곳을 포함한 회의실 10곳, 외부 상업시설 5곳, 금호 아트홀, 교직원을 위한 휴게공간과 생활협동조합 문구점 등이 들어와 있다. 하지만 회의실과 연회장은 공간 대여를 목적으로 하고 있어 이 중 학생들이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은 사실상 문구점과 상업시설뿐이다.
그러다 보니 학생들은 자치공간 부족을 호소하고 있다. 이 학교 영어영문학과 장수연(20)씨는 “조모임 공간뿐만 아니라 동아리방처럼 학생들이 실제로 쓸 수 있는 공간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같은 이유로 이화여대와 경희대도 올해 교내 갈등을 빚었다. 이화여대는 지난 6월 학교 정문과 백주년기념관 사이에 신축건물인 ‘이화 파빌리온’을 완공했다. 전체 면적 243㎡에 야외휴게공간, 카페, 기념품가게 등이 들어선 이 건물은 공사 시작 때부터 학생들의 반대가 컸다. 김세영 부총학생회장은 “그 자리는 원래 탁 트인 공간이라 많은 학생들이 모일 수 있는 유일한 곳이었다”며 “그런데 학교 측이 학생들의 의견수렴 과정도 없이 상업적 목적의 건물을 세웠다”고 비판했다. 새 건물의 용도는 자치공간 확보라는 재학생들의 수요가 아니라 늘어나는 중국인 관광객의 주머니를 겨냥한 것 아니냐는 게 학생들의 시각이다.
경희대의 경우 올해 5월 문을 연 지하 1층~지상 3층의 ‘문화복지센터’에 15개의 프랜차이즈 업체가 입점하면서 학생들의 불만이 증폭됐다. 이정이 총학생회장은 “문화센터라면 학생들이 모일 수 있는 공간이나 문화복지를 누릴 수 있는 공간이기를 바랐는데 상업시설만 들어왔다”며 “원래 있던 교내 생협은 제품가격도 저렴하고 수익금을 학생들에게 장학금 형태로 환원했지만 일반 상업시설은 학교 측에 임대료를 지불할 뿐 학교 구성원에겐 아무런 이익이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나마도 이 건물에 들어섰던 프랜차이즈 업체들이 최근 매출 문제로 잇따라 폐점해 학교 측은 수요 예측도 제대로 못한 셈이 됐다.
이에 대해 임희성 대학교육연구소 연구원은 “기부금 활용은 대학의 자율이지만 지출 대상이 교육 목적으로 소모되는 장학금보다는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시설 확장이나 리모델링으로 굳어져가는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며 “교비와 기부금 등은 학생들에게 실질적 이익이 되도록 강의시설과 자치공간 확충 등에 사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국일보 양진하기자 realh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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