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서로 고집만 부릴 때 아니다 [황경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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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서로 고집만 부릴 때 아니다

2015.11.12


한국과 일본 두 나라가 3년 6개월 만에 서울에서 수뇌회담을 가졌습니다. 회담 후 박근혜 대통령은 두 나라 사이 걸림돌의 하나였던 위안부 문제의 타결이 연말까지에 있을 것 같다는 낙관적 견해를 표명하였으며, 아베 신조 일본 총리도 위안부 문제 해결의 가속화에 합의 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런 아베 총리는 일본에 돌아가자 말을 바꾸었습니다. TV에 출연한 그는, 위안부 문제는 1965년의 일한국교정상화협정으로 완전히 해결되었다는 종전의 태도를 되풀이하였습니다. 그의 측근들도 서울에서의 낙관적인 총리 발언을 부인하는 듯 한 견해를 밝혔습니다.

이러한 일본 측의 미묘한 태도 변화와는 관계없이, 이번 수뇌회담을 전후(前後)하여 두 나라의 궁쇅한 관계를 개탄하는 뜻있는 발언이 한·일 식자 사이에 있었습니다. 과거의 친밀했던 두 나라 관계에 최근 3~4년 사이에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한때 일본 국민의 3분의 2 가까이가 한국에 호의적이었는데 지금은 이 비율이 거의 정반대로 바뀌었고, 일본 TV와 연예계를 휩쓸었던 ‘한류(韓流)’ 열풍은 거짓말같이 식었습니다. 경제활동에 미친 영향도 적지 않았습니다. 그뿐 아니라 북아시아 강대국 세력 균형에 있어서의 한·일 두 나라의 원만치 못한 국교에 미국이 걱정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 미묘한 시기에, 한·일 두 나라에서는 처음으로 우려의 목소리가 표면화했습니다. 서로의 민족주의 때문에 두 나라의 국익(國益)을 더 이상 무시할 수는 없다는 소리입니다. ‘친한파(親韓派)’ ‘친일파(親日派)’와 같은 소승적(小乘的) 사고(思考)가 국익의 걸림돌이 되어서는 안 되겠다는 소리입니다.

일본의 전 외교관으로 내각의 외교 보좌관도 지낸 미야케 구니히코(宮家邦彦) 씨는 일본 최대 월간 종합지 ‘분게이슌주(文藝春秋)’ 최신호에서, "한국은 일본과 중국 사이의 완충(緩衝)으로, 이런 나라와 악화된 관계를 계속해서는 일본의 국익에 도움이 안 된다. 호불호(好不好)를 초월하여 양호한 관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또 아베 총리는 극우 정치가라는 인상을 주지만, "외교에 관해서는 극히 현실주의적인 통치가라고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아베 총리는 외무대신이었던 아버지 신타로(晉太郞) 씨의 비서로 3년 8개월 근무하며 수많은 외국 방문에 동행한, 일본 정치가 중 흔치 않은 경험을 가진 사람으로, 물론 세부에 관해서는 외무 관료 등의 자문을 받지만, 큰 틀은 본인 자신이 결정한다."고도 했습니다. 

한편, 서울에서는 수뇌회담 직후, 한신대학 윤평중 정치철학 교수가 ‘일몬, 그 영원한 주홍글씨’라는 제목의 신문 칼럼에서, ‘한국에서 친일의 딱지는 사회적 사망증명서다.’고 말하면서도 15세기의 신숙주와 100년 후의 유성룡의 저서 ‘징비록’을 인용하며 일본과의 화해를 권했습니다. ‘일본에 덧입힌 주홍글씨를 벗겨 내 동등한 이웃 나라로서 미래로 함께 나아가야 할 절체절명의 순간이다.’라고 윤 교수는 말했습니다. 

그는 또 박근혜 정부에서만 한·미 정상회담 4차례, 한·중 정상회담이 6차례나 열린 것에 비해, 한·일 두 나라가 한 번도 만나지 않은 3년 6개월은 ‘막대한 손실을 가져온’ 너무 막혀 있었던 기간이라고, 개탄했습니다. 

27세 때 일본에 갔다 온 신숙주는 ‘해동제국기(海東諸國記)’를 쓰고 서문에서 "외적을 대하는 방법은 외정(外征)이 아니라 내치에 있다."고 말했다고, 윤 교수는 전했습니다. 또 유성룡은 '일본과 가까이 지내라‘는 신숙주의 당부를 ‘징비록’ 맨 앞에 실었다고, 그는 말했습니다. 

유 교수는 이런 말도 했습니다. "산업혁명과 민주혁명을 이룬 대한민국이 과거사 때문에 미래로 전진하지 못하는 것은 현명한 선택이 아니다. 폐쇄적 한국 민족주의와 극우적 일본 민족주의가 적대적 공존관계를 이루어 두 사회의 퇴행을 부추기는 현실도 심각하다."

친일이란 정치선동 화살은 이번 국정교과서 파동에서도 난무(亂舞)하였습니다. 박 대통령과 김무성 여당 대표가 그 포퓰리즘 화살의 표적이었습니다. 이번에는 어느 민간단체가 만든 ‘친일인명사전’이 서울교육청 관할 중·고등학교에 배포된다고 합니다. 이승만, 박정희, 장지연, 홍난파, 백선엽 등 4,300여 명의 인사가 수록되어 있다고 합니다.

일본의 아베 총리는 지난 9월의 자민당 총재 개선에서 대립 후보 없이 무투표로 연임하여, 2018년 9월까지의 총리직도 확보했습니다. 말썽 많던 안전보장 관련 법안의 국회 강행 처리로 한때 인기가 30% 후반까지 떨어지기도 했지만, 일본 정계에서의 그의 지금 위치는 절대적입니다.

미국과의 군사동맹 강화로 대미관계가 더 견고해진 일본은, 세계 제2의 경제 대국이 된 중국과 오키나와 남쪽에서 영토분쟁에 휘말리고 있습니다. 그뿐 아니라, 일본은 남중국해에서는 항해자유(航海自由) 문제로 중국과 신경전을 벌이고 있는 미국 편을 들어, 중국의 신경이 날카로워졌습니다.

이렇게 긴박한 동북아시아 정세에서, 중국과 과거 어느 때보다 격상된 전략적 우호관계를 맺고 있는 우리나라는 미·중·일 사이에서 미묘한 입장에 서게 되었습니다. 우리 외교 능력이 다시 시험대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이런 가운데, 조선일보는 최근의 한 사설에서 이번 한·일 정상회담에서의 외무부의 무능을 심히 꾸짖었습니다. 3년 6개월 동안 정상회담을 거부한 뒤의 이번 회담에서 아무런 성과도 얻지 못한 데다 사후처리에서도 실패했다고 했습니다.

정상회담 직후 기자들에게 한 발언을 일본에 돌아가서 바꾸어 말한 것을 비난한 ‘아베 총리, 미국 등에 업고 정치회담 끝내니 겁나는 게 없나’라는 긴 제목의 사설에서, ‘외무부의 무능은 도저히 감출 수 없는 병이다’라고 질타했습니다. 

두 나라의 앞날 뿐아니라 동북아시아의 평화를 위해서도, 더 이상의 ‘허송세월’이 없기를 국민은 바라고 있습니다.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자유칼럼그룹은 특정한 주의나 입장을 표방하지 않습니다.

필자소개

황경춘

일본 주오(中央)대 법과 중퇴
AP통신 서울지국 특파원, 지국장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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