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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학사정관전형의 허와 실 I : 자소서와 추천서
2015.10.23
요즘 전국 대학의 입학본부가 9월 9일에 시작되어 12월 7일에 마감하는 수시모집인 입학사정관전형(入學査定官銓衡)으로 바삐 돌아가고 있습니다. 입학사정관전형(사정관전형)은 점수 중심의 경쟁 입시를 지양하고 학교 성적보다 인성과 적성 그리고 창의성이나 잠재력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해 학생을 선발하는 전형 방식으로 2009년부터 본격적으로 도입된 제도입니다. 이 전형의 평가 방법은 기존의 입시 전형과 크게 다릅니다. 과거 입시가 학생들의 수능과 내신 성적을 순서대로 나열하여 합격과 불합격을 결정하는 기계적인 평가였다면, 사정관전형은 지원자의 성적은 물론 자기소개서, 교사추천서, 그리고 학교생활기록부의 기록이나 필요 시 추가서류 제출 요구 등 다양한 전형자료를 활용하여 학생을 선발하는 종합적인 평가입니다. 기존의 대학입시 제도의 취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이 제도가 마련되었지만 개선할 과제도 많이 부각되고 있습니다. 현행 대학 수시 전형이 사정관제도의 시행 과정에서 발생하고 있는 문제들로 다시 혼란스러워지고 있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이는 수험생 자녀를 둔 부모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의 전반에 얽혀 있는 중요한 문제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학업 성적뿐만 아니라 개인의 환경이나 잠재력까지 고려해 학생을 선발하고자 하는 입학사정관제가 본래의 취지대로 잘 운영되고 있는 것일까요. 그 대답은 ‘아니요!'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이 제도가 처음 시작될 때는 취지에 따라 수행되었을지 모르지만 현재는 그 의미가 많이 퇴색되어 운영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현재 각 대학이 제시해 운영하고 있는 수시모집의 전형 유형과 신입생 선발 방식이 너무 다양해서 수요자인 학생들과 학부모들은 선택의 혼란을 겪고 있습다. 현재 내가 참여하고 있는 수시 전형 유형은 일반전형, PRISM 인재전형, 재능우수자 전형, 지역인재 전형, 사회적 배려대상자 전형, 농어촌학생 전형 등 13가지입니다. 지난 9월 25일부터 위촉 입학사정관으로 수시전형에 참가해 평가를 수행하며 느끼고 있는 사정관전형의 허(虛)와 실(實)을 살펴봅니다. 본 칼럼에서는 지원 대학의 선택과 자기소개서 그리고 교사추천서를 중심으로 살펴보고, 다음 칼럼에서 본 제도의 평가에서 중심 사안이 되고 있는 학생부종합자료에 관련된 사항들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우선 6개 대학에 동시에 지원할 수 있는 수시모집의 문제점을 짚어봅니다. 이는 학생들에게 진로 선택의 폭을 넓혀주고자 하는 방안이라고 하지만, 6개 대학에 동시에 지원하는 데 드는 40만~50만 원이 넘는 전형료는 경제적으로 어려운 수험생의 부모에게는 커다란 부담이 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리고 동시에 여러 대학에 합격한 학생들이 수도권 대학을 선호하기 때문에 지역 대학에서는 학생 부족 현상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이런 문제의 해결 방안으로 앞으로 지원 학교의 수를 2~3개로 축소해 운영할 것을 제안해 봅니다. 학생이 입학지원서와 함께 제출하는 서류는 크게 ‘자기소개서’, ‘학생부종합전형 교사추천서’ 그리고 ‘대입전형용 학생부자료’로 구분이 됩니다. 흔히 ‘자소서’라고 부르는 자기소개서의 기록 내용은 재학 기간 중 학업에 기울인 노력과 학습경험, 본인이 의미를 두고 노력했던 교내 활동, 학교생활 중 대인관계 등과 함께 지원 동기 및 학업계획을 자유롭게 기술하도록 요구하고 있습니다. 자소서의 평가 시 어려운 점이 많은데, 내용이 부풀려 작성되어 있거나 추상적인 미사여구가 많은 것도 평가할 때 걸림돌이 됩니다. 그 실례로 수험생이 자소서의 ‘지원동기 및 학업 계획’에 쓴 내용을 적어봅니다. “OOO학과에 들어가 글로벌 산업시대에 걸맞는 창의적인 사고력을 갖고, OOO 분야의 심오한 학술적 이론을 배울 것입니다. 그리고 OOO에 대해 끊임없는 탐구를 하는 지도자적인 태도로 사람들을 위로해주며 그들의 삶을 윤택하게 만들어 행복의 체감온도를 높여주는 OOO연구원이 될 것입니다.”내용은 그럴듯해 보이지만 서술의 구체성이 부족하고, 학생이 직접 작성했다고 보기 어려운 이 내용을 보고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요. 사정관전형에 대비하기 위해 초등학생 때부터 ‘스펙 관리’가 필요하다는 인식이 확산되며, '입학사정관제는 엄마사정관제’라는 말이 풍미하기도 합니다. 스펙 준비에 누가 더 많은 시간과 비용을 투자하느냐에 따라 합격 여부가 정해진다는 측면에서 부유층에 유리한 제도라는 비판도 일고 있습니다. 지역의 작은 고등학교에는 입학사정관제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기 때문에 전형에 대한 불안감으로 사교육 시장을 향하게 되는데, 자소서 내용의 교정비가 20만~30만 원이나 든다고 합니다. 자소서 다음에 첨부되는 교사추천서에는 학업에 대한 목표 의식과 노력, 자기주도적 학습 태도, 수업 참여도 등 3개의 평가 항목을 포함하는 ‘학업 관련 영역’과 책임감, 성실성, 리더십, 협동심, 나눔과 배려 등 5개의 평가 항목을 포함하는 ‘인성 및 대인 관계 영역’ 그리고 지원자 평가에 도움이 되는 내용이 기술됩니다. 그리고 8개의 평가 항목들은 항목별로 매우 우수, 우수, 보통, 미흡, 평가 불가 등 5단계로 평가가 진행됩니다. 이런 교사추천서의 학생 평가에서도 많은 문제점이 발견됩니다. 그 실례로 어느 학과 지원생의 1번부터 15번까지의 교사추천서 평가 내용을 살펴보니 어이가 없어집니다. 교사 평가에서 8개 항목 모두가 매우 우수인 학생이 8명이었고, 매우 우수 외에 한 항목만 우수가 4명, 2항목만 우수가 2명, 3항목만 우수가 1명으로 나타났습니다. 대상자 중 보통 이하의 평가를 받은 학생은 전혀 없었습니다. 전 항목이 매우 우수로 평가받은 학생들 중 학업 성적이 5등급인 학생들도 있고, 자소서의 내용이나 학생 활동이 미흡한 학생들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학업 성적이 5등급이면 100명의 동급생 중 40등에서 60등에 속하는 학생입니다. 교사 입장에서 보면 자신이 지도하고 있는 학생을 어떻게 낮게 평가할 수 있느냐고 할 수 있지만, 과연 이런 평가의 객관성과 신뢰성이 믿을 수 있는 것일까요. 성적 위주 입시경쟁을 완화하고 사교육비도 줄여보자는 취지로 도입된 입학사정관전형이 속도전 식으로 무리하게 진행되며 많은 문제점들이 불거지고 있습니다. 수시모집이 학생들의 인성이나 적성 그리고 창의성이나 잠재력에 중심을 둔 전형이 아니라 부모 대 부모 또는 학교 대 학교의 대결 양상을 보이기도 합니다. 본 제도의 공정성과 신뢰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제일 먼저 명문대학 인기학과만을 추구하려는 우리 사회와 학부모들의 인식부터 바뀌어야 합니다. 그리고 교육부는 대학에 자율권을 부여하여 독자성을 인정하고, 대학은 객관적이며 신뢰도가 높은 세밀한 검증 제도를 마련해 대학이 우리 미래를 이끌어나갈 젊은 학생들이 꿈과 끼를 펼쳐나갈 수 있는 장(場)으로 자리매김하는 데 앞장서야 합니다.
필자소개
방재욱
양정고. 서울대 생물교육과 졸. 한국생물과학협회, 한국유전학회, 한국약용작물학회 회장 역임. 현재 충남대학교 명예교수, 한국과총 대전지역연합회 부회장. 대표 저서 : 수필집 ‘나와 그 사람 이야기’, ‘생명너머 삶의 이야기’, ‘생명의 이해’ 등. bangjw@cnu.ac.kr
게스트칼럼
길은 외줄기, 남으로 2,000리
강나루 건너서 밀밭길을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길은 외줄기 남도 삼백리술익은 마을마다 타는 저녁놀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박목월 시인은 참 아름다운 시를 남겼습니다. 이 글의 제목도 목월의 시에서 따왔습니다. 칠순을 맞으며 한반도 등줄기 동쪽 해안을 걷기로 했습니다. 동해안 맨 위쪽 휴전선 바로 밑 고성에서부터 부산 오륙도까지 2,000리 길을 해안을 따라 걷는 것입니다. 친구와 함께 셋이서 2박 3일, 또는 4박 5일씩 8차례로, 작년 2014년 5월 1일부터 1년 3개월에 걸쳐 나누어 걸었습니다. 1차, 2014년 5월 1일~ 3일 고성 2차, 5월 28일~31일 양양-속초-강릉 3차, 9월 1일~3일 동해 4차, 10월 8일~ 11일 삼척-동해 5차, 12월 2일~ 5일 울진 6차, 2015년 3월 13일~ 17일 영덕-포항 7차, 4월 30일~ 5월5일 포항-울산 8차, 9월 1일~ 4일 울산-부산 숙소난이 심한 피서철과 겨울 혹한기를 피하고 나서도 서로 일자를 조정하는 게 쉽지 않았습니다. ‘해파랑길’을 인터넷으로 검색하거나 스마트폰 앱 ‘두발로’를 다운받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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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안을 따라 걷는 길 안내 지도와 각종 정보가 나옵니다. 걷는 길은 자주 ‘국토종단 자전거 길’과 겹칩니다. 누구는 차로 가는 게 좋지 않으냐고도 합니다만 자전거도 좋고 차도 좋습니다.오를 때 못 보던 꽃을 산을 내려오면서 시인은 본다지만 한 발 한 발 내 발로 이 땅을 밟으며꽃을, 많은 꽃을 보았습니다. 동해를 좌로 보면서 계속 남으로 내려가다 보면 거진-속초-주문진-강릉-정동진-옥계-묵호-삼척-울진-영덕-포항-울산-부산 등 친숙하고 정겨운 지명을 만납니다.가진-장사-수산-추암-덕산-부구-기성-후포-고래불-축산-강구-칠포-호미곶-구룡포-양포-감포-정자-진하-대변 같은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개인적으로는 낯선 이름도 지나고 삼포해변-하조대-주문진-경포대-사천진리-안인-추암-덕산-고래불-화진-칠포-나아-일산-진하-임랑-송정-해운대-광안리해변 같은 해수욕장도 만나게 됩니다.낯설지만 이름들이 토속적이고, 정감 있는 명파-화진포-백도-정암-여운포-기사문-지경-연곡-솔바람다리-안인-옥계-고포-기성망향-사동-월송정-경정-오보-하저-남호리-구계-월포-오포-소봉대-연동-오류-전촌-나정-나아-관성-주전-간절곶-골매-동백-구덕포-동생말 같은 마을을 지나가기도 합니다.북평, 동해, 포항, 울산 같은 공업, 산업 항을 만나거나 군 시설을 만나면 해안 길을 벗어나 내륙 안쪽으로 들어와 국도를 걷게 됩니다. 다시 바닷가로 내려서면 지자체가 신경 써서 나무 데크를 깔아놓아 걷기 편한 곳도 있지만 모래밭이나 자갈길, 그리고 해안가 바위들은 걷는 진도가 느려져서 오히려 해안가 안쪽의 아스팔트길이 걷기 편한 경우도 있습니다. 걷다 보면 외지인들이 뽐내면서 지어놓은 펜션도 많이 지나치는데 우리가 주로 묵는 민박집 간판은 색이 바랬더군요.자동차 소리만 없다면, 그렇죠! 차 소리만 없다면, 시골길, 어촌 길은 조용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아무 소리도 안 들립니다. 사람 소리도, 전자제품 소리도 없고. 모든 것이 정지된 것처럼 고요하기만 하더군요. 조그맣고 낡은 어선들이 묶여 있는 한적한 어촌들을 지날라치면 낮은 지붕의 집, 그 집 안마당이나 또는 해안가, 길옆에서 나무로 된 틀에 미역을 널어 말리는 할머니들을 자주 보게 되었는데 대개 몸뻬 차림에 허리는 많이 굽으셨더군요.철 지난, 혹은 철 이른 모래 해변에는 인간들이 남겨놓은 쓰레기가 널브러져 있는데 걷는 내내 왼편으로 쭉 보게 되는 동해바다는 가늠할 수조차 없는 무섭고도 푸르른 막대한 양의 물을 그득 보듬고 꿈쩍도 않은 채 있습니다. 저 멀리 끝까지 눈을 보내 보면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옆으로 긴 직선만이 보이고 직선은 푸르지만 서로 다른 푸른색으로 하늘과 바다를 구분 짓고 있습니다. 다만 표면의 거품만이 괜스레 해안가로 밀려왔다가는 모래사장을, 자갈을, 바위를 그리고 방파제 ‘트라이포드’를 잠깐 간질이고는 다시 저 멀리 달려왔던 바다로 서둘러 물러갑니다.해안 따라 큰 어항마다 너나없이 길게 촘촘히 늘어선 많은 횟집, 대게 집들이 문밖에서 손님을 부르는데 ‘바닷가=회’ 라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매일 바닷가를 걷는 도보 여행자는 그냥 지나칩니다. 일부러 찾아간 맛집 중에 속초의 ‘머구리’ 물회 정식과 동해 막국수는 훌륭했으며 혀끝은 아직도 그 맛을 못 잊어 합니다. 동해안 식당에는 도수가 높은 빨간 소주는 없더군요. 식당의 재미난 풍경으로는 식탁에 여러 겹의 얇은 비닐을 깔아 놓고, 손님이 나가면 비닐 한 겹을 걷어내더군요. ‘섭국’이나 ‘시락’이라는 낮선 메뉴도 있읍디다.비가 온종일 줄기차게 내리던 날은 저녁도 되기 전 오후 일찍, 걷기를 중단하기도 했습니다. 무열왕 수중 묘쯤에 다다르자 온종일 내린 비는 비옷 속으로 스며들어 축축해져 왔습니다. 비는 해안가, 바다, 모래사장, 들판과 산 정상, 기와집 지붕, 그리고 아스팔트 위로…, 온 산하에 골고루 내리고 있었습니다. 도시라면 다소 불편했을 비, 그러나 갈증의 산하에는 비가 뿌려줘야만 할 것 같았고 그 빗속에서, 새삼, 작아지는 느낌이 들더군요.사람 드문 시골길을 가다 길을 물었었습니다. 사람들은 “조오기-” 라고 손으로 가리켰고, “조오기-”는 2시간이 넘는 거리가 되기도 했습니다. 포스코의 도시 포항. 포항제철 담벼락 옆길을 달리는 시내버스는 정거장을 4개나 지나도 담벼락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포스코 바다 건너, 맞은편 해안도로는 도로와 공원으로 길게 꾸며져 있는데 시민을 위한 공간이 여유롭고 풍요로워 보이기까지 했습니다. 40여년 만에 찾은 울산 시내는 6차로, 8차로의 시원한 도로망이 눈에 들어왔고 조선, 자동차로만 알려진 울산에는 외곽에 국내 ‘옹기’의 50퍼센트 이상을 만들어 낸다는 옹기 마을이 있더군요.오랜만에 마주하는 부산은 국내 도시 중 50층 이상 건물이 가장 많다는데 눈이 휘둥그레졌습니다. 수영만을 따라 걷는 데크길도 좋았고 BEXCO, BIFF와 곁을 나누며 경쟁하는 두 백화점도 재미있어 보였습니다.해파랑길의 시작 지점은 동해와 남해를 동시에 조망할 수 있는 부산 오륙도의 해맞이 공원입니다. 휴전선 바로 밑 고성에서부터 동해안을 따라 해파랑길을 거꾸로 걸어 내려와 시작점에 다다랐습니다.걸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걸었습니다. 점심때가 되면 걸음을 멈춘 곳의 근처 식당에서 점심 먹고, 잠깐 쉬고 또 걸었습니다. 날이 어두워지면 소주 서너 잔과 저녁밥을 먹고 민박집을 찾아들어 몸을 누입니다. 그리고는 다음 날 아침 다시 또 걸었습니다. 환경운동 (*1)과 미래사업(*2)에 매진하고 있는 나이 70세, 그냥, 걷는 게 좋았고, 동해바다가 좋았고 이 땅이 좋았습니다. 좋았습니다. 2,000리 길, 800킬로미터는 스페인의 산티아고 순례길과 얼추 비슷한 거리라고 합니다. (*1 쓰레기 분리수거, *2 손자 돌보기)안개비 서린 이른 봄날산길을 걷자어느 추억으로도 마음 달랠 길 없을 때손짓하는 자연의 손길보송보송 다시 살아나빛나는 몸으로 일어서는산을 맞으러 가자그곳에 파랗게 눈 떠가는나무를 찾아서언젠가 심은 그 나무 찾아서떠나기 전, 친구에게서 받은 김후란 시인의 아름다운 시 ‘언젠가 심은 나무’입니다.2015년 9월
장주익
제물포고, 고려대를 나와 직장 (애경, 현대중공업, 현대건설, 금강개발, 뉴코아백화점 등)에서 근무. 정년퇴임 후 젊어서부터 관심 있던 건축분야에서 건축물의 이해를 돕는 해설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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