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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친구가 된 벤자민 화분
2015.10.21
사무실에 새 친구가 하나 생겼습니다. 벤자민 화분입니다. 나무가 내 키만큼 자랐으니 친구라 불러도 괜찮겠지요. 최근 사무실 공간을 새로 배치하는 과정에서 통로에 놓여 있던 화분이 자리가 마땅치 않았는지 내 방으로 떠밀려 들어온 것입니다. 평소 통로에 있을 때부터 보아 온 화분이지만 같은 방 식구가 되고 나니 훨씬 친근감이 드는 것은 사람 사이의 인연과도 비슷한 것 같습니다.벤자민 친구로 인해 하루 일과가 달라졌습니다. 아침에 출근하면 화분에 물부터 뿌려 주게 되니까요. 통로에 서 있을 때는 누군가 돌봐 주겠거니 하며 신경이 쓰이지 않았는데, 이제는 내가 신경을 쓰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성가시게 됐다는 얘기가 아닙니다. 잎사귀마다 물줄기를 받아 파릇파릇 생기를 발하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내 마음도 덩달아 상쾌해지는 기분을 느끼게 되니 오히려 즐거운 일입니다.나무를 관찰하는 것만으로도 커다란 위안이 됩니다. 벤자민이 원래 열대산 고무나무 종류인 만큼 윤기를 내뿜는 두툼한 잎사귀가 듬직한 느낌을 줍니다. 어느 나무에서나 마찬가지겠지만, 특히 가지 끝마다 연녹색의 새순이 뻗어나는 모습은 경이롭습니다. 그 새순이 손톱만큼 벌어지면서 어린 잎사귀의 모습을 갖추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메마른 일상에서는 커다란 행운입니다.그렇다고 나무가 썩 멋지거나 품위 있게 가꿔진 편은 아닙니다. 가지가 대여섯 개 뻗어 있긴 해도 균형이 맞지 않고 나뭇잎도 성긴 편입니다. 더구나 위로 자라지 못하도록 가지들이 가느다란 끈으로 얽매인 채 아래로 처져 있는 어설픈 모양새입니다. 천장이 그리 높지 않은 사무실 공간 때문에 불가피하게 빚어진 일이라 생각됩니다. 새 친구에 대한 예의가 아니겠으나 볼품이 떨어진다는 게 좀 더 정확한 표현이겠지요.이 나무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바로 며칠 전입니다. 깍지벌레가 끼어 더 이상 사무실 관상용으로 놓아둘 처지가 못 된다는 것이지요. 주기적으로 회사를 방문해 화분을 관리해 주는 원예사와 통화하면서 비로소 알게 된 사실입니다. 사실은, 벤자민이라는 이름도 몰랐기에 그 이름을 물어보려고 전화를 걸었다가 얘기가 이어진 것입니다. 윤기를 잃고 비틀어진 잎사귀가 많은 것도 깍지벌레 때문이라는 설명이었습니다.결국 두어 달 뒤에는 사무실에서 쫓겨날 신세였던 것입니다. 벤자민의 줄기와 잎사귀에 기생하는 깍지벌레가 사람에게 큰 위협이 되어서가 아닙니다. 앞으로 겨울철이 되어 난방장치가 가동되고 사무실 공기가 순환되면 벌레들이 갉아먹는 나뭇잎 가루와 진드기 먼지가 호흡기로 파고드는 게 걱정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동안 농약도 두어 번이나 뿌려 주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지속적인 관리가 어렵다 보니 지금 상황에 이른 것이겠지요. 얘기를 듣고 보니 화분이 내 방에 들어올 때부터 문제가 적지 않았다는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무엇보다 말라비틀어진 가지가 한두 줄기가 아니었습니다. 원래는 가지도 더 많았고, 나뭇잎도 더 풍성했을 텐데 발육과정에서 제대로 관심을 받지 못했던 것입니다. 내가 쳐낸 가지만 해도 서너 움큼이나 되니 나무가 볼품을 유지하기가 좀처럼 어려웠을 것입니다. 한편으로는 병충해로 고생하면서도 새순을 뻗어가며 살아가려고 애를 쓴다고 생각하니 은근히 애처로워졌습니다. 그렇다면 치료 방법은 없는 걸까요. 앞으로 헤어질 때는 헤어지더라도 사무실에 같이 지내는 동안만큼은 내 나름대로 무엇인가 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차림새가 허술하긴 해도 새 친구를 얻었다고 좋아했는데 통성명에 덜렁 악수만 하고 그냥 보낼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집에서도 바깥 베란다에 화분을 놓아두곤 했으나 그때마다 제대로 돌보지 못했던 자책감이 남아 있던 터에 이번만큼은 무엇인가 흔적을 남기고 싶었습니다.물을 지속적으로 뿌려주는 것만으로도 깍지벌레 퇴치 효과가 있다는 답변을 듣고는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습니다. 근본적인 대책으로는 미흡하지만 분무기 물줄기로도 깍지벌레를 어느 정도 격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내가 옆에서 돌봐준다면 두어 달 뒤에 수목원으로 옮겨가려던 당초 계획을 미루겠다는 약속도 들었습니다. 다음 날로 분무기를 하나 구입한 것이 그런 기대 때문이었습니다. 원예사의 얘기를 들은 뒤에는 나무에 물을 더 자주 주고 있습니다. 한꺼번에 많이 주기보다는 서너 차례로 나눠주는 것이 더 효과적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가끔씩은 물을 흠뻑 뿌려줄 필요가 있다고 여기면서도 사무실이라는 제한된 여건에서 그렇게 해주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사무실에 햇빛이 거의 들어오지 않는다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약간의 보살핌만으로도 나무가 갈수록 생기를 찾아가는 모습에 하루하루가 즐겁습니다. 오늘 아침에도 가지 끝에 또 새순이 돋아나고 있습니다. 조만간 튼튼한 잎사귀로 자라나겠지요. 일단 두어 달의 기한은 넘겼지만 언젠가는 이 벤자민 나무와도 헤어져야 할 때가 다가올 것입니다. 아마 그때는 벤자민이 훨씬 더 멋있는 모습을 갖추고 있을 것이라고 스스로 다짐해 봅니다.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자유칼럼그룹은 특정한 주의나 입장을 표방하지 않습니다.
필자소개
허영섭
이데일리 논설실장. 전경련 근무. 경향신문과 한국일보에서 논설위원 역임. '일본, 조선총독부를 세우다', '대만, 어디에 있는가', '영원한 도전자 정주영' 등의 저서가 있다.
박대문의 야생초사랑
금방망이 (국화과) (Senecio nemorensis L.)
소슬바람 일기 시작한 시월의 중순, 태안반도 꼭두머리 솔향기길에서 만난 금방망이입니다. 이곳에 금방망이가 있으리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태안반도 솔향기길은 발아래 서해안을 끼고 자연 소나무 숲길 사이로 한적하고 나긋나긋하게 이어지는 길입니다. 이 길은 지금은 명품 산책길이지만, 2007년 허베이 스피리트호 기름 유출 사고 이전까지만 해도 길 없는 가파른 절벽과 산지였다고 합니다.
박대문
환경부에서 공직생활을 하는 동안 과장, 국장, 청와대 환경비서관을 역임했다.우리꽃 자생지 탐사와 사진 촬영을 취미로 삼고 있으며,시집 『꽃벌판 저 너머로』, 『꽃 사진 한 장』, 『꽃 따라 구름 따라』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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