삥땅 천국 [박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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삥땅 천국

2015.10.15


필자는 닭죽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어렸을 때는 무척 좋아했는데 군 복무 이후엔 닭죽을 잘 안 먹는 편입니다. 여름철 보양식인 삼계탕도 별로 즐기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닭 모가지 때문입니다. 1988년에 입대를 했으니 1식 3찬의 비교적 영양을 고루 갖춘 짬밥을 먹은 행복한 세대입니다. 그런데 유독 닭죽과 돼지고기가 반찬으로 나오는 날은 짬밥 먹기가 싫었습니다. 

쫄병 때, 식당에서 처음 닭죽이 나온 날이었습니다. 구수한 냄새에 이끌려 부푼 기대를 품고 식판을 들고 배식대 앞에 줄을 섰습니다. 인심 좋은 취사병이 쫄병인 제게도 넉넉히 닭죽을 퍼주어서 기분이 무척 좋았습니다. 자리에 앉아서 닭죽을 먹기 시작했습니다. 닭다리라도 하나 들어 있으면 횡재한 기분일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숟가락에 걸려 올라온 건 닭 모가지였습니다. 다시 호흡을 가다듬고 다른 건건이를 들어 올렸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도 닭 모가지가 걸려 올라왔습니다. 필자가 배식 받은 닭죽에는 닭 모가지만 네 개 들어있었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필자가 재수가 없어서 닭 모가지만 배식을 받았다고 생각했습니다. 

세월이 흘러 내무반장이 되었고 그해 여름에도 닭죽이 메뉴로 나왔습니다. 필자는 식판을 하나 준비해서 “지금부터 내 밑으로 자신의 닭죽에서 건건이를 건져서 다 이 식판에 담는다. 실시!”라고 말했습니다. 병장이 될 때까지 닭죽에서 닭다리를 본적이 없는 필자는 단 한 번이라도 닭다리를 찾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결과는 예상을 빗나가지 않았습니다. 그날 식판에는 닭 모가지만 27개가 나왔습니다. 

여기까지 이야기를 들으면, “닭죽이니까 국물이 필요해서 닭 모가지만 넣어서 끓였나 보네.” “다른 반찬에는 다리나 가슴살이 나왔을 거 아냐?”하고 물으실지 모르겠습니다. 물론 다른 반찬은 닭죽보다는 닭의 다른 부위가 조금 더 나오는 편이었습니다. 그렇지만 닭 모가지는 닭 조림에도 닭 튀김에도 어김없이 많이 나왔습니다. 마치 군대에 납품된 닭들은 꼬리 아홉 달린 구미호처럼  모가지가 아홉 개나 달린 구두계(九頭鷄)인 것처럼 말입니다. 

닭은 모가지가 하나, 다리가 둘, 날개가 둘입니다. 그런데 군대에서 배급되는 닭은 메두사의 머리처럼 하나의 몸통에 수십 개의 대가리를 달고 있었습니다. 필자는 취사반으로 들어가는 닭고기를 유심히 살펴보았습니다. 여느 닭과 마찬가지로 모가지 하나에 다리 둘, 날개 둘이었습니다. 들어갈 땐 정상이던 닭들이 해체되어 나올 땐 괴물로 둔갑하는 괴이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돼지고기도 취사반에 들어갈 땐 고기와 비계의 비율이 8대 2였는데 배식을 받을 때는 2대 8로 바뀌어서 나왔습니다. 필자는 그 이유를 최전방 GP에 파견 근무를 하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GP는 비무장 지대에 섬처럼 고립되어 경계근무를 하는 곳입니다. 보통 20~30명 정도가 근무를 합니다. 이곳에도 어김없이 부식 차량이 들어옵니다. 필자는 쇠고기가 온전하게 들어간 미역국을 군생활 중 유일하게 GP에서 먹을 수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외부와 단절된 GP에서는 음식 재료를 삥땅칠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군대에서 부식은 정해진 대로 보급이 된다면 전혀 부족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취사반에서 빼돌려서 사사로운 이익을 취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군 생활 중 이 사실을 알면서도 계급이 깡패인지라 아무 말도 못하고 전역을 하긴 했습니다만 이러한 적폐가 다 사라졌기를 바라는 마음은 늘 갖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잊을 만하면 불거져 나오는 군 관련 비리 뉴스를 접하면서 위는 위대로 아래는 아래대로 여전히 썩은 곳이 많구나 하는 탄식이 나옵니다. 

필자의 딸은 떡을 싫어합니다. 그 이유는 필자가 닭죽을 싫어하는 것과 같습니다. 중학교 3학년인 필자의 딸은 학교에서 무상급식을 받습니다. 그런데 매번 떡이 나온다는 겁니다. 밥을 먹고 후식으로 떡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 미역국 안에 떡이 들어가 있고, 반찬 속에 떡이 들어가 있고 심지어는 밥 속에도 떡이 들어가 있기도 한답니다. 마치 조리사에게 떡을 못 먹어서 죽은 귀신이라도 붙은 것처럼 급식에 매번 떡이 섞여서 나온답니다.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한 채, 필자가 한번은 딸에게 “아빠는 떡 좋아하는데, 너희 학교 급식은 아빠 취향일 것 같다.”라고 얘기했다가 삐친 딸아이의 마음을 달래주느라 혼난 적이 있습니다. 

도대체 딸아이가 다니는 학교와 배식을 담당하는 업체가 매일 급식에 떡을 넣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우리 고유의 음식인 떡을 널리 알리고 매일 섭취하게 함으로써 애국심을 고양하고자 하는 의도는 아닐 텐데 말입니다. 해답을 알 것도 같으면서도 그 속을 들추기가 참으로 애매하고 치사해집니다. 그러던 차에 충암고등학교의 급식비리가 불거졌습니다. 

필자는 사실 그 뉴스를 보고 놀라지 않았습니다. 공사장 인부들이 식사를 해결하는 함바 식당서부터 군 부대 식당까지 뇌물상납과 재료 빼돌리기 같은 비리에 얼룩져 있는 곳이 우리가 사는 사회입니다. 대한민국에서 사는 어른 중에 이런 비리를 모르고 사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필자의 아들이 다녔던 사립중학교의 급식도 형편없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런데 고등학교에 진학하니 급식이 너무 잘 나온다는 겁니다. 놀랍고 우스운 사실은 대한민국에서 급식이 잘 나오는 학교와 급식이 형편없게 나오는 학교의 급식비가 같다는 겁니다. 

자녀가 집에 와서 급식이 너무 형편없어서 못 먹었다거나 늦게 갔더니 밥이 다 떨어져서 못 먹었다는 얘기를 들었던 부모들이 많을 겁니다. 그런데 학부모들은 급식 문제로 감히 학교에 항의를 하지 못합니다. 자녀를 학교에 맡긴 부모는 언제나 을(乙)이기 때문입니다. 이 문제는 교육청이 해결해야 할 문제이고, 당국이 의지만 있다면 쉽게 해결할 수 있습니다. 

교육청 홈페이지에 학교별 급식을 비교할 수 있게 보여주기만 해도 어느 학교가 속칭 급식비로 삥땅을 치는지 쉽게 알 수 있을 겁니다. 그런데 교육청마저 급식 비리의 한 축이라면 어떤 제안을 해도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받아들여지지 않을 겁니다. 10월 14일 자 한겨레 신문에 따르면 서울시교육청이 사립학교를 관리·감독해야 할 의무를 방기해온 사실이 드러났으며 사립학교법상 학교법인은 3개월마다 이사회 회의록을 공개하게 돼 있는데 충암고는 2003년 12월 이후 회의록을 공개하지 않았다고 되어 있습니다. 다시 한번 절망을 느낍니다. 

‘모두가 행복한 혁신미래교육’ 서울시교육청의 홈페이지에 나와 있는 캐치프레이즈입니다. 혁신도 기본이 된 상태에서 가능한 것이 아닐까요? 급식 관리도 제대로 하지 못하면서 혁신과 미래를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자유칼럼그룹은 특정한 주의나 입장을 표방하지 않습니다.

필자소개

박상도

SBS 아나운서. 보성고ㆍ 연세대 사회학과 졸. 미 샌프란시스코주립대 언론정보학과 대학원 졸. 
현재 SBS TV 토요일 아침 '모닝와이드'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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