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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키디데스의 함정
2015.10.07
‘신흥세력이 대두하면 기존 패권세력과 전쟁을 하게 되는 경향이 있다’는 게 이른바 ‘투키디데스의 함정’입니다. 스파르타가 신흥 세력 아테네를 제압하기 위해 벌인 전쟁이 펠로폰네소스 전쟁이라고 그리스의 역사가 투키디데스가 정의한 데서 연유된 말로 오늘에 와선 미국과 중국 관계를 설명할 때 흔히 인용됩니다.지난 9월 22일부터 28일까지 이어진 습근평(習近平 시진핑) 중국 주석의 취임 후 최초의 미국 국빈방문 과정에서 습 주석과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양국 간의 협력을 강조하는 현란한 말잔치를 펼쳤습니다. 양국 정상은 약속이라도 한 듯이 양국관계의 상호의존성을 강조하면서 미중 간에 ‘투키디데스의 함정’은 없다고 했습니다. 먼저 습 주석은 방미 첫날 미국 시애틀에서 미국의 명사들과 가진 만찬 연설을 통해 “중국은 패권과 확장을 추구하지 않을 것”이라며 “투키디데스의 함정은 세상에 없는 것이지만 대국 간에 전략적으로 오판하면 함정에 빠질 수도 있다”고 했습니다. 이에 화답이라도 하듯 오바마 대통령은 25일 정상회담에서 “양국 간에 이견이 존재하지만 전체 구도 아래서 보면 공동이익이 이견을 훨씬 넘어서기 때문에 양국 간 협력이 대세”라며 “기존 대국과 신흥 대국이 투키디데스 함정에 빠지게 된다는 데 동의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오바마는 나아가 “양국은 이견을 잘 제어할 능력을 갖고 있다”면서 “미중 간의 경쟁은 바람직한 것으로, 건설적이고 긍정적 의미를 지닌다”고 평가했습니다.습 주석의 방미에 앞서 16일 미국 행정부의 대외정책 자문 브레인인 조셉 나이 하버드대 교수가 중국 인민일보와 인터뷰를 했습니다. 그 역시 “미중이 분야별 왕래를 강화하고, 상대를 객관적으로 이성적으로 대하면 투키디데스의 함정을 피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이 문제에 관한 한 습근평과 오바마에게 정답을 알려준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 그는 “중국의 국제적 역할이 커지는 것이 미국의 역할을 약화시키는 제로섬으로 보는 것은 어리석은 것”이라며 “중국의 발전은 사실상 일종의 ‘회귀’로 봐야 한다”고까지 말했습니다. 19세기 중반 이후 서세동점(西勢東漸)의 흐름 속에서 중국은 영국 등 유럽세력과는 달리 미국과는 전쟁을 치르지 않았습니다. 중국이 공산화한 후 한국전쟁에서 맞붙은 것이 현재까지는 처음이자 마지막 미중 대결이었습니다. 미중의 한국전 참전은 대리전 형태였지만 결과적으로는 아시아의 패권을 차지하려는 전쟁이었습니다.미중 대결 가능성은 20세기 후반 들어 중국이 개혁개방으로 경제력과 함께 군사력이 커지면서 대두됐습니다. 그러나 과거 미소 간의 냉전 체제에 비할 때 미중 관계는 덜 적대적이고, 협력적인 경쟁관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 투키디데스의 함정은 특별한 정의를 부여할 필요도 없는 자연스런 현상이기도 합니다. 신흥세력이 기성세력에 위협이 된다면 두 세력 간에 전쟁의 가능성은 클 것입니다. 그런 대결로 인한 세력판도의 변화가 인류의 역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그러나 인류 역사에서 정작 대국 간의 건곤일척의 전쟁은 많지 않았습니다. 대국이 인접한 약소국을 침략해서 속국으로 만들려는 전쟁이 대부분이었습니다. 한 제국이 천하를 제패하면 주변국들과는 조공 외교에 의해 평화가 유지됐습니다. 대국 간의 전쟁이라면 2차 세계대전 다음으로 미소 간의 냉전체제를 들 수 있습니다. 그 시절 미소는 한국전쟁 , 베트남 전쟁, 이란 이라크 전쟁, 아프가니스탄 전쟁 등 도처에서 대리전을 치렀지만, 전쟁 일보 전까지 치달았던 쿠바사태 때를 제외하곤 정면 대결은 없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전쟁의 원인은 상대에 대한 불신과 오판입니다. 습 주석도 미국인들을 향해 색안경을 끼고 중국을 보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자신의 실수로 도끼를 잃어먹고 이웃을 의심했던 사람이 도끼를 찾고 뉘우치는 중국의 오래된 예화를 소개하기도 했습니다. 오늘날은 국가 간 불신의 메커니즘도 복잡하지만 이를 해소할 소통의 방법도 다양하게 열린 시대입니다. 근세 이전의 전쟁은 대부분 영토욕에서 비롯됐습니다. 지금 세계에서 2차대전 이후에 획정된 국경은 대체로 잘 지켜지고 있고, 도서지역 중심으로 분쟁지역들이 있지만 세계대전으로 번질만한 분쟁지역은 아닙니다. 아무리 미일동맹이 강화됐다고 해도 일중 간의 조어도(釣魚島 · 일본명 센카구 열도) 영유권 분쟁이 미중대결로 비화하리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특히 미중관계는 경제적으로 상호의존 관계입니다. 미국 시장 없이 중국 경제가 지탱할 수 없고, 동시에 미국의 국채를 가장 많이 보유한 중국의 협조 없이 미국 또한 자국 경제를 제대로 운용하기 어렵습니다. 이렇듯 미국과 중국은 전쟁을 할 수 있는 사이가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이쯤 되면 미중 간에 전쟁이 나면 미국 편을 들어 전쟁을 하겠다며 안보법까지 고쳐 놓은 일본의 아베 신조 총리의 검은 속이 훤히 보이는 듯합니다.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자유칼럼그룹은 특정한 주의나 입장을 표방하지 않습니다.
필자소개
임종건
필자는 1970년 중앙대 신문학과를 나왔으며 한국일보사와 자매지 서울경제의 여러 부서에서 기자와 데스크를 거쳤고, 서울경제 논설실장 및 사장을 지냈습니다. 한남대 교수, 한국신문윤리위 위원 및 감사를 지냈고, 일요신문 일요칼럼의 필자입니다. 필명인 드라이 펜(Dry Pen)처럼 사실에 바탕한 글을 쓰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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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쓴풀 (용담과) Swertia pseudochinensis H. Hara
산들거리는 갈바람 따라 산국, 감국 춤사위 물결치는 초가을, 호젓한 풀숲길에서 만난 청초한 꽃송이. 깔끔하고 단아한 연보랏빛 맑은 꽃이 어린 시절 옆집 순이가 하얀 수틀에 정갈스레 한 땀 한 땀 피워내던 바로 그 꽃. 번지는 저녁놀, 가을 햇살 아래 소박한 듯 화사하게 하늘 바라 짓는 미소처럼 피어나는...
박대문
환경부에서 공직생활을 하는 동안 과장, 국장, 청와대 환경비서관을 역임했다.우리꽃 자생지 탐사와 사진 촬영을 취미로 삼고 있으며,시집 『꽃벌판 저 너머로』, 『꽃 사진 한 장』, 『꽃 따라 구름 따라』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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