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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잔하게 퍼져 나가는 교육 르네상스
2015.10.05
지난 9월 20일 제주 어느 대학교의 국제교류회관에서는 [휴먼 르네상스 아카데미, Human Renaissance Academy]라는 일 년 교육프로그램을 끝내는 수료식이 있었습니다. 행사의 한 시점에서, 모르는 사람이 보면 무슨 사건이 있나 싶을 정도로, 행사장이 눈물로 가득해졌습니다. 매년 그랬기에 이번에는 어쩔 수 없이 나오는 눈물을 훔칠 수 있도록 저는 아예 휴지를 꺼내놓고 있었습니다. 지난 한 해 이 아카데미에서 공부한 학생들이 하나씩 수료의 소감을 발표하는 순서였습니다. 대부분 목이 메어 말을 잇지 못하면서도 그간 자신이 겪은 각별한 경험과 변화를 토로(吐露)합니다. 학생들이 울먹이면 이 과정에 참여했던 교수진과 수료식을 보러 각지에서 온 후원진과 일반 참석자들도 반대편에서 고이는 눈물을 닦아내기에 바쁩니다.‘HRA’는 대학의 공식적 교육 프로그램이 아닙니다. 오늘날 대학교육이 올곧은 청년 인재를 양성하기에 미흡하다고 본 지역 내외의 뜻있는 사람들이 재능기부를 통해 운영하는 그야말로 사설 아카데미입니다. 이 프로그램은 제주 지역 대학생 희망자 중 3, 4십 명을 선발하여 정확히 일 년 52주, 방학 없이 매주 토요일 8시간씩 과외로 공부를 하게 하는 과정입니다. 여느 젊은이들이 향유하는 일상의 즐거움은 거의 잊어야 할 정도입니다. 매년 9월에 입학하여 다음해 9월에 수료하며, 크게 예비교육 4주, 교실수업 40주(겨울캠프 7박8일 포함), 인턴 과정 8주 등으로 구성되는, 집중도가 높은 ‘스파르타식’ 교육 프로그램이라 할 수 있습니다. 처음 들어와서 참여해보다가 도저히 못 견디겠다, 못 따라가겠다고 낙오하는 학생들이 더러 있지만 대부분 끝까지 가서 수료를 합니다. 그만큼 과정이 힘들고 고통스러웠기에 이를 다 마치고 나서 아마도 스스로 보람을 찾았다는 데서 목이 메어 말을 잇지 못하였을 것입니다.보다 실감이 나게끔 교육 내용을 살펴보면, 100여 권의 동서양 고전과 명작을 읽고 줄거리와 시사점(示唆點) 등을 정리해 발표한 후 강사와 같이 토론함으로써 인문에 대한 관심을 고취하는 한편, 글쓰기 능력과 소통.발표 능력을 향상하도록 합니다. 거기다가 명시(名詩), 명문(名文)을 암송토록 하여 품격 있는 언어 능력과 영어 실력도 향상시킬 수 있도록 합니다. 고전과 명작을 읽히는 것은 오늘날 대학교육에서 결여되기 쉬운 ‘바른 인성 함양’을 위한 것으로 학생들에게 덕성과 지혜와 용기를 갖춰 줄 것으로 보입니다. 더하여, 학생들의 사회진출 역량을 높일 수 있도록 미래 직장에서의 성공적인 업무 수행을 위한 실무 교육도 병행합니다. 최신 경영서와 자기 계발에 관한 책들을 읽고 전.현직 기업 임원 출신의 강사들과의 토론을 통해 기획.조사 능력과 문제 해결 능력을 기르도록 합니다. 또 많은 젊은이들이 간과하기 쉬운 바른 어법과 발성(發聲), 자기 표현력과 프리젠테이션 능력을 길러 주기 위해 스피치 훈련 과정도 마련하고 있습니다. ‘겨울캠프’를 통해 일부 교수진과 학생들이 함께 생활하면서 진행하는 고강도의 합숙 교육, 틈틈이 사회지도층 인사와 기업 CEO를 초청해서 듣는 특강, 사회복지시설 등에서의 80시간 이상의 봉사 활동, 그리고 관리자 급의 젊은 직장인들로 구성된 멘토(mentor) 단과 대학생활과 취업 진로 등에 관한 상담도 하고 있습니다.이제 ‘휴먼 르네상스 아카데미’의 일 년 과정이 여린 대학생들에게 얼마나 힘든 것인지 짐작하실 것입니다. 다른 것도 그렇지만 요즘 인터넷에 길들여진 젊은 층에게 소위 문사철(文史哲)의 고전 읽기가 얼마나 생소하고 빡빡한 과정일는지 아실 것입니다. 이런 힘들고 버거운 과정을 거쳐야 비로소 수료식에 참가할 수 있기에 그 학생들의 감회가 어떠할 것이며 왜 말을 제대로 이어나가지 못하는지를 이해하실 것입니다. 보통의 졸업식에서 보기 흔치 않은 광경입니다. 교수진들이 단상에 도열하고, 수료증을 받아 든 학생들이 하나씩 그 앞을 지나면서 악수를 합니다. 학생들은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교수들을 부둥켜안고 울먹이는데 이것이 제가 본 ‘휴먼 르네상스 아카데미의 진면목이라 하겠습니다. 열정과 감동, 사랑과 존경, 동료애와 협동의 마음이 우러납니다. 바로 교육이 학생들에게 갖춰주어야 하는 덕목들인 것입니다.이 과정에 참가하는 학생들은 의지와 끈기를 가진 학생들입니다. 그러기에 그들은 험난한 교육과정을 끝까지 헤쳐 나갑니다. 그리하여 힘들지만 보람 있었던 한 해를 회고하며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교수진의 봉사 또한 열정 없이는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신문사에서 논설위원을 하시던 언론인들과 성공한 기업인들, 은퇴한 공직자들이 대학에서 못해주는 부분을 메워 줍니다. 미래사회를 짊어질 청년 인재를 올바로 길러내야 한다는 생각에서, 넘쳐나는 열정과 에너지로 젊은이들과 씨름하고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서울과 지방, 또 제주에서 와서 보수 없는 재능기부를 하고 있습니다.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교수진뿐 아니라 인성 교육의 가치를 인식하고 재능 대신 재정적으로 기여하고자 하는 기업인이나 독지가들 또한 늘어나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는 만연돼 있는 교육 왜곡 현상을 안타까워하면서 이런 방식의 인성 교육에 참여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재능이나 금전을 기부하고자 나설 사람들이 적지 않을 것입니다. 평생의 직장을 원만하게, 나름대로 성공적으로 마치신 분들이 남은 인생의 황금 같은 시간들을 보람 있는 일에 쓰고 싶어 하지 않을 리가 없습니다. 제주 ‘휴먼 르네상스 아카데미’를 본뜬 교육과정들이 벌써 다른 곳에서도 생겨나고 있습니다. 우리 교육의 문제점을 적나라하게 드러내어 교육부나 교육기관들을 비판하고 앉아만 있을 때는 지난 것 같습니다. 사회의 모든 문제가 공적 부문의 노력으로 해결되는 시기 또한 지난 것 같습니다. 다방면으로 사회적 자본을 축적해 나가는 것이 우리 사회의 또 하나의 과제인 만큼 이제는 교육 바로 세우기부터 민간이 나서서 역할을 할 때라고 봅니다.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자유칼럼그룹은 특정한 주의나 입장을 표방하지 않습니다.
필자소개
정달호
서울대 정치학과를 졸업한 후 줄곧 외교관으로 일했으며 주 파나마, 이집트대사를 역임했다. 은퇴 후 제주에 일자리를 얻는 바람에 절로 귀촌을 하게 되었고, 현재 제주평화연구원 객원연구위원으로 있으면서 한라산 자락에 텃밭과 꽃나무들을 가꾸며 자연의 품에서 생활의 즐거움을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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