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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작품에 걸칠 인간의 구조물
2015.09.25
- 설악산 케이블카를 염려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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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보다 산을 좋아해 젊은 시절부터 고희를 바라보는 지금껏 주말마다 산에 오르는 이가 있습니다. 그의 꿈은 팔순에 대청봉(1,708m)에 오르는 것입니다. 동창회가 마련한 산장 지기를 자임하며 산에서 살다시피 하는 이도 있습니다. 명문 법대를 졸업하고 있지도 않은 산악과를 나왔다고 빡빡 우기는 사람입니다. 흥미로운 건 설악산 케이블카 설치에 대한 이견입니다. 전자는 산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편익에도 부합하니 설치해도 좋겠다고 말합니다. 후자는 자연 훼손과 등산로의 혼란이 우려돼 설치하지 말았으면 합니다. 국립공원위원회(위원장: 환경부 차관)가 지난달 28일 강원도와 양양군이 신청한 '설악산국립공원 오색 케이블카 설치 계획'안을 받아들였습니다. 양양군 오색리 탐방로 입구에서 끝청(1,480m) 하단까지 길이 3.5㎞의 케이블카를 설치한다는 것입니다. 이번 안은 환경영향평가 등을 거쳐 내년 봄쯤 착공해 평창 동계올림픽이 열리는 2018년 초 운행에 들어가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계획안이 통과된 뒤에도 의견이 분분합니다. 그만큼 관심이 높기 때문일 것입니다. 산행을 즐기는 사람들 가운데서도 의견이 나뉠 정도니 이해할 만합니다. 저 자신도 자고 나면 생각이 달라져 판단이 쉽지 않습니다. 강원도와 양양군은 관광객을 유치해 지역 경제를 살리고, 노약자에게도 자연경관을 즐길 수 있도록 편익을 제공하고, 환경 훼손도 최소화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반대론자들은 수많은 관광객 유입으로 자연 훼손이 불 보듯 뻔하다고 주장합니다. 자연림이 벌목되고 멸종위기종인 산양의 최대 서식지가 파괴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상반되지만 두 주장에 모두 상당한 근거가 있어 보입니다. 그러나 반대 주장을 완화하기 위해 신설될 케이블카에서 기존 탐방로로의 진입을 차단하겠다는 계획은 반대론자들 주장처럼 현실성 없는 이야기입니다. 끝청 아래 200m 지점의 케이블카 상부 종점에 내린 사람들 가운데 처음부터 대청봉에 오르리라 마음먹은 등산객을 막아내기란 쉽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 방침은 원성에 부딪혀 오래 버티지도 못할 것입니다. 또 등정에 뜻이 없는 상당수 관광객들은 끝청 부분에서 설악산 풍광을 즐기고 누가 말려도 내려갈 것입니다. 오히려 기존 탐방로와의 조화로운 연계로 등산객과 관광객이 혼란 없이 제 갈 길을 가도록 설치하고 관리하는 것이 케이블카의 효용가치도 높이고 설치 목적에도 부합하는 일이 될 것입니다.
반대론자들 가운데 덕유산의 예를 들어 케이블카가 결국 설악산의 주 등산로가 될 수 있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상부 종점이 한계령-서북 능선-끝청-중청-대청으로 이어지는 코스와 가깝기 때문입니다. 옳은 지적입니다. 덕유산 케이블카(길이 2,659m)는 실제로 정상 향적봉(1,614m)을 가장 손쉽게 오르는 길입니다. 또 덕유산을 가장 덜 훼손하는 길이기도 합니다. 1997년 운행을 시작한 덕유산 케이블카 상부 종점은 설천봉(1,520m) 아래 언덕에 설치되어 있습니다. 20분 정도, 600여m만 더 걸으면 향적봉에 이르게 됩니다. 그러나 설천봉 쉼터에서 풍광을 즐기다 내려갈 사람들은 다시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갑니다. 큰 혼란이나 자연 훼손 없이 등산객들은 산행을 계속합니다. 중국 호남성(湖南省)에는 천하제일경이라 자랑하는 ‘장가계(張家界) 국가삼림공원’이 있습니다. 도연명(陶淵明)의 시 ‘도화원기(桃花源記)’의 배경이라 해서 ‘무릉원(武陵源)’이라 불리기도 합니다. 기기묘묘한 경관에 걸맞게 이곳에서는 아득한 옛날부터 지금까지 갖가지 설화가 만들어집니다. 유방(劉邦)이 한신(韓信), 장량(張良)과 같은 명장 재사를 모아 항우(項羽)를 물리치고 막 한(漢)나라를 세웠을 때였습니다. 대업을 이루자마자 의리 없이 위험인물 제거에 나섭니다. 첫 번째로 걸려든 한신이 토사구팽(兎死狗烹)당하는 꼴을 보고 장량은 삼십육계 놓아 무릉원에 숨어버렸습니다. 유방이 몇 번이나 군사를 보냈으나 끝내 잡지 못하자 “그래, 거기 엎드려 잘 살아라” 하고 더 이상의 추적을 포기해 장가계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관광 가이드가 정색을 하고 설명했습니다. 그럴듯하게 ‘張良墓’라는 큼직한 표지석도 놓여 있습니다.
SF 영화 <아바타>의 주요 장면들이 촬영된 뒤엔 지구인들이 대체자원을 찾아 나섰던 행성 ‘판도라’의 형상으로 명성을 더하게 되었습니다. 그 바람에 이전까지 황산(黃山)과 비교하는 멋진 한시들이 붙었던 자리에 지금은 <아바타>의 괴기스러운 그림들이 붙어 있습니다. 이런 것이야말로 환경 파괴의 한 유형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장가계의 가장 높은 봉우리인 1,050m의 황석채(黃石寨)에 오르려면 2시간 반 이상 3,800개가 넘는 계단을 올라가야 합니다. 그러나 케이블카를 타면 누구나 손쉽게 산정에서 발아래 펼쳐지는 기암괴석의 비경을 즐길 수 있습니다. 케이블카 진입로에는 ‘人生不到張家界, 百歲豈能稱老翁(인생부도장가계, 백세기능칭로옹)’이라는 문구가 쓰여 있습니다. ‘사람이 태어나서 장가계에 가 보지 않았다면 백세가 되어도 어찌 늙었다고 할 수 있으랴.’ 라는 뜻이랍니다. 수직으로 솟아 있는 바위를 뚫고 높이 335m의 세계에서 가장 높은 엘리베이터 ‘백룡천제(白龍天梯)’도 설치되어 있습니다. 거대한 자연 경관 속에 조화롭게 설치되어 케이블카도 엘리베이터도 그렇게 볼썽사납게 드러나지는 않는 편입니다. 오히려 천하제일경을 자랑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시설로 인식될 정도입니다.
만년설의 아름다운 풍광으로 유명한 알프스 최고봉 몽블랑(4,807m)은 접경을 이룬 프랑스의 샤모니 몽블랑, 이탈리아의 앙트레브, 두 마을 사이에 케이블카가 설치되어 전 세계의 수많은 여행객들을 불러 모으고 있습니다. 그런 인공시설이 없었다면 오늘날 관광명소로 세계인들의 찬사를 듣지 못했을지도 모릅니다. 물론 자연 훼손이 없지 않았겠지요. 그러나 있는 그대로 꼭꼭 숨겨두는 것만이 잘하는 일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마치 산행 케이블카의 당위성을 늘어놓은 것 같습니다만 사실 어느 쪽만 옳다고 볼 수 없는 것이 자연 개발입니다. 기본적으로 자연은 우리 당대의 재산이 아닙니다. 자칫 잘못 방치하거나 손을 대 가치의 증대가 아니라 훼손이 가해진다면 후대에까지 죄를 짓는 일이 됩니다. 불같이 일어날 각 지역의 비슷한 요구에는 어떻게 대처할지, 예산 확보에는 문제가 없는지, 각각의 이익과 손실의 크기는 어떠할지, 객관적이고도 엄격한 기준을 세워 따져 보아야 할 일입니다. 그리고 만약 어느 쪽이건 선택해야 한다면 반대편 의견에 더욱 세심히 귀를 기울여야 불가피한 손실과 위험, 아니면 불편과 불이익을 최소화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설악산 케이블카 설치안은 심의에서 통과되었지만 환경 훼손 최소화, 멸종위기종 보호대책 수립, 시설 안전 보강 등등 여러 전제 조건들이 달려 있습니다. 어차피 설치하기로 했다면 논란의 확산보다는 어떤 요소, 어느 단계도 소홀함이 없이 철저한 점검과 확인으로 후대에 부끄럼 없는 명품이 되도록 만전을 기해야 할 것입니다.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자유칼럼그룹은 특정한 주의나 입장을 표방하지 않습니다.
필자소개
방석순
스포츠서울 편집국 부국장, 경영기획실장, 2002월드컵조직위원회 홍보실장 역임. 올림픽, 월드컵축구 등 국제경기 현장 취재. 스포츠와 미디어, 체육청소년 문제가 주관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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