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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의 재해석
2015.09.21
지난여름은 ‘위태(危殆)’하였습니다. 전국을 뒤흔든 메르스 공포에다, 계절을 잊은 장맛비와 엇갈리는 가뭄, 막장 납량물 같은 롯데그룹 경영권 다툼, 북한의 목함 지뢰 도발, 작은 세월호와 닮은꼴인 돌고래호 참사…. 개인적으론 ‘땀띠와 두드러기의 나날’이었어요. ‘술과 장미의 나날’이면 좋았으련만.여름을 보내고 가을을 맞으며 정신이 혼미한 중에 ‘도움 안 되는’ 이런저런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선현의 고답적인 가르침을 변화하는 시대상에 비추어 새롭게 해석해보면 어떨까 하는 착안을 한 것이죠. 한번 웃자고요. 그런데 ‘웃픈(웃고 있어도 눈물이 나는)’ 것은 웬일인지? #1 태산이 높다 하되 태산이 높다 하되 하늘 아래 뫼이로다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 리 없건마는 사람이 제 아니 오르고 뫼만 높다 하더라조선 전기의 문인이자 서예가인 양사언(楊士彦, 1517~1584)의 시조입니다. 일이 잘 안 된다고 한탄만 하지 말고 일단 시도하고 지속적으로 열심히 노력하라는 권면가(勸勉歌)죠. 태산(泰山)이 별로 높지도 않은데 잘못된 인용이라고 일각에서는 비판하지만 비유적으로 쓴 것이니 그냥 넘어갑니다. 어쨌거나 이런 내용을 ‘n포세대(n抛世代, 포기할 것이 불특정 무한대에 이른다는 신조어)’ 젊은이들에게 들려주면 코웃음칠 거예요. 요새 젊은이들이 이해하는 시조의 뜻은 다음과 같습니다. “스펙을 쌓아라!”#2 이런들 어떠하며이런들 어떠하며 저런들 어떠하리 만수산 드렁칡이 얽힌들 어떠하리우리도 이같이 얽어져 백년까지 누리리라. 고려 말 변방 출신의 실세 이성계(李成桂, 1335~1408)가 사냥을 하다가 말에서 떨어져 몸을 다쳤어요. 충신 정몽주(鄭夢周, 1337~1392)는 환자의 상태를 살피러 병문안을 핑계로(내심 죽기를 바라며) 호랑이 굴이나 다름없는 이성계의 집을 방문합니다. 이때 이방원(李芳遠, 1367~1422)이 정몽주에게 시를 한 수 들려줍니다. 하여가(何如歌)죠. 자연을 빗대 삶의 이치를 설파한 듯 보이지만 고단한 인생 살지 말고 우리 편에 붙어서 사이좋게 영원히 살아가자는 직설적인 회유였지요. 이 시조의 내용을 한마디로 때려보죠. “대충 살아!” “그럼 어때?"입니다. “영어로는 How about?” 쯤 되려나요?#3 이 몸이 죽고 죽어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 죽어백골이 진토 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님 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 줄이 있으랴저 유명한 단심가(丹心歌)입니다. 이방원의 회유 공작을 모를 리 없는 정몽주가 의연히 화답하는군요. 죽자 사자 하는 연서가 아닙니다. 정몽주는 백 번을 죽어도 고려 왕조를 섬길 것이니 너희 일파는 나를 설득할 알량한 생각일랑 집어치우라고 준엄하게 경고를 한 후 황급히 이성계의 집을 빠져나옵니다. 대업의 걸림돌인 정몽주를 설득한다는 것이 무망하다고 생각한 이방원은 부하를 보내 선죽교에서 정몽주를 살해하지요. 오호라, 애닯도다 충신의 넋! 정몽주는 무슨 말로 결연한 의기(意氣)를 떨친 것일까요? “나의 길을 가련다!” 즉, “마이 웨이(My Way)!”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자유칼럼그룹은 특정한 주의나 입장을 표방하지 않습니다.
필자소개
김창식
경복고, 외국어대 독어과 졸업. KAL 프랑크푸르트 지점장 역임.한국수필(2008, 수필) 신인상 . 시와문화(2011, 문화평론) 신인상.
게스트칼럼 / 유능화
상허하실(上虛下實)
대표적인 병법서에 클라우제비츠(Karl von Clausewitz, 1780년 ~ 1831년, 프로이센 군사 사상가)가 지은 <전쟁론>과 손무(孫武, BC 545년~BC 470년경, 중국 춘추시대 전략가)가 지은 <손자병법>이 있습니다.클라우제비츠는 적의 중심을 향해 결정적 시점에 최대한의 군사력을 동원해서 최대한 타격을 가할 것을 주장합니다. 대장내시경 검사로 용종이나 암이 발견되면 그 중심을 잘라내서 치료하는 현대의학의 개념과 궤를 같이합니다. 염증을 유발하는 세균이 있으면 항생제를 사용하여 세균을 박멸하고, 암세포가 있으면 화학요법이나 방사선 치료를 통하여 암세포를 죽입니다. 즉, 몸을 파(破)하여 원인을 제거하는 것이니 파승(破勝)입니다.<손자병법>은 원치 않는 싸움을 피하며 원하는 것을 얻으라고 말합니다. 한 지인의 모친은 건강관리를 잘하여 97세에 타계했습니다. 살아생전 바른 건강관리와 긍정적인 사고방식으로 아예 암이라는 질병이 몸에 쳐들어오지 못하게 했습니다. 몸을 온전히 유지한 상태에서 이기는 것이니 전승(全勝)입니다. <손자병법>은 동양의학의 핵심인 양생(養生)과 궤를 같이합니다.양생 철학의 중심에는 '상허하실'(上虛下實)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상허하실은 상체는 허하고 하체는 실해진다는 개념인데, 열 순환의 관점에서 보면 '머리는 차갑게, 발은 따뜻하게'라는 두족한열(頭足寒熱)과도 일맥상통합니다. 머리가 무겁고 마음이 무거울 때 많이 걸으면 머리도 가벼워지고 마음이 가벼워지는 것을 경험한 적이 있으실 겁니다. 머리가 무거운 상실하허(上實下虛)의 상태가 걷기를 통하여 상허하실(上虛下實)의 상태로 된 것입니다. 동양의학에서는 고혈압, 당뇨병, 두통 등 상체의 모든 병을 상실하허로 인한 증상으로 봅니다.요즘 뉴스를 보면 스스로 화를 통제하지 못해서 예상치 못한 일을 저지른 행동의 기사가 주류를 이룹니다. 폭행, 살인으로 이어지는 사건들… 모두 화가 머리끝까지 뻗쳐 자기도 모르게 흥분한 상태에서 우발적으로 벌인 행동의 결과입니다. 상실(上實)로 인하여 자제력을 잃고 이성의 상실(喪失)로 이어진 것입니다.동양의학에서는 상허하실을 위한 방법으로 단전호흡과 명상을 중요시합니다. 단전호흡이나 명상을 하면 마음이 가라앉고 이로 통하여 하실(下實)을 이루고, 그렇게 되면 자연적으로 상허를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마음이 가라앉지 않으면 예상치 않은 부작용이 생깁니다. 먼저 마음이 흩어져 산만(散漫)해집니다. 마음이 산만해지니 귀가 얇아지고 남에게 잘 속습니다. 또 마음이 들뜨게 되면 만(慢) 코스로 나아가게 됩니다. 먼저 자만하게 되고, 자만이 교만을 낳고, 교만이 오만을 낳으니, 높은 위치에 오르거나 돈을 많이 번 사람들이 여차하면 빠지기 쉬운 코스입니다. 만(慢) 코스의 사람들은 상대방에게 거만하게 비쳐 불만을 품게 하니 인화가 될 리가 없겠지요.상허하실을 어떻게 취할 수 있을까요? 간단한 상허하실의 방법이 있습니다. 단전에 힘을 주고 소리 내지 않고 웃는 것입니다. 웃으면 자연적으로 상허하실이 되어 몸에 좋고 마음에도 좋습니다. 지하철로 출퇴근하다 보면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고개를 수그리고 스마트폰에 빠져 있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카톡, 뉴스, 게임 혹은 동영상을 보는 것입니다. 스마트폰을 사용하면 할수록 상실하허의 상태에 빠지게 됩니다. 목 디스크, 경추통, 손 저림, 두통, 눈 피로 및 집중력 저하 등 스마트폰의 부작용이 날이 갈수록 증가하고 있습니다. 과도한 스마트폰 사용으로 인한 상실(上實)이 건강의 상실(喪失)로 이어지면 의사들로서는 좋겠지만, 사회적으로 크고 길게 보아서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오늘부터라도 스마트폰 사용을 줄이고, 대신 단전에 힘을 주고 소리 내지 않고 웃어 보세요. 상허하실이 되어 몸은 건강해지고 마음은 편안해지는 마법의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유능화
경복고, 연세의대 졸업. 미국 보스톤 의대에서 유전학을 연구했다. 순천향의대 조교수, 연세의대 외래교수를 지냈으며 현재 서울시 구로구 온수동에서 연세필 의원 원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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