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서는 다 양서다 [임철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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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서는 다 양서다

2015.09.16


9월은 독서의 달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책에 관한 소식에 더 귀를 기울이게 됩니다. 나는 늘 ‘이 세상엔 왜 이렇게 읽어야 할 책이 많은가’하고 투덜거리며 사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책이 좀 덜 나왔으면 좋겠다는 못된 생각까지 더러 하는데, 출판시장의 불황과 관계없이 요즘도 책은 연일 쏟아져 나오는 것 같습니다. 요즘 주목하게 된 책 소식 중 고서에 관한 이야기를 좀 하고 싶습니다. 

1983년 문을 연 고서점 호산방(壺山房)이 며칠 전 서울을 떠났습니다. 창덕궁 앞 서점의 문을 닫은 박대헌 대표는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한 판매 등은 계속할 예정”이라고 말했지만, 서적 감별과 경영에 현대적 개념을 도입한 대표적 고서점이 서울에서 사라진 것은 안타까운 일입니다.   

박씨는 도서정찰제와 온라인 판매, 고서경매전을 도입하는 한편 그동안의 학습과 서점 운영경험을 통해 습득한 지식과 정보를 바탕으로 우리나라 고서에 관한 서지학적 저서도 낸 바 있습니다. 더욱이 그는 맨 처음 장안평에서 고서점을 낸 뒤 서울 광화문, 강원도 영월, 서울 프레스센터, 파주 출판도시, 서울 경운동, 종로 등 일곱 군데를 옮겨 다니면서 고서의 가치와 의미를 널리 알리는 데 기여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박씨는 1999년 영월의 폐교를 임차해 열었던 책박물관을 영월군과의 이견으로 4년 만에 닫아야 했습니다. 박씨에 의하면 처음에 호의적이었던 영월군은 무슨 이유에선지 '책마을 선포식'을 하면서 영월 책박물관장인 박씨를 배제했다고 합니다. 영월군이 고서를 사들일 때 속아서 가짜를 샀다고 한 박씨의 지적도 군 관계자들의 기분을 상하게 했던 것 같습니다.   

어쨌든 박씨는 이제 전북 완주군 삼례읍의 책마을사업을 위해 삼례읍으로 옮겨 간 상태입니다. 2013년부터 삼례읍에 조성된 책마을의 자문에 응해온 그는 최근 한 인터뷰에서 “삼례 책마을이 언젠가는 완주군민을 먹여 살릴 거라는 생각으로 일한다”고 말했더군요. 영월이든 삼례든 책을 아끼고 독서를 생활화할 수 있다면, 특히 갈수록 귀해지고 인멸되는 고서의 보전과 보급이 활발해지게 할 수 있다면 장소가 무슨 문제이겠습니까? 문화의 중심, 도서의 중심인 서울에서 대표적인 고서점이 없어진 게 아쉬운 일이지요.   

잘 알려져 있다시피 일본이나 중국에는 큰 도시마다 고서점 거리가 날로 번창하고 문화의 중심지가 되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있는 것도 없어지는 형편입니다. 고서점의 전통이 빛나던 서울 인사동은 공예품점과 음식점 거리로 바뀐 지 오래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경기도 군포시가 지난해에 이어 개최한 ‘군포독서대전’(9월 11~13일)에서는 헌책방 거리가 마련돼 3일간 1,600여 권의 헌책이 새 주인을 만났습니다. 또 시민이 주도한 독서골든벨 외에도 작가와의 만남이나 특별 강연회를 열고, 가족 및 마을 단위로 참여한 시민들이 헌책방을 운영했습니다. 

특히 마지막 날에는 세계 책마을협회의 명예 종신회장인 리처드 부스(77) 씨가 이곳을 찾아와 책 축제에 힘을 보탰습니다. 영국의 시골 마을 헤이온와이(Hay-on-Wye)를 세계적인 책마을로 만든 그는 고향 헤이온와이에서 17세까지 성장한 뒤, 옥스포드 대학을 졸업하고 귀향해 이 마을에서 50여 년째 살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는 고서의 가치에 대해 “새 책은 국가 안에서 판매되지만 고서는 국가를 넘어 세계인이 공유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새 책이 국가경제를 성장시킨다면 고서는 세계를 성장시키고 국가를 넘어 사람들을 소통과 이해의 길로 이끈다는 것입니다.

고서는 다 양서입니다. 우리도 외국인들처럼 고서를 아끼고 후대에 길이 전승되도록 해야 합니다. 우선 내 집에 어떤 고서가 있는지부터 살펴봐야 합니다. 고서란 꼭 조선시대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책이 아닙니다. 한국고서연구회는 1959년 이전에 출판된 책을 고서라고 할 수 있다고 정의한 바 있습니다. 호산방 주인 박대헌 씨의 경우는 한국전쟁이 끝난 1953년 이전에 나온 책을 고서로 본다는 견해를 밝혔습니다. 6·25 때 수많은 책이 소실됐을 뿐만 아니라 전쟁 중 활동 제약으로 출판된 책이 매우 적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고서와 고서점이 잊히고 천대받는 시기에 다산 정약용(1762~1836)의 하피첩(霞帖)이 지난 14일 고서 경매에서 개인에게 넘어가지 않고 국립민속박물관에 낙찰된 것은 참 다행스러운 뉴스였습니다.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자유칼럼그룹은 특정한 주의나 입장을 표방하지 않습니다.

필자소개

임철순

1974~2012년 한국일보 근무. 문화부장 사회부장 편집국장 주필 및 이사대우 논설고문을 역임했다. 
한국기자상, 삼성언론상, 위암 장지연상 수상. 
현재 이투데이 주필 겸 미래설계연구원장, 자유칼럼그룹 공동대표, 한국언론문화포럼 회장, 
한국1인가구연합 이사장.

박대문의 야생초사랑

산오이풀 (장미과) Sanguisorba hakusanensis Makino


아슬아슬 깎아지른 바위 절벽에 눈에 띄는 여인의 붉은 입술처럼 곱고 진하게 피어나는 산오이풀 꽃. 바위 틈새 비집고 뿌리를 내려 불꽃처럼 타오르는 꽃을 피웁니다. 따가운 한여름 햇살 속에서 가을을 알려주는 늦여름 꽃입니다.

필자소개

박대문

환경부에서 공직생활을 하는 동안 과장, 국장, 청와대 환경비서관을 역임했다.
우리꽃 자생지 탐사와 사진 촬영을 취미로 삼고 있으며,
시집 『꽃벌판 저 너머로』, 『꽃 사진 한 장』, 『꽃 따라 구름 따라』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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