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70년/구일본군위안부②】前 일본군, “매주 일요일 위안소 갔다”…사람 아닌 물건으로 다뤄


주한일본대사관 앞의 ‘평화의 소녀상 출처 koreareporter.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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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이 아니라 물건처럼 다뤘다”. 전쟁터에서 구 일본군 위안부와 관련했던 전 군인과 간호사들은 이렇게 되돌아봤다.


1941년에 출정한 중국 헤이룽장성 치치하얼(黑龍江省齊齊哈爾)에서 위안소를 이용했던 도치기현 가누마시(栃木県鹿沼市)의 네모토 조주(根本長寿) 씨(95)는 “매주 일요일에 가서 월급의 대부분을 썼다”고 털어놨다.


주둔지 옆에 있던 위안소는 단층건물로 약 30개의 방이 있었고 방의 크기는 3조(畳) 정도였다. 혼자서 마음대로 갈 수는 없었으며 매번 반장들의 인솔을 받으며 10명 정도가 함께 외출했다. 직접 여성에게 현금을 건넸다고 한다.


여성은 모두 조선 출신으로 17, 8세 정도의 소녀들이 많았다. 어떤 여성은 서투른 일본어로 “간호사로 징집됐는데 위안부를 시켰다”며 울면서 “일본 군인이 지독하게 다룬다”며 한탄했다고 한다.


네모토 씨는 “당시는 조선인을 얕잡아 봤기 때문에 ‘수고한다’는 정도로만 생각했다. 지금은 죄책감이 든다”고 회상했다.


44년 봄부터 중국 산시성(山西省)으로 출병한 수도권 거주의 마쓰모토 마사요시(松本栄好) 씨(93)는 현지의 여성을 위안부로 삼는 현장을 목격했다고 한다.


어느날 토벌을 위해 출동했던 마을의 여성 6~8명을 군인들이 주둔지로 끌고 가 막사에 감금했다. 위생병이었던 마쓰모토 씨는 “여성들의 성병 검사를 한 뒤 군인들에게 ‘주의하라’고 하면서 콘돔을 나눠줬다”. 약 1주일 뒤, 여성들은 마을로 돌려보내졌지만 대장은 촌장에게 다른 여성을 요구했다. 2명이 끌려왔다고 한다.


중국 출정 당시의 체험을 이야기하고 있는 네모토 

조주 씨=2014년 10월 도치기현 가누마시에서 촬영

【교도통신】2015/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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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쓰모토 씨는 그 2명의 여성도 성병 검사를 했다면서 “지금도 죄책감을 갖고 있지만 그때는 거부하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게 일이었으니까”라고 말한다.


44년 말부터 중국 하이난섬(海南島)의 병원에 종군 간호사로 파견된 후쿠시마현 고오리야마시(福島県郡山市)의 나카자토 지요(中里チヨ) 씨(89)는 위안부의 성병 검사에 참가했다.


몇 개월에 한 번, 트럭 4대에 실려 100명 가까운 여성들이 병원으로 보내졌다. 성병에 감염된 여성도 있었으며 검사할 때 아파하며 “아이고”라고 울음을 터뜨렸다. 군의관에게 치료를 부탁하자 “치료하려고 부른 게 아니다”라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나카자토 씨는 “사람이 아니라 물건처럼 다뤘다”고 회상한다.


한편, 장교 전속 위안부는 깨끗한 집에 사는 등 대우를 받았다고 한다. 그 가운데 한 명인 일본인 여성은 “집이 가난했고 월급을 많이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왔다”고 말했다고 한다.【교도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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