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ww.freecolumn.co.kr
터키에 문화 지원을
2015.08.27
한국과 터키는 '형제국가'입니다. 그런데 비교해 보면 우리가 터키를 생각하는 것보다 그들이 더 우리를 친근하게 여기는 것 같습니다. 2주 전 유라시아문화포럼(이사장 홍태식)이 주최한 ‘한국-터키 하계 국제 문학인대회’ 참관을 겸해 휴가차 다녀온 터키에서 그런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터키는 6·25 참전 16개국 중 하나입니다. 아득히 먼 동방의 낯선 나라 한국에 터키는 왜 군대를 파견했을까? 언어의 구조와 혈통이 비슷한 나라라는 점도 작용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가장 근본적인 동기는 1950년대에 세계를 위협하던 공산화 물결을 차단하고, 러시아와 분명하게 대적함으로써 NATO(북대서양조약기구)에 확실하게 가입하려는 것이었습니다. 근본 동기야 어쨌든 우리는 터키에 큰 신세를 졌습니다. 터키의 수도 앙카라에 ‘한국참전 토이기기념탑’이 1973년 11월에 세워졌고, 이듬해 9월 경기도 기흥에 터키군 한국전쟁 참전기념비가 세워졌습니다. 토이기(土耳其)는 터키의 한자식 표기입니다. 터키는 총 1만4,936명을 파병해 그중 765명이 전사하고, 부상자 2,147명, 행방불명 175명, 포로 346명, 비전투 요원 손실 346명의 인명 피해를 당했습니다. 부산 유엔묘지에는 전사한 터키군의 시신 462구가 모셔져 있습니다. 한국전에 참전했던 터키군은 고향으로 돌아가 터키의 이름을 세계에 빛낸 영웅 대접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터키와 한국은 이처럼 혈맹인데도 1957년 3월 8일에야 외교관계를 수립했습니다. 그러니까 2017년은 수교 60년이 되는 해입니다. 지금 한-터키 관계는 상당히 일방적입니다. 터키 사람들은 한국을 잘 알고 있지만 한국인들은 터키에 대해서 모르는 게 많습니다. 우선 아시아인지 유럽인지, 종교적으로 이슬람에 편향된 국가인지 아닌지, 요즘 세계인들의 걱정거리인 IS와 관계가 있는지 없는지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태반입니다. 우리는 그만큼 터키에 대해서 잘 모르고 있습니다. 2013년 한-터키 FTA(자유무역협정) 발효 이후 터키에 대한 수출액은 수입액보다 훨씬 늘어 거의 10대 1 수준에 가까워졌습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한류 바람에 얹힌 문화유입의 영향입니다. 2005년 노무현 대통령 시절 이후 터키 여행이 활발해짐에 따라 한국과 한류에 대한 기대와 지식은 더 폭 넓어진 것으로 보입니다. 대여섯 살짜리가 물건을 팔면서 “싸다, 싸!”를 외칩니다. 음식점 종업원들은 속이 텅 비고 큰 빵 라와시를 내놓으면서 우리말로 “공갈빵 나왔습니다”라고 합니다. 남자에게는 오빠, 아주머니에게는 언니라고 부르는 상인들도 많이 보았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터키에 대해서 아는 것이라고는 6·25 참전, 2002년의 월드컵 축구 4강전, 초승달과 별이 그려진 약간 무서운 국기(빨간색은 금기였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런 정도 아닌가 싶습니다. 이번 문학행사를 통해 확인한 것은 터키에서의 한국어 교육은 1989년(앙카라 대학)에 시작돼 현재 13개 대학에 한국어문학과가 운영되고 있다는 것, 한류 붐을 타고 사설 교육기관에서도 한국어 교육을 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한국과 한국어에 대한 열성은 놀라울 정도입니다. 터키 중부 에르지에스 대학(1984년 설립)의 경우 올해 2학기 수강신청이 마감 한 달 전인 8월 초에 일찍 끝났을 정도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한국어 교재와 한국 역사 전공자가 부족하고, 현재 사용하고 있는 교재도 체계적이지 못하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면 2학년 때는 고려대가 만든 교재를 사용하다가 3학년 때는 서강대 교재를 사용하는 식입니다. 한국문학의 경우 터키어로 쓰인 교재가 없어 한국어 교재를 쓰다 보니 이중으로 힘이 듭니다. 그래서 터키 사람들은 한국이 터키에 대해 좀 더 많은 문화/문학 지원을 해 주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정서적 친근성이나 경제·문화적 연대로 볼 때 충분히 이유가 있다고 판단되는 호소입니다. 다만 문제는 터키가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가입국가여서 정부 차원의 지원은 할 수가 없는 점입니다. 그러면 정부 차원에서는 그렇다 치고 민간 차원의 활발하고 다양한 지원책을 마련할 수는 있지 않을까요? 대가를 받지 않고 재능기부를 할 만한 인력도 많을 것입니다. 터키는 아시아이면서 유럽인 중요한 나라입니다. 그 친근성과 연대성을 잘 헤아리고 살펴서 서로 도움이 되는 길을 찾아야 합니다. 수교 60년에는 많은 게 달라졌으면 좋겠습니다. 지금 한국인들은 터키에 대해서 대체로 무지하거나 오만합니다.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자유칼럼그룹은 특정한 주의나 입장을 표방하지 않습니다.
필자소개
임철순
1974~2012년 한국일보 근무. 문화부장 사회부장 편집국장 주필 및 이사대우 논설고문을 역임했다. 한국기자상, 삼성언론상, 위암 장지연상 수상. 현재 이투데이 주필 겸 미래설계연구원장, 자유칼럼그룹 공동대표, 한국언론문화포럼 회장, 한국1인가구연합 이사장.
Copyright ⓒ 2006 자유칼럼그룹.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freecolum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