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ww.freecolumn.co.kr
‘선비 정신’을 다시 생각하며
2015.08.24
우리 사회 구석구석에서 횡행하고 있는 막말, 폭언, 폭행과 더불어 각종 크고 작은 부정부패 행태가 인내의 한계를 넘은 지 오래되었습니다. 참으로 민망하고 참담한 심정을 가눌 수 없습니다. 이런 혼탁한 현상이 마치 우리 사회의 바꿀 수 없는 아이콘이라도 된 듯싶고, 더 나아가 우리의 생활 정서 및 생활 문화의 DNA라도 된 듯싶어 염려하며 자괴감을 느낀 게 한두 번이 아닙니다. 필자는 조선시대 초상화를 미술사적 측면에서 분석·연구하며 접근하던 중 자연스레 ‘선비 정신’이 조선 초상화에 고스란히, 그리고 일관되게 담겨 있다는 사실에 주목했습니다. 아울러 조선 초상화에서 작금의 우리 사회에 전하는 새로운 메시지도 읽을 수 있었습니다. 요컨대 선비 정신의 요추(要樞)는 ‘올곧음 정신’입니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는 ‘선비 정신’ 하면 ‘곰팡이 냄새’ 나는, 또는 ‘먼 옛날의 것’으로 묶어두려는 경향이 뚜렷합니다. 실로 아쉽고 안타까운 일입니다.그런데 필자는 얼마 전 한 책자를 통해 우군(友軍)을 만났습니다. 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Enmanuel Pastreich, 1964~ ) 교수의 저서 《한국인만 모르는 다른 대한민국》(21세기북스, 2013)가 바로 그것입니다. ‘이만열’이라는 한국 이름을 갖고 있는 이 책의 저자는 “한국의 정체성을 표현하고 소개하는 개념으로 ‘선비 정신(Seonbi Spirit)’”을 꼽았습니다. 그는 선비 정신을 “(전략) 한국 사회와 역사에 깊숙이 뿌리 박혀 있다. (전략) 사회적 차원에서는 수준 높은 공동체 의식을 유지하면서도 이질적 존재와 다양성을 존중하는 태도로 나타난다”고 정의하면서 한국에는 “한국의 전통문화와 정체성을 보여주는 개념, 즉 외국인의 지적 상상력을 자극하며 독특한 매력을 뽐내는 존재감 있는 개념이 없다”고 지적합니다. 그러면서 저자는 조선시대 선비 정신을 한껏 부각시키며 논리를 전개합니다. 중국과 일본 그리고 한국 문화를 폭넓게 연구하는 학자이기에 이만열 교수의 평론에는 무게가 실려 있습니다. 특히 저자가 한국에 살면서 보고 느낀 우리네 의식 구조를 조선시대 문화사를 바탕으로 살펴보는 점은 특기할 만합니다. 그러면서 우리 문화에서 가장 설득력 있는 핵심 개념이 ‘선비 정신’임을 역설하는 것은 매우 인상적인 접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저자는 “한국인들은 한국이 진정한 선진국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지적합니다. 그리고 흔히 1953년 당시 한국의 소득 수준이 아프리카의 소말리아와 같다고 말하는데, 그렇다면 “소말리아와 같은 문화 수준이었다는 말인가?”라며 의문을 제기합니다. 우리 사회에 팽배한 ‘비(非)선진국 증후군’에 던지는 따끔한 일침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요컨대 저자는 한국이 이미 선진국 대열에 들어섰다고 단언합니다.이만열 교수의 이러한 주장은 중국과 일본 그리고 한국 문화를 섭렵하고 비교하며 펼치는 것이기에 설득력이 있습니다. 그래서 더욱 돋보이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교수의 또 다른 저서 《연암 박지원의 단편소설(The Novels of Park Jiwon: Translations of Overlooked Worlds)》(서울대출판사)과 《중일 고전 소설의 세속성 비교 관찰(The Observable Mundane: Vernacular Chinese and Emergence of a Literary Discourse on Popular Narrative in Edo Japan》(서울대출판사)만 보아도 그의 학문적 깊이와 폭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만열 교수가 이처럼 한국 문화를 심도 있게 연구하면서 유독 선비 정신에 관심을 갖고, 필자가 조선시대 초상화를 연구하면서 선비 정신에 주목한 것은 매우 흥미롭기까지 합니다.
필자가 연구한 조선 초상화 519점 중 오직 90점, 즉 17.34%만이 안면 피부가 정상이었습니다. 이를테면 연구 대상인 초상화의 약 82%가 다양한 피부 병변을 보였다는 뜻입니다(註:이런 비율은 고령에 이른 사람을 초상화에 담았다는 사실을 감안해야 합니다). 그 밖에 초상화의 특성상 과시적 경향을 드러내는 게 일반적인데 조선 초상화에서는 그런 흔적조차 찾을 수 없습니다. 한 가지 예로 영의정을 지낸 오명항(吳明恒, 1673~1728)의 초상화를 들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의 초상화에서 만성간염의 특징적 증상인 황달(黃疸)을 지나 흑달(黑疸)에 이른 병변과 함께 심한 천연두 자국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특기할 사항은 조선 초상화에는 다양한 피부 병변 중에서도 ‘결코 아름답지 않고 자랑스럽지도 않은’ 흑색 황달을 보이는 초상화가 519점 중 무려 9점(1.73%)이나 된다는 사실입니다[참고: <조선시대 초상화에 나타난 피부 병변 연구>(이성낙의 박사학위 논문, 2014)]. 이는 동서고금 전 세계 미술사에서 찾아보기 힘든 특이한 현상입니다. 오직 조선 초상화에서만 발현된 문화유산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특유한 초상화 문화가 조선의 선비를 대상으로, 선비와 함께 조성되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합니다. 이는 화가와 초상화의 대상인 된 선비가 ‘있는 대로, 보이는 대로’ 그린다는 데 묵시적으로 동의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이게 바로 우리네 선비들의 ‘올곧음 정신’입니다. 즉 정직을 추구하는 선비 정신이 당시 사회를 주도하는 근간이었다는 얘깁니다.필자의 초상화 연구 결과는 이만열 교수가 자신의 저서에서 조선시대 선비 정신을 우리 문화의 아이콘이라고 주장하는 것과 맥을 같이한다고 생각합니다. 필자는 오늘날 우리 사회의 수많은 병폐를 극복하는 해법은 선비 정신에 있다고 믿습니다. 참으로 소중한 문화유산인 선비 정신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자유칼럼그룹은 특정한 주의나 입장을 표방하지 않습니다.
필자소개
이성낙
뮌헨의과대 졸. 프랑크푸르트대 피부과학 교수, 연세대 의대 교수, 아주대 의무부총장 역임.현재 가천대 명예총장, 의ㆍ약사평론가회 회장, (사)현대미술관회 회장, (재)간송미술문화재단 이사
Copyright ⓒ 2006 자유칼럼그룹.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freecolumn.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