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장춘 박사의 삼각형 : U's Triangle [방재욱]

www.freecolumn.co.kr

우장춘 박사의 삼각형 : U's Triangle

2015.08.19


여러 해 전에 미국 캘리포니아대학교(UC) 데이비스 캠퍼스에서 개최된 배추유전체학회에 참석했을 때 미국과 유럽의 많은 학자들이 ‘우장춘 박사의 삼각형’을 의미하는 ‘U's Triangle’을 언급하는 것을 보며 자긍심을 느낀 추억이 있습니다. 이렇게 배추 유전체(게놈, genome) 관련 학술대회에서 많은 학자들이 발표 서두에서 언급하는 ‘U's Triangle’은 무엇일까요? 

우장춘 박사 하면 ‘씨 없는 수박’을 처음 만든 인물로 알고 있지만 이는 잘못 알려진 사실입니다. 실제로 우 박사가 세계적인 육종학자로 인정받고 있는 것은 ‘종의 합성’ 이론을 담고 있는 ‘U's Triangle(우 박사의 삼각형)’ 때문입니다. 

‘U's Triangle’에서 ‘U'는 우장춘 박사의 성(姓)입니다. 우 박사는 일본 이름이 스나가 나가하루(須永長春)였지만 논문에는 자신의 영문 이름을 N. U(Nagaharu U)라고 표기하였습니다. 나가하루는 長春(장춘)의 일본어 발음이고, U는 한국 성인 禹(우)의 한국어 발음입니다. 일반적으로 우씨들이 자신의 성을 'Woo'로 쓰는 데 비해 우 박사가 자신의 성을 알파벳 ’U' 한 글자로 쓴 것도 특이한 일입니다. 

일본에서 태어나 도쿄(東京)제국대학 졸업 후 일본 농림성 농업시험장에서 육종 연구를 하던 우 박사는 1935년에 일본식물학잡지(JAPANESE JOURNAL OF BOTANY Vol. VII No. 3-4)에 배추, 양배추, 겨자 등이 속하는 배추속(Brassica) 식물의 게놈 분석에 관한 논문을 발표하며 ‘종(種)의 합성(合成)’ 이론을 제안해 세계 육종학계를 깜짝 놀라게 했습니다. 그 후 배추속 식물 6종의 게놈 사이의 연관성이 밝혀졌는데, 이를 도식화한 것이 그림에서 보는 바와 같은 ‘U's Triangle'입니다.

‘종의 합성’이란 말은 우 박사가 유채가 배추와 양배추의 잡종으로 생겨난 식물임을 밝히며 사용한 용어입니다. 종의 합성 이론은 육종학 분야에서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키며, 우 박사의 유전육종학자로서의 명성이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졌습니다. 그리고 우 박사는 이듬해인 1936년에 이 논문으로 도쿄제국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습니다. 

주요 배추속 식물들은 그림에서처럼 기본 염색체 수(N)가 다른 A(N=10), B(N=8), C(N=9) 세 가지로 구분이 되는 게놈의 조성에 따라 삼각형으로 나타낼 수 있습니다. 2배체 식물의 경우 염색체 수가 배추(B. campestris; 지금은 B. rapa로 표기함)는 20개(2N=AA=20), 흑겨자(B. nigra)는 16개(2N=BB=16), 그리고 양배추(B. oleracea)는 18개(2N=CC=18)입니다. 

우 박사는 이 종들을 교잡(交雜)시키면 새로운 종이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밝혀냈습니다. 그 실례로 배추와 양배추를 교배하면 A 게놈과 C 게놈의 염색체가 합쳐져 2N=AACC=38인 잡종(雜種)이 생겨납니다. 이 식물이 바로 이른 봄에 노란 꽃을 만개하며, 최근에는 바이오 디젤의 원료로도 각광을 받고 있는 유채입니다. 이와 마찬가지 원리로 흑겨자와 배추를 교배하면 갓김치를 담가먹는 갓(2N=AABB=36)이 만들어지고, 흑겨자와 양배추를 교배하면 이디오피아겨자(2N=BBCC=34)가 만들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현존하는 종들 사이의 교잡으로 새로운 종이 나타날 수 있다는 우 박사의 '종의 합성‘ 이론은 ’종은 자연선택의 결과로 이루어진다.’는 다윈의 진화론을 일부 수정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우 박사는 이러한 업적으로 당시 우리나라 국력이 약해 노벨상 대상에는 오르지 못했지만, 스웨덴 왕립협회에서 선정한 세계 10대 육종학자 대열에 올라 있습니다. 

지난 10일에는 故 우장춘 박사 서거 56주기 추모식이 부산 우장춘기념관에서 열렸습니다. 우장춘기념관은 우 박사의 탄생 1백주년을 맞이해 1999년 10월 21일 개관한 기념관으로 부산광역시 동래구 우장춘로 62번길 7(온천동 850-48)에 소재하고 있습니다. 기념관에는 우 박사의 유품과 각종 연구결과물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야외 마당에는 자애로운 어머니의 젖과 같은 샘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는 '자유천(慈乳泉)' 우물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 우물은 일본에 있던 어머니가 임종했을 때 정부의 출국 금지로 장례식에 참석하지 못한 우 박사가 각지에서 들어온 부의금으로 당시 물이 부족한 연구소와 주위 사람들에게 물을 나눠주기 위해 판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우 박사는 어머니를 생각하는 마음으로 매일 아침 우물 주위 청소로 하루 일과를 시작했다고 합니다. 

우 박사는 서거하기 3일 전인 1959년 8월 7일 병상에서 대한민국 문화훈장을 포상 받으며 “조국이 나를 인정해줘서 고맙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이제 1950년 환국 후 9년 반 동안 농업이 결국 애국이라는 생각으로 한국 농업 발전의 토대이자 시발점을 열어온 우 박사의 업적들이 재평가되어 국민들에게 제대로 알려져야 합니다.

농촌진흥청 국립원예특작과학원에서 2010년부터 초등학생에게 우 박사의 공적을 기리며 농업의 중요성을 알리고, 농업과학자의 꿈을 심어주기 위해 ‘우장춘 박사를 아세요?’를 주제로 어린이 농업·농촌 체험 수기 공모전(누리집; www.nihhs.go.kr)을 열어오고 있습니다. 6회째인 금년 공모는 8월 18일에 마감되었습니다. 

씨앗 박사로만 막연하게 알려져 있는 우장춘 박사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 제고를 통해 우리나라 농업 발전을 이끌어나갈 제2의 우장춘 박사가 나오는 날을 기대해 봅니다.

필자소개

방재욱

양정고. 서울대 생물교육과 졸. 한국생물과학협회, 한국유전학회, 한국약용작물학회 회장 역임. 현재 충남대학교 명예교수, 한국과총 대전지역연합회 부회장. 대표 저서 : 수필집 ‘나와 그 사람 이야기’, ‘생명너머 삶의 이야기’, ‘생명의 이해’ 등. bangjw@cnu.ac.kr

박대문의 야생초사랑

갯지치 (지치과)  Mertensia asiatica Machride

작고도 고운 앙증맞은 꽃망울, 알알이 사연 담아 가슴에 품은 듯 다소곳이 고개 숙여 벽자색 고운 꽃을 피워 올린 사할린 해변의 갯지치 꽃입니다. 청잣빛, 분홍빛 감도는 사할린 해변의 갯지치를 대하니 갯지치 대면의 기쁨에 앞서 사할린으로의 강제 징용, 그리고 전쟁 말기, 사할린에서 일본 본토로의 석탄 수송선이 항공표적이 되자 사할린 한인을 작업 조건이 극도로 열악한...

필자소개

박대문

환경부에서 공직생활을 하는 동안 과장, 국장, 청와대 환경비서관을 역임했다.
우리꽃 자생지 탐사와 사진 촬영을 취미로 삼고 있으며,
시집 『꽃벌판 저 너머로』, 『꽃 사진 한 장』, 『꽃 따라 구름 따라』가 있다.

Copyright ⓒ 2006 자유칼럼그룹.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freecolumn.co.kr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