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에서 유 창조’ 한국 건설 70년, 남은 과제는…

물량 위주에서 진일보한 "질적 성장으로 거듭나야"


출처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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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외 귀환 동포와 38선을 넘어온 사람들 대부분은 창고나 방공호, 하수도 등에 거적자리를 펴고 산다. 적산(敵産) 건물을 강제로 사용할 수 있는 법을 제정해야 한다.” 광복을 맞이한 지 2년째인 1947년 11월 4일, 동아일보는 ‘전재민(戰災民)을 구하라’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당시의 참담한 주거 실상을 이렇게 전했다.


건설업만큼 지난 70년간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했다’는 말이 들어맞는 분야도 찾기 힘들다. 피난민 수용소 하나 제대로 못 짓던 대한민국은 원자력발전소, 고속철도는 물론 세계 곳곳의 랜드마크 건물 시공을 맡으며 ‘건설 코리아’의 위상을 높이고 있다. 


하지만 주택 분양에 수익을 지나치게 의존하는 모습, 설계·엔지니어링이나 프로젝트 관리 등 고부가가치 분야에서 남아 있는 약점을 극복해야 한국의 건설업이 진정한 ‘글로벌 톱’ 수준으로 도약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광복 직후 아스팔트로 포장된 도로 하나 변변히 없었던 한국은 1970년 경부고속도로 개통을 기점
으로 전국 교통망이 급속도로 발전했다. 경부고속도로와 영동고속도로가 만나는 경기 용인시 신갈
분기점 전경. 동아일보DB


전쟁의 참화 딛고 최첨단 신도시 올리다 

해방 직후 열악했던 주거 환경은 6.25 전쟁으로 더욱 황폐해졌다. 서울 개인주택 19만 채 중 15만6000 채가 파괴됐을 정도로 전쟁의 상흔은 깊었다. 


1961년 경제개발 5개년계획 시행 이후 한국 건설은 본격적인 전환기를 맞았다. 1964년에 한국 최초의 대단지 아파트인 서울 마포아파트(642채)를 시작으로 첫 주상복합 건물인 세운상가(1967년), 첫 민간 고층아파트인 여의도 시범아파트(1971년) 등이 속속 등장하며 한국에 본격적인 아파트 주거시대를 열었다. 


급격한 도시화와 수도권 인구 집중으로 집을 지어도 주택보급률이 하락하자 정부는 1988년 ‘주택 200만 채 건설계획’을 발표하며 분당, 일산, 평촌, 중동, 산본 등 ‘1기 신도시’ 조성에 나섰다. 이후 판교, 동탄 등에 ‘2기 신도시’를 선보이면서 지능형 교통시스템(ITS), 첨단 지하시설물 관리 시스템 등으로 무장한 ‘유비쿼터스 시티(U-시티)’가 현실이 됐다. 


한국 경제 발전의 바탕에는 물류 혁명으로 일컬어지는 교통 인프라가 있었다. 1970년 개통한 경부고속도로는 한국 경제의 혈맥 역할을 했다. 최대 난공사 구간이었던 충북 옥천 당재터널 현장에서 당시 공사를 맡은 현대건설 정주영 사장이 “주판을 엎어 달라(이윤을 포기해 달라)”는 정부의 요청을 수락하면서 단군 이래 최대의 토목공사인 경부고속도로 사업이 마무리될 수 있었다. 이어 전국을 거미줄처럼 잇는 고속도로가 속속 완공됐고, 2004년 경부고속철도가 개통되면서 ‘반나절 생활권’ 시대를 열었다. 


한국 건설업계의 실력은 해외에서 더 알아준다. 광복 20주년이던 1965년 현대건설이 수주한 태국의 ‘파타니~나라티왓 고속도로’ 공사를 시작으로 사우디아라비아 주베일 산업항 공사, 리비아 대수로 공사 등 중동에서 대규모 프로젝트를 잇따라 수주했다. 2000년대 완공된 대표적인 세계 건축물인 싱가포르의 마리나 베이 샌즈호텔, UAE의 부르즈 칼리파 타워 등도 한국 건설업체가 시공했다. 올해 세계 최대 프로젝트로 꼽히는 53억 달러 규모의 쿠웨이트 국영정유회사(KNPC) 정유공장 수주도 대우건설, 현대건설, 현대중공업, SK건설, 한화건설 등이 따내며 건설 강국의 위용을 드러냈다. 


물량 위주에서 진일보한 질적 성장으로

70년간 한국 산업 발전의 중심에 섰던 건설업은 이제 물량 위주에서 질적 성장으로 전환해야 하는 숙제를 안고 있다. 무엇보다 주택 경기에 의존하는 ‘천수답식 수익모델’에서 탈피해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도약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현아 건설산업연구원 건설경제연구실장은 “산업 간 경계가 무너지는 상황에서 건설 산업도 토목 사업에만 안주할 수 없게 됐다”며 “건설업을 사물인터넷(IoT), 3D프린터, 센서 장치 개발 기술 등에 기반한 최첨단 지식산업으로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서는 정부와 업계가 해결해야 할 과제가 적지 않다. 실제 건축물을 만드는 하드웨어 시공에서는 그나마 경쟁력을 갖고 있지만 설계, 유지관리 서비스, 프로젝트 관리 등 이른바 ‘소프트웨어 건설업’에서는 선진국보다 경쟁력이 떨어진다. 김경욱 국토부 건설정책국장은 “사업관리 등이 시공의 덤으로 주어지는 서비스라는 인식부터 바꿔야 한다”며 “소프트웨어 건설업에 정당한 단가를 지불하는 시장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최저가 낙찰제로 대표되는 저가 수주 구조에 대한 비판도 꾸준히 나오고 있다. 8.15 특사를 통해 담합 건설사들에 대한 공공입찰 제한이 풀리긴 했지만, 기술력에 대한 평가 없이 가격만으로 공공공사 입찰을 하는 구조를 바꾸지 않으면 건설업의 발전도 어렵고 담합과 부실 공사라는 악순환도 끊을 수 없다는 것이다. 대한건설협회 관계자는 “건설공사 수익성을 확보하기 어려운 현재의 시장 구조가 지속되면 기술 경쟁력 약화로 향후 해외 수주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동아일보 이상훈기자 january@donga.com  ·천호성기자 thousan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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