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담화 "낼 필요도 없었다:" 무라야마 [황경춘]

www.freecolumn.co.kr

아베 담화 "낼 필요도 없었다:" 무라야마

2015.08.18


전에 없이 다채롭고 뜻있는 올해의 광복 70주년 기념행사였습니다. 장엄한 아침 해가 떠오르는 동해 독도(獨島)를 수비하는 해군 함정 위의 의장대 의식을 시작으로, 거의 종일 계속된 기념행사를 텔레비전을 통해 보며, 90줄에 들어선 저의 감회(感懷)는 한층 착잡하였습니다.

1945년 8월 15일 정오에 방송된 일황(日皇) 소화(昭和)의 항복수락 녹음으로, 거리에 뛰쳐나와 ‘대한독립 만세’를 미친 듯이 연호하는 겨레의 환희, 귀국선을 타고 부산항으로 돌아오는 일본에 끌려갔던 동포의 기뿐 표정들이 방영되어, 그 당시의 들뜬 분위기를 되새겨 주었습니다.

그러나 당시 일본군에 징집되어 복무 중이던 저는, 도쿄(東京) 북부의 어느 농촌 마을에 있는 노동부대에서 이유 없이 작업이 중지되어 조선인 신병끼리만 병영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역사를 바꾼 이 4분 반의 방송을 듣지 못하고, 지겨운 전쟁이 끝나고 잃어버린 나라를 다시 찾는 이 경천동지(驚天動地)할 소식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이틀이 지난 17일 아침에서야 식사 후 간 변소에서 평소와 달리 크게 틀어 놓은 이웃 민가의 라디오 소리로, 일본의 패전과 새 내각 임명 뉴스를 들었습니다. 광복의 기쁨보다, 이제 죽음은 면했구나 하는 개인적 안도감만이 앞섰습니다.

천신만고 끝에 그리운 고향집으로 돌아온 것은 9월 초순이었습니다. 기쁨의 도가니라고 생각했던 고국은 국토가 남북으로 양단되었을 뿐 아니라, 격심한 좌우 대립이 벌써 시작되어 국론이 사분오열(四分五裂)된 혼미 상태로 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전쟁상인이 지배하는 말기 자본주의는 20년에 한 번씩 전쟁이 일어나야만 생명을 유지할 수 있다고 한 어느 좌익 논객의 말이 생각나는 어느 일요일, 그 전쟁이 고국땅에서 일어났습니다.

1950년 6월 25일에 터진 한국전쟁이 휴전 상태로 들어가 불안이 계속되면서도, 조국은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역사에 유례(類例) 없는 발전을 거듭하였습니다. 그러나 북한의 도발 외에 우경화가 심한 일본 등 우리를 둘러싼 국제정세는 여전히 불안정합니다.

광복 70주년 행사를 10년 전과는 달리 특히 감회 있게 본 것은, 첫째로 10년 뒤에 제가 과연 지금처럼 건강한 몸과 아직은 그리 쇠퇴하지 않은 정신력으로 기념행사를 감상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다음으로, 10년 뒤의 남북관계와 일본의 미래상(未來像)이 궁금했던 것입니다.

우리의 광복절은 일본의 태평양전쟁 패전의 날입니다. 우리의 경축 분위기와는 딴판으로, 일본은 310만을 넘는 전쟁 희생자의 추도식이 천황의 참석 아래 해마다 거행됩니다. 그 천황은 금년의 추도식에서 처음으로 지난 전쟁에 ‘깊은 반성’을 표명하였습니다. 그러나 아베 신조(安倍晉三) 총리의 전후 70년 담화는 과거 총리들의 담화를 요리저리 인용하며, 자기 자신의 사과는 한마디도 하지 않아, 많은 사람의 비난을 샀습니다.

20년 전에 그 유명한 ‘무라야마(村山)담화’를 발표하여 국제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은 무라야마 도미이치(村山富一) 전 총리는 도대체 “낼 필요도 없는 담화” 내용이었다고 비난하고, 아사히(朝日)신문은 “전후 70년의 아베 담화 - 뭣 때문에 발표했는가”라는 사설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베 총리의 담화는, 전후 70년의 역사총괄로서, 극히 불충분한 내용이었다. 침략이나 식민지 지배, 반성과 사과 등, 아베 담화에는 확실히 국제적으로도 주목을 끈 몇 개의 키워드는 포함되었다. 그러나, 일본이 침략하고, 식민지지배를 했다는 주어(主語)는 애매했다. 반성과 사과는 이미 역대 내각이 표명하였다고 간접적으로 언급했다. 이 담화는 낼 필요가 없었다. 아니, 내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새삼 힘주어 그렇게 생각한다.”

중의원에 압도적 안정 세력을 가진 아베 총리는 ‘위헌’이라는 비난이 자자한 안보관련 특별법안 11개를 강행 통과시키고, 한때 70%에 육박한 지지율이 30%대로 급락하였습니다. 1960년 7월 15일 아베 외조부 기시 노부스케(岸信介)는 미일안보조약 강행 통과 후의 정치불안으로 총리직에서 물러났습니다. 바로 이 7월 15일에 중의원 특별위원회에서 법안을 강행 통과시킨 아베는 다음 날 야당 불참한 본회의에서 통과시켰습니다. 

외조부를 하야시킨 데모군중이 연호한 ‘안포, 안포(安保)’가 무슨 뜻이냐고 묻던 당시 다섯 살의 아베 총리가 할아버지의 한을 풀었다는 소문까지 난 안보 특별법안은 이제 참의원으로 넘어갔습니다. 하원만큼 압도적은 아니지만, 과반수의 안정 의석을 가진 아베 여당은 무리수를 쓸 필요는 없습니다. 60일간 상원에서 처리가 되지 않은 법안은 하원에서 3분의 2 표결로 다시 의결할 수 있다는 헌법 조항 때문입니다. 국회해산이 무서운 야당이 총리 불신임안을 제출하지 못하는 약점도 있습니다. 즉 안보 특별법안은 이제 일본국회 통과가 확실하며, 일본의 재무장과 군비확장 및 전쟁 참가의 길이 열린 셈입니다.

법안의 하원 통과 후, 10만으로 추정되는 데모대가 국회 주변을 소란케 하고, 같은 여당인 공명당(公明黨)의 모체인 강력한 종교집단 창가학회(創價學會)도 안보 법안 반대를 표명하고, 일부 여성 주간지까지 안보 법안 특집을 연재하는 등, 아베 내각에 어둠의 그림자가 비치자, 총리는 민간 방송에 연 이틀, 도합 두 시간 반 출연하여 법안 설명을 하는 진풍경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9월에 있을 여당 자민당 총재 선거에 무투표 재선이라는 분위기가 당내에 팽배하자, 당 원로 일부가 제동을 걸고 있습니다. 그래도 아베의 독주는 당분간 계속될 것이라고 대부분 정치 전문가가 판단하고 있습니다.

전전(戰前)의 군부 ‘대정익찬회(大政翼贊會)’처럼 독주할 기세를 보이는 아베 총리의 자민당을 견제하는 역할은, 지리멸렬(支離滅裂)하여 갈피를 못 잡는 야당 대신, 정도(正道)를 걷는 일부 언론과 양심을 지키려는 학자, 변호사, 지식인 등이 맡고 있습니다. 

일본의 넓은 보수층을 대변하는 월간 종합지 문예춘추(文藝春秋)가 최근에 와서 아베 총리를 견제하는 내용의 글을 많이 싣기 시작했으며, 위안부 기사로 여당계 언론과 정치인으로부터 혹독한 몰매를 맞은 아사히신문은 여전히 양심적인 사설과 논설로 안하무인의 여당에 충고를 아끼지 않고 있는 것이 일루(一縷)의 희망입니다.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자유칼럼그룹은 특정한 주의나 입장을 표방하지 않습니다.

필자소개

황경춘

일본 주오(中央)대 법과 중퇴
AP통신 서울지국 특파원, 지국장 역임

Copyright ⓒ 2006 자유칼럼그룹.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freecolumn.co.kr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