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자 사냥 그리고 사자 애도 [김수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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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 사냥 그리고 사자 애도

2015.08.12

세계는 지금 아프리카에서 미국 사냥꾼의 총에 맞아 죽은 사자와 기린 한 마리씩을 놓고 분노의 여론이 들끓고 있습니다. 

미국인 치과의사 월터 파머는 지난달 짐바브웨의 황게 국립공원에서 관광객의 사랑을 받는 숫사자 ‘세실’을 유인하여 참혹하게 죽인 후 머리를 잘라 갖고 사라졌습니다. 이 사실이 알려지면서 세계 여론이 들끓자 유엔총회는 '야생 동·식물의 불법 밀거래 차단 결의안'을 채택했습니다.
또 미국인 여성 새브리나 코가델리는 남아공화국 크루거 국립공원에서 사냥한 기린의 목을 짚고 의기양양하게 서 있는 자신의 사진을 SNS에 올렸다가 여론의 뭇매에 혼나고 있습니다. 

짐바브웨라는 나라를 아십니까? 남아공화국 바로 위에 붙어 있는 남한의 4배 정도 넓이의 국가입니다. 바로 35년 이상 장기집권을 하고 있는 무가베 대통령(91)이 통치하는 나라이자 세계 3대 폭포의 하나인 빅토리아 폭포가 있는 나라입니다. 사실 이보다 더 중요한 짐바브웨의 명성은 바로 ‘동물의 왕국’ 무대라는 점입니다. 사바나 고원지대에 위치한 이 나라는 사자, 기린, 코끼리, 코뿔소, 치타, 하이에나 등 아프리카 동물의 천국입니다.

황게 국립공원은 짐바브웨에서 가장 큰 야생동물 보호구역입니다. 이 국립공원 경계에서 지난 6월 27일 목이 잘린 숫사자의 사체가 발견되었습니다. 옥스퍼드대학 연구팀의 위치추적 시스템을 달고 있었기 때문에 이 동물이 ‘세실’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사자임이 쉽게 밝혀졌습니다.

세실은 황게 국립공원의 명물 사자였다고 합니다. 열세 살의 세실은 생김새부터가 달랐습니다. 회색 몸통에 검은색 갈기로 장식한 세실이 무리를 거느리고 초원을 누비는 모습은 정말 사바나의 황제라 할 만했습니다. 국립공원 관광객이나 사진작가들을 매료시키는 것은 세실의 행동이었습니다. 사파리 자동차를 세우고 서 있는 구경꾼들을 향해 세실은 어슬렁거리며 10여 미터 가까이 다가와서는 마치 패션 모델마냥 몸을 이리저리 돌리고 때론 정면으로 카메라를 쳐다보다가 발길을 돌리곤 했습니다. 이런 친숙한 행동 때문에 이 사자는 짐바브웨 국민과 관광객의 아이돌이 되었습니다. 

이 사자가 머리가 잘린 사체로 발견되었으니 국립공원이 발칵 뒤집혔고 당국의 수사가 이어졌습니다. 추적 결과 세실을 죽인 장본인은 미국 미네소타에 사는 치과의사 월터 파머임이 밝혀졌습니다. 파머는 아프리카 동물을 사냥해서 박제품을 만드는 것을 즐기는 소위 트로피 헌터입니다. 그는 약 5천만 원을 지불하고 현지 가이드 2명을 고용하여 세실을 공원 경계 밖으로 유인하여 활로 쏘았습니다. 세실은 화살을 맞고 부상했지만 도망쳤습니다. 그러나 파머와 가이드는 40여 시간을 추적해서 세실을 찾았고 이번엔 총으로 쏘아 죽이고 사자의 머리를 잘라 간 것입니다. 

SNS를 타고 이 사실이 알려지면서 세계 여론이 들끓었고, 특히 미국의 매체들이 이 사실을 보도하고 비난 논평을 쏟아냈습니다. 짐바브웨 당국은 가이드 2명을 밀렵혐의로 기소했고, 미국에 치과의사 파머의 범죄인인도를 요청했습니다. 파머는 세실인 줄을 몰랐고 허가를 받고 사냥을 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밀려드는 15만 건 이상의 처벌 청원에 백악관도 나 몰라라 할 수 없는 입장이 되었습니다. 

앞으로 파머에 대한 법적 조치가 어떻게 진행될지는 모르지만 세실의 죽음과 크루거 공원에서 사살된 기린으로 말미암아 아프리카 야생동물 보호에 대한 관심은 증폭되었습니다. 

세실 밀렵으로 발단된 논란을 보고 미국에서 공부하는 한 짐바브웨 대학원생이 뉴욕타임스에 재미있는 칼럼을 게재했습니다. ‘짐바브웨에서는 사자를 위해 울지 않는다’는 제목의 기사에서 이 대학원생은 어렸을 때 마을 사람들에게 사자가 얼마나 공포의 대상이었는지 미국인은 아느냐고 반문했습니다. 미국인들은 세실에게 조의를 보내지 말고 미국에서 일어나는 야생동물 밀렵을 슬퍼하라고 충고했습니다. 반어적 어법으로 미국인들의 사냥 본성을 꼬집는 글이었습니다. 

한국인에겐 아프리카가 에덴동산과 같은 동물의 왕국으로 보이겠지만 미국의 사냥꾼들에겐 세계 어디서도 찾을 수 없는 최고의 사냥터입니다. 미국에 없는 거대한 짐승들이 있고, 미국의 사냥규제 같은 엄격한 통제도 아프리카에서는 얼마든지 뚫을 수 있습니다. 가난한 아프리카 국가들은 관광수입이 짭짤하고 밀렵으로 주민들은 큰돈을 수중에 넣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아프리카 사람들에게 야생동물은 보전 대상이라기보다는 잡아먹거나 팔아 돈을 버는 대상으로 보기 십상입니다. 최근 무가베 대통령은 올해 91회 생일 기념으로 코끼리를 도살해 잔치판을 벌이고 국민들에게도 인심을 써서 서구 국가 언론의 비판을 받았습니다.       

원정 사냥꾼들과 아프리카 국가들의 느슨한 야생동물 보호조치로 이 대륙의 동물 개체 수는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고 합니다. 19세기까지만 해도 아프리카는 물론 중동 아시아 인도에까지 서식하던 야생 사자는 이제 아프리카 이외의 지역에서 볼 수 없습니다. 아프리카 사자의 수는 현재 최대 4만7,000마리로 추산됩니다. 1950년대에 40만 마리, 1990년대 초반 10만 마리로 추산되었던 것과 비교하면 얼마나 급속히 개체수가 줄어드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사자 숫자가 줄어드는 것은 인간의 간섭과 질병 때문이라고 합니다. 사냥도 큰 이유이지만 개발에 의한 서식환경이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인간에겐 원초적 사냥 본성이 있는지 모릅니다. 농경사회 이전에 인간은 수렵사회를 형성했습니다. 맹수를 쓰러뜨리는 것은 식량 확보와 힘의 과시로서 숭상되어 왔고, 문명사회로 넘어온 후 로마에서도 맹수, 특히 사자와 검투사의 싸움을 보며 즐거워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동물의 왕국인 아프리카의 야생동물을 남획해서 멸종의 위기로 몰아 간 것은 원래 유럽의 백인이었고, 이제 미국인들이 그 전통을 이어가고 있는 형국입니다. 

대부분 미국인들은 사냥 본성보다는 동물애호 감성이 더 강합니다. 맹수인 사자를 인간의 친구와 같은 캐릭터로 만들어 놓은 것이 미국 사회입니다. 디즈니 애니매이션 영화 ‘라이온 킹’은 그 결정판이라 하겠습니다. 그러나 아프리카의 사자나 기린을 멸종시킬 수 있는 것은 다수의 ‘라이온 킹’ 팬이 아니라 세실을 죽인 파머 같은 소수의 사냥광팬들입니다. 

이번에 미국 여성이 기린을 사냥했다는 남아공의 크루거 국립공원을 2002년 구경한 적이 있습니다. 2백만 년 전 원생 인류가 살았던 곳으로 추정되는 이곳은 경상북도만한 보호구역으로 임팔라 코끼리 코뿔소 버펄로 기린 얼룩말을 곳곳에서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먹이사슬의 꼭대기를 차지하는 사자는 보지 못했습니다. 약 2,500마리가 살고 있었지만 숲속에서 지내다 필요할 때만 사냥을 하기 때문에 거의 관광객의 눈에는 띄지 않는다는 게 국립공원 안내자의 설명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조용히 관찰해 보면 동물들의 공생과 긴장이 팽팽히 느껴지는 곳이었습니다.

인간은 자연의 공생과 긴장을 일시에 파괴할 능력을 갖고 있습니다. 19세기 말 남아공 동물 서식지대는 백인들의 사냥터가 되면서 순식간에 동물의 공동묘지로 변해버렸습니다. 당시 트란스발 공화국의 크루거 대통령은 “이러다간 우리 후손이 기린이 어떤 동물인지도 모르게 된다.”는 우려를 표명하며 보호지역으로 지정해서 오늘날 남아공의 '크루거 국립공원'의 모태가 되었습니다. 

야생의 사자, 기린, 코끼리가 없는 아프리카를 상상해보셨나요? 아프리카가 얼마나 넓고 지구가 얼마나 넓은데 그런 걱정을 하냐고요. 인간이 얼마나 대단하고 무서운 기술능력을 보유하고 있는지 생각해보면, 그리고 인간이 얼마나 탐욕적인지 생각해 보면 야생의 사자나 기린을 볼 수 없는 날이 가까이 오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인간은 지금 놀라운 기술력을 통해 지구를 주먹만 한 크기로 축소해놓았습니다. 한 마리 사자의 죽음에 사람들이 안타까워하고 흥분하고 분개하는 것은 바로 지구를 이렇게 축소해놓고 느끼는 불안감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자유칼럼그룹은 특정한 주의나 입장을 표방하지 않습니다.

필자소개

김수종

한국일보에서 30년간 기자 생활. 환경과 지방 등에 대한 글을 즐겨 씀.
저서로 '0.6도' '다음의 도전적인 실험' 등 3권이 있음.

박대문의 야생초사랑

웅기솜나물 (국화과) Senecio pseudo-arnica

우리 땅이지만 가볼 수 없는 곳이 있기에 우리 꽃이지만 만나볼 수 없는 꽃이 있습니다. 웅기솜나물도 그중의 하나인 우리 꽃입니다. 식물도감이나 자료에 우리 꽃으로 기재는 되어 있지만 환경이 변하여 점점 멸종되어가는 희귀식물이나 북한에서만이 자생하는 만나기 어려운 우리 꽃을 찾아 사할린의 동해안과 서해안을 답사하는 꽃 탐방길에 사할린 바닷가에서 웅기솜나물을 만났습니다.

필자소개

박대문

환경부에서 공직생활을 하는 동안 과장, 국장, 청와대 환경비서관을 역임했다.
우리꽃 자생지 탐사와 사진 촬영을 취미로 삼고 있으며,
시집 『꽃벌판 저 너머로』, 『꽃 사진 한 장』, 『꽃 따라 구름 따라』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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