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성교육, 한문을 가르쳐라 [임철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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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성교육, 한문을 가르쳐라

2015.08.05


최근 인터넷에 젓가락이 벽에 여러 개 꽂힌 모습과 함께 식당 주인의 경고문을 찍은 사진이 올라왔습니다. 알고 보니 식사를 마친 학생들이 젓가락을 몰래 갖고 나가 내기하듯 벽에다 던지는 장난을 한 건데, 젓가락의 재질이 뭔지는 모르겠습니다. 장소도 어느 학교 구내인 것처럼 보이지만 확실치 않습니다. 식당 주인은 비상식적인 행동을 하지 말 것을 당부하면서 “발견될 경우 생활인성부로 인계하여 엄중 조치할 것”이라고 했더군요. 7월 21일 인성교육진흥법이 발효된 이후의 풍경입니다. 

지난해 12월 국회를 통과한 이 법은 ‘인성교육을 의무로 규정한 세계 최초의 법’입니다. 지금은 방학 중이어서 잠시 논란이 멎은 상태이지만, 제정 당시부터 말이 많았습니다. 시행 이후에도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생활기록부에 인성을 어떻게 기록해야 하는지 교육현장에서는 여전히 헷갈리는 상황입니다. 

법의 목표는 건전하고 올바른 인성을 갖춘 시민 육성입니다. ‘자신의 내면을 바르고 건전하게 가꾸며 타인, 공동체, 자연과 더불어 사는 데 필요한 인간다운 성품과 역량을 기르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교육’이 인성교육입니다. 정부는 인성교육진흥위원회를 구성해 5년마다 종합계획을 수립하고, 이 계획에 따라 17개 시·도 자치단체장과 교육감은 개별 기본계획을 세워 실행해야 합니다. 전국의 초·중·고교는 매년 초 인성교육 계획을 교육감에게 보고하고 교육과정을 운영해야 합니다. 교사는 인성교육 연수를 의무적으로 받아야 하며 교원 양성기관은 인성교육 역량을 강화하기 위한 필수과목을 개설해야 합니다. 

이 법은 지난해 세월호 참사로 드러난 윤리와 도덕의 붕괴를 개선하자는 취지로 발의됐지만 그 동기부터 납득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세월호 참사에서 중요한 것은 인성교육이 아니라 실체적 진실을 밝히고 적절한 책임을 물어 사회정의를 세우는 것이라는 주장이지요. 또 지금 학교교육의 기본구조가 창의인성 교육과정이며 윤리 도덕과목을 통해 인성교육을 하고 있는데 완전 중복이라는 겁니다. 교사들부터 뭘 어떻게 하라는 것인지 잘 모르고 있습니다. 

인성교육을 점수화 등급화하는 발상은 사회적 여론에 의해 막아졌지만 사교육 시장에 인성과외가 생기는 부작용도 번지고 있습니다. 인성교육에 대한 개념 이해와 정착은 매우 어려운 일로 보입니다. 자칫하면 교육업자들만 좋아질 수 있습니다. 이 법을 둘러싼 교원단체 간의 이해다툼과 명분싸움도 이미 보기 흉합니다.

나는 두 가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우선, 이미 만들어진 법이므로 입시 위주의 교육을 개선하는 데 도움이 되도록 교육부가 종합계획을 제대로 잘 짜야 합니다. 지금과 같은 교육풍토, 아이들을 줄 세우고 시험성적 위주로 모든 걸 결정하는 제도를 그대로 둔 채 실시하는 인성교육이 설 땅은 매우 좁습니다. 하지만 이왕 만든 법과 제도라면 최대한 선한 기능을 할 수 있게 구체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무엇보다 학교현장에 혼란이 없도록 해주어야 합니다. 특히 인성교육 업자를 위한 정책을 개발하면 안 됩니다. 

둘째로, 인성교육에 포함시키든 별도로 실시하든 아이들에게 한문을 가르치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인성교육진흥법이 제시한 핵심 가치는 예(禮), 효(孝), 정직, 책임, 존중, 배려, 소통, 협동, 이 여덟 가지입니다. 그런데 이런 가치야말로 동아시아의 한문교육에서 늘 강조하고 가르치던 덕목입니다. 천자문이든 소학이든 명심보감이든 아이들은 이 여덟 가지에 관한 글을 배우며 자랐습니다. 아이들은 글의 내용에서 배우고, 소리 내어 외우면서 배워 인성을 기르고 익혔습니다. 암기식 교육이 문제라고 하지만 이 경우는 다릅니다. 한문 문장은 외워서 익힘으로써 창의력과 인성을 기르는 바탕이 됩니다. 

거의 500년 전에도 인성교육은 나라의 큰 관심사였습니다. 명종 13년(1558), 생원회시에 출제된 책문(策問)은 ‘우리나라 교육제도의 문제점과 개선방안을 논하고, 교육의 궁극적 목적과 인재 양성방법을 제시하라’는 것이었습니다. 2등을 차지한 조종도(趙宗道·1537~1597)는 “교육이 글을 외우고 읊으며 글과 문장을 다듬어 과거에 응시하고 녹봉을 구하는 방법이 되고 말았다.”고 진단했습니다. 이어 “처음에 효도와 공경과 정직과 신뢰를 가르치고, 끝에 가서는 자신을 닦고 남을 대하는 것을 가르쳐야 한다”[其敎始於孝弟忠信 終於修己治人]고 말했습니다.

조종도는 정유재란 때 의병을 모아 경남 안의(安義)의 황석산성에서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가 인솔한 왜군과 싸우다 전사한 분입니다. 사후 이조판서에 추증됐는데, 경사(經史)에 밝은 데다 해학(諧謔)을 즐겼다고 합니다. 고루하고 편협한 선비가 아니라 좋은 인성을 갖춘 분이라고 판단됩니다. 

인성교육은 교실에서나 말로 이루어질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삶의 현장에서 놀며 즐기며 일하며 생각과 행동이 달라지게 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한문을 배우면 인간성의 폭과 깊이가 달라집니다. 나는 정규학교에 가지 않고 서당에 다니는 10대 형제를 압니다.‘대학’을 줄줄 외우는 한문 실력은 물론 일반상식이 깊고 행동거지가 의젓한 게 놀라울 정도입니다. 정규학교를 보내지 않는 것은 부모에게 어려운 선택이었지만, 지금은 가족 누구도 그것을 후회하지 않고 있습니다. 

나는 초등학교 입학 전에 할아버지로부터 한문을 배웠습니다. 오늘날 이나마라도 사람 노릇을 하고, 불의와 비리에 분개할 줄 알며, 문사철의 학문과 인문정신에 지속적인 관심을 유지하는 것은 할아버지의 한문교육 덕분이라고 생각하며 감사하고 있습니다. 

한글전용시대에 한글교육이나 제대로 하지 무슨 한문교육이냐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인성교육의 대상인 청소년들이 예(禮)나 효(孝)에 대해 거부반응을 보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한문교육은 필요합니다. 더욱이 인성을 다듬어 선한 인간을 기르고, 좋은 사회를 만들기로 했다면 한문교육이 적절한 방법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문교육을 하는 과정에서는 시대에 맞게 경전과 교재를 재해석하는 게 필요합니다. 앞에서 인용한 조종도의 책문 중에서 ‘자신을 닦고 남을 대하는 것’이라는 말의 원문은 修己治人(수기치인)입니다. 왕조시대에 사대부가 될 사람은 먼저 학문과 수양을 통해 좋은 인격을 갖춘 뒤 다른 사람들을 다스려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지금 세상에서 다스린다는 말은 일반적으로 좋지 않으니 이를 ‘남을 대한다’[待人]로 해석할 수 있어야 합니다. 고리타분하다고 느끼는 효에 대해서도 문물에 어둡고 무선기기에 익숙하지 않아 소통의 어려움을 겪는 어른들에게 그 사용방법이나 원리를 알려주는 ‘디지털 효도’를 언급하며 가르치면 좋지 않겠습니까? 

한문교육을 하되 시대와 상황에 맞는 공부를 하도록 하면 학생들도 호응할 수 있을 것이고, 그래서 실질적인 도움이 될 것입니다. 다만 그 구체적인 방법을 찾는 게 어려운 일이겠지요.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자유칼럼그룹은 특정한 주의나 입장을 표방하지 않습니다.

필자소개

임철순

1974~2012년 한국일보 근무. 문화부장 사회부장 편집국장 주필 및 이사대우 논설고문을 역임했다. 
한국기자상, 삼성언론상, 위암 장지연상 수상. 
현재 이투데이 주필 겸 미래설계연구원장, 자유칼럼그룹 공동대표, 한국언론문화포럼 회장, 
한국1인가구연합 이사장.

박대문의 야생초사랑

누리장나무 (마편초과) Clerodendrum trichotomum


무더운 한여름 날씨에 산을 오르면 이열치열의 또 다른 즐거움이 있습니다. 이마와 콧등에 땀방울이 송알송알, 가파른 고갯길에서 숨이 턱턱 막히는 듯하다가 등에 땀이 촉촉이 배어나고 땀에 젖은 바짓가랑이가 엉겨 붙기 시작하면 더위와 땀이 어우러져 몸이 나긋나긋해지고 흘리는 땀방울에서 오히려 상쾌함을 느낍니다.

필자소개

박대문

환경부에서 공직생활을 하는 동안 과장, 국장, 청와대 환경비서관을 역임했다.
우리꽃 자생지 탐사와 사진 촬영을 취미로 삼고 있으며,
시집 『꽃벌판 저 너머로』, 『꽃 사진 한 장』, 『꽃 따라 구름 따라』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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