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性敬시대] 괴물 로봇도 됐다가 태권V도 됐다가




  

  여성이 남성과 잠자리를 같이하는 것은 흔히 로맨틱한 분위기 때문일 거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사실은 33%가 남편이 집안일 대신해주길 기대하는 것이란다. 영국 신문 더선이 조사 결과 밝힌 내용이다. 텍사스대의 신디 메스턴 교수와 데이비드 버스 교수의 공저 ‘여자들이 섹스하는 이유(Why Women Have Sex)’에서도 그 이유에 대해 남편이 가사노동을 해줬기 때문이라고 했다. 스콧 콜트레인 캘리포니아대 교수도 남편이 집안일을 열심히 할수록 아내들이 행복해하고 애정을 느껴 더 많은 성관계를 하게 된다고 했다. 그러니까 집안일은 나 몰라라 손 하나 까딱하지 않는 남편들은 만족스러운 잠자리 갖기가 힘들다는 얘기다. 


우리나라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이 65%를 넘었다.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맞벌이 가구의 가사노동 시간은 남자가 41분, 여자는 3시간 13분으로 남자보다 4.7배나 더 일을 하고 있다. 이래도 여자라서 행복할까? 맞벌이로 경제적 여유를 얻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아내의 시간은 날아가 버렸고(Time Poverty) 신체적, 정신적으로는 더 피폐해졌다. 미국 부부들도 별 수 없다. CNN머니 조사 결과 부부싸움의 원인은 섹스(20%)보다 돈(43%), 돈(24%)보다 가사분담(51%) 갈등이 심각해서다. 예를 들면 섹스 트러블보다 쓰레기를 누가 내다 버리느냐가 더 문제라는 얘기다. 


남자들은 왜 가사일을 안 할까?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조사로는 시간적 압박(40.5%), 가사일의 숙련도(39.7%), 한 번 하면 자꾸 해야 할 것 같아서(25.2%) 등을 꼽았다. 남편 도움이 절실한데 옛날 방식만 고집하면 아내는 힘들어진다. 남편과 성관계를 하고 싶은 마음이 줄어드는 원인은 임신과 출산으로 인한 성호르몬의 변화 때문이기도 하지만, 육아와 가사일을 혼자 도맡아야 하는 여성들의 육체적 피로와 혼자라는 고립감 때문인 이유도 크다. 남편은 성적 욕구를 해소하지 못해 야속하지만 부인은 집안일은 모른 척하면서 성관계만 요구하는 남편한테 울화통이 터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것도 여자 하기 나름이다. 듣기 좋은 꽃노래도 한두 번인데, 힘들어 죽겠다고 불평과 푸념을 자꾸 하면 부처님 가운데 토막이라도 싫어할 것이다. 알아서 척척해주지 않는다고 비난하면 갈등의 골만 깊게 패일 뿐 별 효과가 없다. 콩 튀듯 팥 튀듯 이리 뛰고 저리 뛰는 아내를 빤히 보면서도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는 남편이 눈엣가시일 수도 있다. 그러나 남편이 안 하는 것은 마음이 없어서라기보다 기회가 없었거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못하는 것일 수도 있다. 아쉬운 소리를 하느니 치사해서 차라리 자기가 하고 말겠다며 꾹 참고 있다 폭죽같이 화를 내는 것보다는 머슴 본능을 깨우는 마님의 콧소리가 제대로 먹힐 수도 있다. 


‘남편사용설명서’에서 남성성은 로봇과도 같아 잘못 조종하면 폭력적이고 공격적인 괴물 로봇이 되지만, 잘만 조종하면 지구를 구하는 태권V가 될 수도 있다. 


물먹은 솜처럼 천근만근인 몸으로 자러 들어갔을 때 왜 이제 오느냐며 투정을 부리거나 사랑해주지 않는다고 철딱서니 없는 소리를 늘어놓거나 사랑이 식었다고 갓 태어난 아기마냥 앞뒤 분간 못하고 사랑을 구걸하는 남편이 꽤 있다. 기진맥진해서 손끝 하나 대는 것도 귀찮을 뿐 아니라 얄미워 죽겠지만 화를 내는 남편 때문에 큰소리 내기 싫어 억지로 할 때는 섹스가 노동이 된다. 


집안일은 도움이 아니라 함께하는 것이다. 돈 벌어오는 아내가 피곤이 닥지닥지 붙어 콩당콩당 뛰어다니는 걸 바라만 보다가 자자고 하는 게 맞는 걸까? 

[성경원 한국성교육연구소장 서울교대·경원대 행정학 박사 / 일러스트 : 김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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