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이 있으면 80세까지도 일할 수 있습니다” - ‘기능한국인 100호’ 최우각 씨

초정밀부품 45년 외길 


  1945년 8월 15일, 일제로부터 광복을 맞이한 대한민국은 가난한 나라였다. 헐벗은 산, 척박한 논과 밭에서 생명의 씨앗을 키워야하는 국민들의 생활은 어려웠다.

배고픔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산업사회의 주인공이 돼야 했고 산업사회의 역군이 되기 위해서는 숙련기술이 필요했다. 숙련기술 발전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낀 정부는 1966년 국내 기능인재 육성을 위해 기능올림픽대회 한국위원회를 설립했다. 

국내 기능인재 육성을 위한 첫 단계로 전국 대회와 지방 대회를 개최해 국제 대회에 출전할 선수를 선발, 1967년 스페인에서 열린 제16회 국제기능올림픽대회에 처음으로 출전하게 된다.


국제기능올림픽대회에서 태극마크를 달고 경연을 하고 있는 모습
국제기능올림픽대회에서 태극마크를 달고 경연을 하고 있는 모습.


그로부터 대회 참가 10년만인 1977년, 한국은 오스트레일리아 멜버른에서 열린 대회에서 첫 우승을 시작으로 2013년 독일 라이프치히에서 열린 제42회 국제기능올림픽대회까지 참석하며 통산 18회 종합우승의 성과를 거뒀다. 1950년대 지구촌에서 가장 가난했던 나라에서 어느덧 숙련기술을 개발도상국에 전파하는 나라로 발전한 것이다. 

국제 대회에 참가해 국위를 선양하고 돌아온 기능인들은 청와대에서 대통령을 만나 격려받고 도로에서 카퍼레이드를 하며 시민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최첨단 산업의 기본은 기술이다. 도전과 열정으로 달려온 65만여 명의 기능인은 미래 산업의 뿌리이다. ‘스펙이 아닌 능력이 우대 받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고용노동부와 한국산업인력공단은 2006년 8월, 기술과 실력만으로 성공한 기능인 1호를 선정하고 이후 매월 한 명의 기능인을 선정해 시상했다.


기능한국인 100호 선정 축하자리에 모인 기술의 별들
기능한국인 100호 선정 축하 자리에 모인 기술의 별들.


2015년 6월, 초정밀부품 가공 기술 전문가인 (주)대성하이텍 최우각 대표가 기능한국인 100호로 선정됐다. 지난 6월 말, 인천시 부평구에 위치한 글로벌숙련기술진흥원에서는 100명의 기술인 별들이 한자리에 모여 기능한국인 100호 선정을 축하하는 자리를 가졌다. 

뜨거운 가슴으로 달려온 삶처럼 붉은색 넥타이를 매고 있는 100인의 기술인들을 이 자리에서 만날 수 있었다. 
배고프지 않기 위해 또는 가족과 조국의 발전을 위해 학교가 아닌 현장에서 청춘을 보냈기에 그들의 집념과 도전과 열정을 격려하는 자리는 더 의미가 깊다. 좌절하며 포기하고 싶었던 시간이 왜 없었을까. 수많은 실패와 역경을 이겨내고, 쓰러져도 다시 일어나며 맨손으로 자신의 길을 닦아온 기능 한국인의 자랑스러움이 이들의 얼굴에 묻어났다.



‘기술이야말로 세계 최고가 될 수 있는 정직한 길’이라는 일념 하나로 기술고등학교에 진학해 열심히 살아온 최우각 씨는 정밀부품 생산 분야에서 성실히 일해 오늘을 만들어냈다. 

정밀부품생산 업체를 운영하고 있는 최 대표는 1974년 전국기능경기대회에 참가해 정밀기기제작 분야 1위에 입상하며 기능인의 길을 걸어왔다. 현재 연매출 550억 원 규모의 강소기업으로 약 86.8%를 수출하고 있으며 매출의 3~5%를 R&D에 투자, 기술경쟁력 향상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45년간 한 우물을 파온 최 대표는 자신의 성공비결을 “경험과 노하우를 바탕으로 자기 분야에서 최고의 기술인이 돼야만 성공할 수 있습니다. 자신만의 탄탄한 전문기술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라고 말한다.


기능한국인 100호에 선정된 최우각씨.
기능한국인 100호에 선정된 최우각 대표.

 
자신처럼 기술인의 길을 걷고자 하는 청소년과 후배들에게는 “평생직업이라는 자부심을 갖고 현장에서 시작하라고 얘기해주고 싶습니다. 기술을 배우면 노후가 보장됩니다. 청년 실업과 은퇴 시기가 빨라지고 있지만 기술인은 70~80세까지도 일할 수 있습니다. 꼭 사업을 하지 않더라도 체력만 된다면 계속해서 일할 수 있습니다.”라며 청년들을 격려했다. 

이어 “저희 회사에서 기술고문으로 14년간 근무하고 고국으로 돌아간 일본 관리자는 78세였고, 현재 현장에서 아주 중요한 기술을 담당하고 계시는 분도 79세입니다. 기술인을 꿈꾸는 청소년들에게 기술을 전수하는 것은 물론 그들이 평생 직업의 자부심을 갖고 현장에서 일할 수 있도록 돕고 싶습니다.”라는 바람도 전했다.


공장을 돌아보는 최우각대표의 모습.
공장을 돌아보는 최우각 대표의 모습.


그는 1974년 전국기능경연대회에 참가해 대회 1위로 입상했던 스무살 적을 떠올리며 “그 때는 오로지 세계최고가 돼야겠다는 생각뿐이었어요. 뜨거운 열정으로 활활 타올랐던 시절이었지요. 밤을 새워 노력하던 그 시간들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운동선수와 마찬가지로 피땀 흘려서 불철주야 노력했던 시간이 있었기에 전국 1등도 하고 오늘날의 저도 있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미래 기능한국인을 꿈꾸는 청소년들에게도 꿈과 희망을 심어주는 선배가 되고 싶습니다.”라고 말했다.

정직과 실력으로 신뢰를 쌓아가고 있는 최 대표는 19건의 특허를 보유한 초정밀부품가공기술 전문가다. 현재에 머물지 않고 사내 연구소를 두고 끝없이 기술개발에 투자하며 인재육성에도 힘쓰고 있다. 최 대표는 100호 기능한국인으로서 ‘기술멘토’가 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기능한국인 100명과 100호 선정을 축하해주러 온 내외귀빈들과 함께 화이팅을 외치고 있다.
기능한국인 100명과 100호 선정을 축하해주러 온 내외귀빈들과 함께 화이팅을 외치고 있다.


기계, 자동차, 전기전자, 양복, 제빵 등 자신만의 길을 묵묵히 걸어온 사람들. 이들이 우리나라의 미래를 밝히는 기술의 별들이며 국가경쟁력의 원동력이다. 대한민국 기술결정체인 기능한국인 100인이 선정되고 또 다시 새로운 10년을 위한 첫걸음이 시작됐다. 대한민국의 눈부신 오늘을 위해 궂은 일 마다않고 걸어온 그들에게 이 한 마디 해주고 싶다. 고맙습니다.

정책기자단|황원숙sinsa196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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