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 준비하려면 우선 신의주 불을 켜야 한다 … 부산~단둥 잇는 고속철, AIIB 투자 끌어들이자


불야성 단둥, 어두운 신의주 과거 국제관문도시였던 신의주와 어촌이었던 단둥. 휘황찬란한 단둥(사진 왼쪽)과 
칠흑 같은 신의주의 밤이 역전된 상황을 웅변한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출처 http://defence21.hani.co.kr/290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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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경은 철조망이다. 장벽이요 단절이다. 접경지역은 동면, 죽음의 땅이 된다. 국경의 문을 열면 얘기가 달라진다. 피가 돌면서 생명을 얻는다. 접경은 성장과 혁신, 활기의 땅으로 바뀐다. 남북을 가르는 휴전선은 철조망이다. 활로 없이 꽉 막혔다. 우리의 평화 오디세이가 먼 길을 돌아 중국 단둥(丹東)에서 시작한 이유다.


선양(瀋陽) 공항을 출발, 버스로 4시간 거리인 단둥에 도착한 건 해거름 무렵이었다.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발해만의 작은 어촌에 불과하던 단둥은 대도시가 됐다. 위압적인 고층 건물 숲에 네온사인이 휘황하다. 시민들이 여유롭게 군무를 즐기는 광장 너머로 강이 흐른다. ‘압록(鴨綠)’이다. 『신당서(新唐書)』에 “강물이 오리 머리처럼 녹색”이라 하여 붙은 이름이다. 강물은 그러나 흑색이다. 북쪽으로 갈수록 색이 짙어진다. 밤이 되면 칠흑이 되는 북녘으로부터 빛의 혜택을 못 받는 까닭이다. 단둥하고 너무도 다른 한반도 끝 신의주 땅이다.


북한 식당 ‘고려관’에서 대동강 맥주와 송악 소주로 여독을 달랜다. 흥이 오른 소설가 김훈이 함께한 고은 시인의 옛 시를 기억해냈다. ‘남한에서’란 짧은 시다. “북한 여인아 내가 콜레라로/그대의 살 속에 들어가/그대와 함께 죽어서/무덤 하나로 우리나라의 흙을 이루리라.” 메르스에 놀란 가슴 콜레라가 섬뜩하지만, 죽어서라도 통일을 이루고 싶다는 민족의 바람이 담겼다. 오디세이를 여는 서시(序詩)로 괜찮은 선택이다. 일행은 강 건너 북한을 생각하며 건배했다.


이튿날 아침, 일행은 ‘광복 70년, 평화 통일을 생각한다’는 주제로 세미나를 열었다. 불꽃 토론이 예정 시간을 한 시간 가까이 넘겨 이어졌다. 참석자들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런 토론 처음 봤다”는 이구동성이 터져 나왔다(세미나 내용은 시리즈 5회에 소개).


첫 방문지는 황금평이다. 단둥 시내에서 차로 20분 거리에 있는 11.45㎢ 넓이의 압록강 섬이다. 여의도 네 배 크기다. 오랜 퇴적으로 중국 쪽에 달라붙었지만 북한 땅이다. 북·중 경제 협력의 상징인 경제특구로 지정된 지 5년째다. 하지만 변변한 건물 하나 없다. 짓다 만 청사 건물 주위로 농민들이 논밭을 부치고 있을 뿐이다.


황금평이 외면받는 덴 정치·경제적 이유가 있다. 우선 홍수 때 침수를 막으려면 최소 3m 흙을 쌓는 지반 조성 공사를 해야 한다. 북한은 그것을 할 능력이 없고 중국은 의지가 없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으로서는 말도 안 듣고 핵실험이나 하는 북한을 위해 속도를 낼 이유가 없다. 특구 설립을 요청한 김정일과 북·중 경협을 추진했던 장성택이 모두 스러지고 중국의 무관심만이 황금평을 잡초처럼 덮고 있다. 김근식 경남대 교수는 “김정은이 중국 쪽으로 다시 돌아설 때 순치(馴致) 카드로 쓰려고 중국이 황금평을 쥐고 있다”고 설명한다. 중국 공안은 일행의 버스 하차를 허가하지 않았다. 차창 너머 짧은 관찰로 만족하고 발길을 돌려야 했다.


황금평에서 5분 거리에는 웅장한 신압록강대교가 버티고 서 있다. 2개의 거대한 주탑을 가진 길이 3030m의 사장교다. 2010년 12월 착공돼 건설이 마무리됐다. 계획대로라면 하루 55t 트럭 3000대가 왕복 4차로를 오가고 있어야 한다. 이 다리는 2009년 원자바오 총리가 방북했을 때 제안한 것이다. 3700억원의 공사비도 전액 중국이 부담했다. 지난해 10월 개통 예정이었지만 1호 국도로 이어지는 북한 쪽 접속 교량 공사가 지연되고 있다. 그래서 고층 아파트와 상가가 대부분 공실로 남아 있고, 일부는 공사가 중단된 채 단둥의 스카이라인을 장식하고 있다. 북·중 간의 경제적 필요성 때문에 신압록강대교 건설이 시작됐음에도 마무리되지 않고 있는 건 정치적으로 냉랭한 현실 때문이다. 백영철 한반도포럼 이사장은 “우리 주도로 남북 관계를 개선해야 동북아 평화 협력이 가능함을 차가 달리지 않는 신압록강대교가 웅변하고 있다”고 역설했다.  


신의주를 좀 더 가까이 보려면 유람선을 타는 게 좋다. 신의주는 북한 제1의 변경무역도시다. 1909년 경의선, 1911년 압록강 철교가 완공되면서 만주 철도와 이어지는 국제관문도시가 됐다. 압록강 수계의 전력을 이용한 화학·제분·제련·방직 등 대형 공장이 속속 들어섰다. 그에 비해 단둥은 한촌에 불과했다. 수비가 어려운 변경에 공장을 짓지 않는다는 중국 정부의 전략 탓이다. 70년대까지만 해도 신의주에 의존해 먹고살았다.


하지만 중국의 개방과 북한의 폐쇄가 상황을 역전시켰다. 지금 단둥은 경제적으로 신의주를 지배하고 있다. 단둥에선 강변을 따라 고층 건물이 높이 경쟁을 하는 반면 신의주의 주택은 낡고 공장은 멈춰 있다. 유람선에서 볼 수 있는 지역은 신의주에서도 부촌이다. 규모는 크지 않지만 회전관람차도 있고 워터슬라이드를 갖춘 수영장이 있는 놀이공원도 보인다. 워터슬라이드는 가끔씩 이용객이 있지만 대부분 시설은 가동하지 않는다. 전기가 부족해서다.


유람선은 조중우의교 밑에서 돌아간다. 1943년 완공된 두 번째 철교다. 신의주와 단둥을 잇는 유일한 육로다. 북·중 교역의 70%가 신의주-단둥에서 일어나는 걸 감안하면 다리를 지나는 차량들이 너무 한산하다. 바로 옆에 있는 철교는 1911년 만들어졌지만 6·25 때 미군 폭격으로 끊어져 중국 쪽 절반만 남아 있다. 그래서 압록강 단교(斷橋)라 불린다. 매끄럽지 못한 오늘의 북·중 관계를 보여주는 듯하다.


단절의 접경이 아닌 교류의 접경을 찾아서 온 단둥에서도 답을 찾는 데 한계가 있었다. 역시 북한 문제는 남에게만 맡길 수 없는 일이다. 서울대 김병연 교수가 답을 준다. 신압록강대교의 완성을 우리가 지원하자는 것이다. 남의 4분의 1에 불과한 북의 싼 인건비를 감안하면 비용은 수백억원이면 된다. “BOT(건설·운영 후 기부채납) 방식으로 북한 내륙으로 가는 길을 열면 남·북·중 모두가 경제적 이득을 취할 수 있다”는 얘기다. 아울러 부산-서울-평양-신의주-단둥을 지나는 한·중 고속철 건설에 중국이 주도하는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의 투자를 끌어오자는 것도 그의 생각이다. 시 주석이 추구하는 ‘일대일로’ 구상을 한반도까지 끌어오는 것이다. 임혁백 고려대 교수의 생각도 다르지 않다.


물론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성공은 꿈꾸는 자의 몫이다. 남북이 함께 사는 평화 역시 꿈꾸지 않고 이뤄지길 바랄 수 없다. 평화와 통일을 준비하려면 우선 신의주의 불을 켜야 한다. 단둥을 떠나 고구려 유적지가 있는 지안(集安)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일행이 도달한 결론이었다.


중앙일보·JTBC 특별 취재단

단장: 이하경 논설주간

중앙일보: 이정민 정치·국제 에디터, 최형규 베이징총국장, 정재숙 문화전문기자, 이훈범·강찬호 논설위원, 이영종 통일문화연구소 부소장, 고수석 통일문화연구소 연구위원,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정영교 통일문화연구소 연구원, 왕철 중국연구소 연구원

JTBC: 김창조 국장, 신득수 PD, 정용환 정치부 차장, 박영웅 카메라 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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