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 앞에도 격이 있다 [방석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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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 앞에도 격이 있다

2015.07.02


메르스(MERS) 사태가 비로소 수그러드는 느낌입니다. 지난 한 달여 동안 나라가 온통 메르스 열파에 떠밀려온 것만 같습니다. 특별한 사태 변화나 진전이 없는 날조차 언론은 뉴스 첫머리로 메르스 상황을 중언부언했고, 사람들도 함께 공황상태에 빠져드는 분위기였습니다. 이곳저곳 여러 모임 가운데 더러는 그래서 취소, 연기되었습니다. ‘그래도 보고 죽자’는 모임도 없지 않아 예정대로 모이기도 했습니다. 화제는 당연히 메르스였습니다. 

“우리네 이런 고집도 메르스 사태 진정에 장애가 되는 건 아닐까?” 한 친구가 미안쩍은 듯 말했습니다. “이거야말로 사태 진정에 적극적으로 도움을 주는 거지!” 옆 친구가 받아넘깁니다. “메르스 때문에 모두가 굶어 죽어야겠어요?” 휑한 홀을 지키며 울상짓던 주인아주머니까지 끼어듭니다. 모든 사물, 모든 현상엔 양면성이 있나 봅니다. 질병의 전파를 막기 위해 가급적 나들이를 삼가야 할지, 사회활동의 위축을 막기 위해 더 부지런히 나다녀야 할지. 친구들은 결론도 나지 않을 논란을 한참이나 이어갔습니다. 

병원 이야기가 나오면서 더 소란스러워졌습니다. “우리나라 병원 말이야. 그게 어디 병실이야? 난민 수용소지.” “맞아. 그 좁은 데서 간병인, 보호자에 문안객까지 복닥거리니 없던 병도 절로 생길 판이야.” “손익계산에 바쁜 병원이 인건비가 비싸니 어쩌겠어? 간호사 줄이고 간병인, 보호자 불러들여야지.” 

몇 년 전 형님 허리수술 때 보았던 병원 풍경이 떠올랐습니다. 입원 수속을 밟는데 대뜸 보호자부터 찾았습니다. 보호자 없이는 입원도 안 되는 모양이었습니다. 전염성도 없고 심각한 병도 아니어서 6인실에 머문 며칠 사이 참 진기한 풍경을 보게 되었습니다. 병상 아래 간이침대마다 보호자들이 웅크리고 밤을 새우며 함께 생활하는 것이었습니다. 대부분 60대가 넘은 여러 지방 아주머니들이었는데 서로 안면을 터 마치 자매처럼 친했습니다. 제각기 다른 지방 사투리를 못 알아들어 흉보고 깔깔거리고 밥 먹으러 장 보러 함께 어울려 다녔습니다. 그새 정들어 먼저 퇴원하는 사람에게 며칠 더 있다 가라고 떼쓰기도 했습니다. 늘 정이 앞서는 우리네 정서로 보면 아름다운 정경이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우리네 병원은 때때로 세력가의 휴게실이나 경제사범의 도피처가 되기도 합니다. 어떤 고위 인사는 별다른 질병 없이도 때가 되면 한 번씩 입원하곤 했다고 합니다. 주변 사람들의 충성심 점검도 하고, 세금 없는 수입도 올리고. 그래서 병실은 결혼식장처럼 세 과시의 장이 되기도 합니다. 재벌 회장님들은 구속영장만 떨어지면 거의 예외 없이 병원 신세를 집니다. 이따금 환자복을 입은 채 대로까지 링거병을 끌고 나와 담배 피우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모두 질병 관리를 위한 병원과는 거리가 먼 풍경들입니다.

메르스로 한 달여를 보내면서 또다시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병원 측 환자 관리에도, 환자 측 병원 이용에도 너무 문제가 많았습니다. 어느 병원에건 환자 가족들은 물론 위문객들이 거의 마음대로 드나듭니다. 가족이든 친구든 회사 동료든 가리지 않고, 시간 통제도 별로 없습니다. 방문객이 어떤 질병의 인자를 가졌는지 안 가졌는지 따지지도 묻지도 않습니다. 병원 내에 그럴듯한 커피숍, 음식점들이 들어서 저잣거리처럼 붐비는 곳도 많습니다. 매점의 영업을 고려해서라도 방문객을 제한할 리가 없겠지요.

배가 침몰하고 대형 화재가 발생하고 질병이 창궐해야만 우리는 비로소 평소의 잘못을 돌아보곤 합니다. 그것도 아주 잠깐. 너무 바삐 살아서인지, 너무 대범해서인지 뒤늦게 깨달은 교훈도 그렇게 오래가지 못하는 편입니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사고나 재난에 대처하는 자세입니다. 책임자, 관계자는 발뺌하고 거짓말하고 도망갑니다. 당사자들은 비이성적으로 흥분하고 감정을 폭발시켜 사태를 더욱 나쁜 쪽으로 키웁니다. 

메르스의 서울 진원지가 되어버린 삼성서울병원 관계자는 “병원이 뚫린 게 아니라 나라가 뚫린 것”이라고 강변하다가 호된 질책을 받았습니다. 의료진 한두 사람의 책임은 아니라 하더라도 강한 전염성을 가진 질병의 예방에 소홀했던 점은 병원도 정부도 부인할 형편이 못됩니다.

지난달 중순 대전의 한 대학병원에서 운명한 60대 여성 환자 소식에 많은 사람들이 눈시울을 적셨습니다. 환자가 뇌경색으로 사경에 이르렀지만 가족들은 메르스 때문에 자가 격리되어 임종할 수 없었습니다. 전화로 받아 적은 남편과 아들딸의 편지를 대신 읽어 주던 간호사들이 목이 메어 흐느끼다 마침내는 중환자실이 눈물바다가 되고 만 것입니다. 80대 노부부가 차례로 숨지는 비극도 있었습니다. 남편이 메르스로 숨진 지 사흘 만에 간호하던 부인마저 감염되어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들 노부부의 자녀들 역시 자택에 격리되어 임종하지 못했습니다. 

그런가 하면 보건소 구급차를 마다하고 제멋대로 택시로 병원에 왔다가 격리를 거부하고 뛰쳐나간 사람도 있었습니다. “내가 메르스에 걸렸다면 다 퍼뜨리고 다니겠다”며 난동까지 부렸습니다. 복수심으로 수많은 상대에게 에이즈를 퍼뜨렸다는 어느 여인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메르스 의심 증세로 자가 격리 중 답답하다며 골프를 치러 간 철없는 여성도 있었습니다. 뒤늦게 사실을 알게 된 동반자들, 도우미들, 골프장 시설을 함께 이용했던 사람들의 심정이 어땠을까요.

박원순 서울시장이 어느 날 밤 느닷없이 ‘내 지역은 내가 지킨다’는 듯 메르스 대책 성명을 냈습니다. “메르스 의심 증상의 의사가 다중이 모이는 행사에 참석했었다”고 그 무책임을 꾸짖기도 했습니다. 당사자가 억울하다며 “당시 감염 여부조차 몰랐다”고 반박하자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그를 향해 "뒈지거나 그에 준하는 고통을 받아야!" 라는 댓글이 올랐다고 합니다. 인간의 본성, 또 그런 ‘맹종자’가 떠받드는 지도자가 이끌어갈 미래를 다시 생각해 보게 됩니다. 

재난 앞에서도 격이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미국의 9·11 사태, 일본 동북지방의 쓰나미 사태, 네팔 대지진 사태를 세계 언론을 통해 보고 들었습니다. 그 엄청난 재난을 당한 사람들의 언행을 보면서 많은 것을 느꼈습니다. 크고 작은 재난 앞에서 드러나는 우리의 민낯은 너무 부끄럽습니다. 자연적 물리적 재해 재난에서조차 원인 규명, 효과적 대응 모색은 젖혀두고 원망과 비난과 상대 세력의 공격에 골몰하는 게 우리네 모습입니다.

단지 남들보다 조금 잘 먹고 잘산다고 해서 선진국이 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돈푼이나 만진다고 일류국가가 되는 것도 아닐 것입니다. 선진국 국민다운 품성과 교양을 갖추지 못한다면, 일류국가다운 사회 기풍을 기르지 못한다면 돼지 목에 진주목걸이를 걸어 놓은 꼴이나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재난 앞에서조차 반목하는 모습을 돌아보면서 우리는 아직도 갈 길이 멀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필자소개

방석순

스포츠서울 편집국 부국장, 경영기획실장, 2002월드컵조직위원회 홍보실장 역임. 올림픽, 월드컵축구 등 국제경기 현장 취재. 스포츠와 미디어, 체육청소년 문제가 주관심사.

박대문의 야생초사랑

바람꽃 (미나리아재비과) Anemone narcissiflora L.

설악산 서북능선 대승령에서 만난 바람꽃입니다. 유달리 심한 올해의 영동지역 가뭄에 설악산 일대의 꽃들도 온통 가뭄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꽃들이 가뭄 속에서 어렵사리 꽃을 피웠지만 미처 결실에 이르지 못하고 말라 비틀어져가는 상태를 보니 매우 안타까웠습니다.

필자소개

박대문

환경부에서 공직생활을 하는 동안 과장, 국장, 청와대 환경비서관을 역임했다.
우리꽃 자생지 탐사와 사진 촬영을 취미로 삼고 있으며,
시집 『꽃벌판 저 너머로』, 『꽃 사진 한 장』, 『꽃 따라 구름 따라』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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