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숙 씨가 해야 할 일 [임철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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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숙 씨가 해야 할 일

2015.06.22


표절 논란에 대한 신경숙 씨의 대응은 참으로 실망스럽고 놀랍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진실인데, “진실 여부와 상관없이 이런 일은 작가에게 상처만 남는 일이라 대응하지 않겠다”는 게 도대체 무슨 말입니까? 그러면서 신씨는 ‘풍파를 함께해온 내 독자분들’에게 믿어주시기를 바랄 뿐이라고 했습니다. 내용도 말투도 다 문제입니다. 어리석은 백성을 훈화하는 왕조시대의 ‘유체이탈 화법’ 같은 언어에 한국문학과 독자들은 큰 상처를 입었습니다. 

신씨의 이런 반응과, 그를 ‘베스트셀러 상품’으로 관리해온 출판사 창비의 억지 변호는 짐작대로 집중 포화를 맞았고, 창비는 2차 해명을 하게 됐습니다. 그런데 2차 해명이라는 것도 어색하고 군색하기 짝이 없는 변명일 뿐이어서 실망과 분노가 더 커지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이번 사건을 계기로 정리했듯이 ‘원본을 알고 있으면 재미있는 게 패러디, 원본을 알아 줬으면 하는 게 오마주, 원본을 감추고 싶다면 표절’입니다. 프랑스어로 존경 경의를 뜻하는 오마주는 영화인이 선배나 다른 이의 작품 중 어떤 장면이나 대사를 존경의 표시로 인용하는 것을 말합니다. 표절 의혹에 대해 ‘혼성모방’이라고 기묘한 변명을 한 사람도 있고, 남의 글이 좋아 외우고 써보다가 자신도 모르게 내 글로 ‘전이’된 것이라고 두둔해준 경우도 보았습니다. 

그런데 신씨는 15년 전에도 표절 시비가 있었던 미시마 유키오(三島由紀夫)의 작품 ‘우국’을 알지 못한다고 말했습니다. 읽은 적이 없다는 말보다 더 강력한 부정입니다. 의심을 받는 게 처음이 아닌데도 정말로 그 작품을 모르거나 안 읽어봤다면 고의적 외면이거나 작가로서의 불성실입니다. 그러니 원본을 감추는 것이라고 의심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전적으로는 인용이나 출처 표시 없이 남의 글을 한 줄 이상, 6개 단어 이상 쓰는 게 표절입니다. 하지만 이런 기준을 들이댈 필요조차 없을 만큼 ‘우국’과 신씨의 작품 ‘전설’은 문장이 같습니다. 의심을 받는 다른 작품 몇 개도 표절이 분명해 보입니다. 신씨는 ‘여성생활수기’와 같은 각종 공모행사의 심사위원을 많이 했습니다. 이번 논란을 지켜보노라니 심사과정에서 읽게 된 응모작을 자기 작품 어디엔가 넣었을지 모른다는 ‘상식적이고도 합리적인 의심’이 생깁니다. 이 의심은 표절을 폭로한 이응준 씨의 표현인데, 그에 의하면 ‘한국의 순수문학 안에서 표절은 아주 다양한 방법으로 치밀하게 진행돼 몽롱하게 마무리’돼 왔습니다. 

평론가 정문순은 15년 전인 2000년 '문예중앙' 가을호에서 신경숙의 글을 '현실과의 긴장 관계를 놓아버린 이완된 글쓰기'라고 평했습니다. 그때 이미 '우국' 표절을 지적하며 표절의 유혹을 이기지 못한 것도 허약한 그녀의 내면이 밟아갈 수순이었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그런데 신씨는 왜 하필 자결한 일본 군국주의 소설가의 작품을 표절했을까요? 한 출판사 대표는 1주일에 평균 30부씩 팔리던 미시마 유키오의 소설 ‘금각사’가 최근 이틀 새 200부가 팔렸다고 말했습니다. 일본에서도 '금각사'가 더 많이 팔리고 있다는데, 일본 언론에 표절 논란사실이 보도될수록 한국문학의 수치는 더 커질 것입니다. 

신경숙은 대중의 사랑을 받는 작가입니다. 그 사랑과 인기를 유지하고 더 키우려다 표절까지 한 것으로 보이지만, 표절을 하지 않고도 좋은 작품을 빚어낼 역량은 있다고 생각합니다. 박완서 씨는 생전에 신경숙의 소설에 대해 “느릿느릿 사소하고 아름다운 것들, 때로는 아무렇지도 않은 것들한테까지 한눈을 팔며 소요(逍遙)하듯 따라가게 만든다. 나에게 신경숙 문학의 매력은 식물이 주는 위안과도 같다”고 평했지만, 나도 같은 생각이 듭니다. 

이제 본인이 나서야 합니다.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내 잘못을 철저히 반성하며 사과하고, 절필까지 선언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게 본인은 물론 표절에 둔감하거나 외면했던 한국문학에 활로를 여는 일입니다. 한국작가회의와 문화연대가 ‘최근의 표절사태와 한국 문학권력의 현재’라는 주제로 23일 긴급 토론회를 열기로 한 것도 작가 스스로 나서 명확한 입장을 밝히며 사과해 주기를 기다렸으나 아무런 움직임이 없기 때문입니다. 현택수 한국사회문제연구원장이 신씨를 사기와 업무방해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지만, 이응준 씨의 말대로 문학의 일은 문학으로 풀어야지 검찰 수사로 다루어 처리할 게 아닙니다. 

본인이 지금 얼마나 힘들고 괴로울지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신씨는 이번에 철저히 죽어야 합니다. 그래야 다시 살아날 수 있습니다. 그 새로운 삶은 ‘전생’과 같을 수 없으며 같아서도 안 됩니다. 나 자신의 독창적 사유와 문장의 힘으로 좋은 작품을 만들어 내야 합니다. 그게 안 될 경우 ‘나의 시대는 끝났다’ 또는 ‘나의 문학은 끝났다’는 마음으로 글을 접어야 합니다. 나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없다면 글을 쓸 필요가 없습니다. 

당나라의 문장가 한유는 사필기출(詞必己出), 반드시 자기 목소리를 내고 진언지무거(陳言之務去), 남이 이미 써서 진부해진 말을 제거하라고 했습니다. 두보는 어불경인 사불휴(語不驚人 死不休), 내 말이 사람들을 놀라게 하지 못하면 죽어서도 그만두지 않겠다고 했지요. 또 연암 박지원은 “남을 아프게 하지도 못하고 가렵게 하지도 못하고 구절마다 범범하고 데면데면하여 우유부단하기만 하다면 이런 글을 대체 어디다 쓰겠는가?”라고 했습니다. 모두가 단독자이며 교환·대체 불가능한 문장가들의 자부와 다짐이 담긴 말입니다. 그런데 표절이라니요?

사실은 절필선언을 한다고 해도 그리 걱정할 일이 아니라고 봅니다. 학력이나 경력을 속인 ‘국민강사’나 연극인들, 논문을 표절한 공직자들, 돈 받고 입시비리를 저지른 예능 교수들, 큰 물의를 빚은 탤런트 등도 참회의 표정으로 얼마동안 근신하면 바로 되살아납니다. 더 좋은 자리를 차지하기도 합니다. 우리 사회의 망각력과 복원력은 그만큼 대단합니다. 

그러니까 작가로 되살아나되 더 좋은 작가로 성장·발전할 수 있느냐가 중요할 뿐이지 이대로 매장돼 삶이 끝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하기 바랍니다. 어떤 평론가는 “사과가 하루씩 늦어질 때마다 문단 복귀 시기도 1년씩 늦어질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자유칼럼그룹은 특정한 주의나 입장을 표방하지 않습니다.

필자소개

임철순

1974~2012년 한국일보 근무. 문화부장 사회부장 편집국장 주필 및 이사대우 논설고문을 역임했다. 
한국기자상, 삼성언론상, 위암 장지연상 수상. 
현재 이투데이 주필 겸 미래설계연구원장, 자유칼럼그룹 공동대표, 한국언론문화포럼 회장, 
한국1인가구연합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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