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험생 응원의 다리 '노량진육교', 35년 만에 헐린다

1980년 세워져

수험생들 '속세로 가는 다리' 별칭안전등급 'C'로 위험 .. 

하반기 철거노량진역 일대 도심 재생사업 일환

수산시장도 10월 신축 건물로 옮겨



노량진 육교에 설치된 응원 문구들. 마포대교의 ‘생명의 다리’에 이은 ‘응원의 다리’다

출처 씨네21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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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노량진역에서 학원가로 가기 위해선 노량진육교를 건너야 한다. 폭 4m, 길이 30m의 육교는 전철역 출구와 이어진다. 매일 오전 7시쯤부터 역에서 쏟아져나온 공시생(公試生·공무원시험 준비생)과 재수생은 육교를 거쳐야 학원으로 갈 수 있다. 그래서일까. 수험생들은 언제부턴가 육교를 ‘속세로 가는 다리’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이 노량진육교가 올 하반기 철거된다. 동작구청은 18일 “오는 7월 서울지방경찰청의 교통규제 심의가 통과되면 올 하반기 육교를 철거하고 횡단보도를 설치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서울 노량진역 앞 육교를 인근 건물 옥상에서 내려다본 모습. 폭 4m, 길이 30m의 노량진육교는 학원가와 전철역을 연결하는 통로다. 1980년 세워진 이 육교는 이르면 올 하반기 철거된다. [사진 동작구청] 작가 김애란의 소설 『자오선을 지나갈 때』는 노량진육교를 이렇게 표현했다. “1999년 봄 노량진 역. 우리는 햇살을 받아 마른 버짐처럼 하얗게 빛나는 육교 위에 앉아 농담처럼 그랬다. 되고 싶은 것? 대학생. 존경하는 사람? 대학생. 네 꿈도 내 꿈도 그러니까 대학생.”

수험생들의 애환이 서린 육교를 내려오면 노량진의 명물 ‘컵밥로드’로 이어진다. 3000원이면 한 끼를 해결할 수 있는 컵밥은 학원가가 만들어낸 독특한 거리 음식이다. 컵밥 노점들이 하나의 상권을 이뤘고 ‘컵밥로드’란 별칭도 생겼다. 육교-컵밥로드를 지나면 거대한 학원가와 고시촌이 노량진 일대에 넓게 퍼져 있다. 육교가 세워진 건 1980년으로 학원가가 형성되기 시작한 때와 일치한다. 79년 정부의 ‘도심지 학원 4대문 밖 분산 계획’에 따라 각종 재수학원과 임용시험·경찰시험 학원이 노량진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입시 명문 대성학원은 75년에 이미 터를 잡은 상태였다.

육교 철거는 노량진역 일대 개발계획(재생 프로젝트)의 일환이다. 동작구는 ‘쾌적한 상권’이란 목표를 내걸고 역 주변을 정비하고 있다. 컵밥로드를 학원가와 거리를 둔 사육신공원 앞으로 옮기는 게 대표적이다. 역 인근 노량진 수산시장도 오는 10월 현대적인 신축 건물로 이전한다. 그간 노량진 상권을 가로지르는 오래된 육교가 흉물스럽다는 지적이 적지 않았다. 상당수 주민들은 육교가 부동산 가치에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고 생각하고 있다. 육교의 안전등급이 C등급이어서 철거가 불가피한 측면도 있다.

육교가 사라진다는 소식에 공무원들은 “내 젊은 날이 살아 숨쉬었던 곳”이라며 섭섭함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그들은 한번쯤 쓰디쓴 술 한잔을 마시고 노량진육교를 걸어본 경험이 있다. 서울시청 공무원 정슬희(31·여)씨는 육교를 ‘섬에 갇힌 이들을 위한 전망대’라고 표현했다. “1년에 한 번 여의도 불꽃축제를 하잖아요. ‘노량진 섬’에 살면서 그걸 보러 여의도 간다면 정신 나간 거죠. 대신 육교에 올라가면 불꽃 터지는 게 선명하게 보여요. 불꽃을 보면서 괜히 코끝이 찡해지고 ‘잘하자’ 그랬죠.”

공무원 이진봉(33)씨는 육교를 건널 때면 ‘나만 빼고 모두가 잘 살고 있다’는 생각에 참담하기도 했단다. 하지만 육교가 완전히 없어지는 건 싫다고 했다. “어느날 노량진역에서 나왔는데 육교가 없다면 노량진 같을까요? 육교의 작은 흔적이라도 남겨뒀으면 합니다.”
중앙일보 김나한 기자 kim.nah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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