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견처럼 취재하고 천사처럼 쓰라"

바이럴 콘텐츠의 대표주자 <버즈피드>의 탐사보도팀은 어떻게 운영되나

미국 1800여 명 기자들 모여 취재 방법·철학 등을 공유, 

토론하는 ‘2015 세계탐사보도기자협회(IRE)’ 콘퍼런스 참가기


6월6일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기자 1천여 명이 참가한 가운데 ‘탐사보도기자협회(IRE) 어워드 시상식’이 열렸다. 오찬과 함께 진행된 시상식에서는 기자 제임스 라이즌이 주요 연설자로 참석해 탐사보도와 저널리즘을 주제로 연설했다. 박수진 기자


1937년생 노기자가 단상에 섰다. <워싱턴포스트>의 밥 우드워드 등과 경쟁하며 <뉴욕타임스>를 대표해 ‘워터게이트’를 보도했고, 베트남전쟁에서 미군의 밀라이 마을 학살을 보도해 퓰리처상을 받은 기자. 최근에도 오사마 빈라덴 사살 과정 발표에 대한 버락 오바마 정부의 거짓말 의혹을 제기하는 보도로 세간의 주목을 받은(비록 취재원의 대부분을 익명 처리해 신뢰도 논쟁이 일기도 했지만) 기자. 그는 일흔여덟의 현역 프리랜서 기자 시모어 허시였다.


40년 전통의 미국 탐사보도기자협회(IRE·Investigative Reporters & Editors)가 매년 주최하고, 미국 전역에서 탐사보도에 관심 있는 기자들이 모여 최신 탐사보도 동향을 나누고 더 나은 보도를 위한 방법을 고민하고 토론하는 IRE 콘퍼런스가 6월3일부터 7일까지 닷새간 필라델피아에서 열렸다.


시모어 허시는 6월4일 오전 ‘시모어 허시와의 대화’라는 세션에서 1시간 동안 자신의 지난 보도와 저널리즘에 대한 생각을 이야기했다. “24시간 돌아가는 뉴스 사이클이 문제다.” “중립과 객관이라는 저널리즘의 신화는 시시한 것일 뿐이다. 누구도 완벽하게 객관적일 수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 “퇴임 관료, 퇴임 군인을 주목하라. 그들이 최고의 소스가 될 수 있다.” ‘격언’을 쏟아내는 노년의 기자에게 ‘디지털 시대’에 대한 질문이 주어지자 의외의 답변이 돌아왔다. “<버즈피드>에 미래가 있다. 좋은 보도에는 많은 돈이 들지만 요즘 신문사들은 그걸 감당할 만한 돈이 없다. 그러나 <버즈피드>의 기업가치(수익성)는 놀랄 만하다.”


탐사보도와 취재에 있어서 한 치의 양보도 없는 ‘고전적 발언’들을 쏟아낸 시모어 허시가 가볍고 재미있는 콘텐츠를 주로 추구하는 신생 소셜미디어 그룹 <버즈피드>에 경탄하는 말을 입에 올린 건 의외의 장면이었다.


“<버즈피드>에 미래가 있다”?



<버즈피드> 탐사보도팀에서 일하는 알렉스 캠벨이 9개월 동안 취재해 내보낸 ‘매 맞는 여성’ 관련 시리즈 첫 기사


<버즈피드>는 2006년 5명이 모여 바이럴(입소문) 콘텐츠의 전파경로·공유 등을 실험하는 연구실 형태로 출발했다. 2015년 현재 전세계 8곳에 지사를 두고 900명이 일하는 대형 미디어 기업으로 성장했다. 기업가치도 2014년 기준 94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미국 내 한 달 순방문자 수도 2014년 12월 기준 7680만 명으로 <뉴욕타임스>(5780만 명)보다 많다.


<버즈피드>는 주로 ‘~하는 몇 가지 방법’ 등 콘텐츠에 번호를 매겨 전달하는 리스티클(listicle), 퀴즈, 동영상 등의 형태로 콘텐츠를 유통시킨다. 최근에는 실내와 실외에서 색깔이 다르게 보이는 한 드레스 사진을 놓고 ‘이 드레스의 색깔은 무엇일까요?’라고 묻는 퀴즈 형태의 게시물을 올려 3800만 명 이상이 보게 만들었다. 한국에서도 이 드레스와 관련한 연관검색어 ‘파검흰금 드레스’가 생기는 등 소셜미디어를 통해 관련 콘텐츠가 폭발적으로 유통됐다. <버즈피드>의 대표상품은 이런 유의 것들이다.


그러나 ‘시모어 허시와의 대화’ 세션이 끝난 3시간 뒤, IRE 콘퍼런스의 한 세션에서 <버즈피드>에서 일하는 탐사보도 기자는 좀 다른 이야기를 들려줬다. 미국 거대 미디어 기업인 개닛의 계열사 <인디스타>에서 일하던 알렉스 캠벨은 2014년 <버즈피드>로 옮겼다. <버즈피드>는 2013년 ‘아프리카의 슬픔: 에이즈’라는 보도로 2000년 퓰리처상 국제부문을 수상한 마크 스쿱을 탐사보도팀 에디터로 고용했다. 2013년 10월 마크 스쿱은 ‘투견처럼 취재하고 천사처럼 쓰라’는 제목으로 <버즈피드> 탐사보도팀 기자 모집 공고를 냈다. 알렉스 캠벨은 물론, 광산 노동자들의 정부 혜택을 조작해 부당이득을 취한 변호사·의사들을 폭로해 2014년 탐사보도 부문 퓰리처상을 받은 비영리 독립언론 의 크리스 햄비 등 쟁쟁한 현역 기자들이 <버즈피드>로 모여들었다. 2014년 1월, 11명으로 이뤄진 탐사보도팀이 꾸려졌다.


알렉스 캠벨이 IRE 콘퍼런스 ‘아동과 가족 이슈 탐사보도’(Investigating child and family issue) 세션에서 자신의 취재 방법과 취재 내용을 공유한 기사는 ‘매 맞고, 자식을 잃고, 이제는 감옥에’(Battered, bereaved, and behind bars)라는 제목의 탐사보도 기사다. 아동학대 방조, 아동유기 등의 죄목으로 10년 이상의 형을 받고 수감 중인 여성들의 속사정을 취재했다. 관련 자료를 모은 4개월을 포함해 취재와 보도에 모두 9개월이 걸렸다.


9개월 취재 ‘잔혹한 불공정함’ 공론화


<버즈피드> 탐사보도팀이 2014년 말 선정한 ‘올해의 기념할 만한 8개 탐사보도’ 관련 포스팅


텍사스주에 사는 알레나 린들리의 남자친구 아론조 터너는 린들리의 3살배기 아들을 가죽벨트로 때리고 벽에 집어던지고 문짝에 휘둘러 결국 죽게 만들었다. 그 과정을 본 린들리 친구의 증언에 따르면, 터너는 린들리는 물론 친구도 위협했고 린들리는 엄청난 공포를 느꼈다. 함께 사는 동안 주기적으로 맞고 유린당하고 협박당했다는 증언도 있었다. 그러나 법정에서 린들리는 “당시 아이의 목숨보다 자신의 목숨을 더 소중하게 생각한 것으로 보인다”며 45년형을 선고받고 현재 감옥에 있다.


미국 대부분의 주는 오랫동안 가정폭력에 노출된 (성인) 여성과 아이 가운데 아이만 피해자로 인정한다. 여성은 폭력적인 배우자 등으로부터 아이를 보호하지 못한 죄로 중형을 선고받는다. 텍사스를 포함한 29개 주의 법이 특히 가혹하다고 캠벨은 보도했다. 알렉스 캠벨은 이들 29개 주의 교정시설에 정보공개를 청구해 2004년 이후 최근 10년 동안 아동학대·아동유기 등의 죄목으로 10년 이상의 형을 선고받은 여성이 73명이나 있음을 확인했다. 추가 취재를 통해 이 가운데 린들리를 포함한 28명이 심각한 가정폭력을 겪었음을 밝혀냈다. 텍사스는 왜 이런 법을 갖게 됐는지, 이 여성들은 폭력적인 파트너를 언제 만났고 어떻게 살아왔으며 어떻게 ‘수감자’가 됐는지도 취재했다. 이후 가족·이웃·친구·변호인 등 주변 취재와 법원·경찰·검찰 자료 확보를 거쳐 동영상 기사, 사진이 풍부한 내러티브 기사 등 다양한 형태로 <버즈피드> 웹사이트를 통해 내보냈다. 보도 이후 매 맞는 여성을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로 보는 법 개정을 요구하는 사회운동이 촉발됐다. “잔혹한 불공정함”이 공론화된 것이다.


알렉스 캠벨은 <버즈피드>에서 탐사보도를 하는 것의 장점으로 ‘종이신문’이라는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것을 꼽았다. “이야기를 종이신문이라는 틀 안에 가둘 필요가 없다. 이 이야기가 온라인에서 어떻게 보일지에 전적으로 집중하고 여러 가지 실험을 할 수 있다.” 이에 따라 지난해 10월2일 ‘프리뷰’ 기사를 먼저 내보냈고, 이어 10월3일 사진을 풍성하게 넣은 기사, 10월4일에는 음성으로 녹음한 형태의 기사 등을 차례로 내보냈다. 기사마다 입증자료를 꼼꼼히 첨부해 누구나 볼 수 있게 했다.


“형식에 얽매이지 않되 엄밀하게”

알렉스 캠벨은 <버즈피드>에서 경험한 탐사보도의 엄밀함이 종이신문과 비슷하다고 했다. “<버즈피드> 탐사보도팀의 책임자인 마크 스쿱은 퓰리처상을 받은 종이신문 출신이다. 그의 그런 경력이 내가 전 직장인 <인디스타>에서 취재할 때 가졌던 엄밀함의 기준을 낮추지 않아도 될 것이라는 신뢰감을 줬다.” 그가 ‘정통 언론’이 아닌 <버즈피드>에 안심하고 이직한 이유다.


<버즈피드> 탐사보도팀은 계속 커지고 있다. 기자 수는 지난해 11명에서 올해 18명으로 늘어났다. 물론 <버즈피드>의 전체 기자 350명에 비하면 적은 수다. 현장에서 탐사보도를 하는 기자는 9명이다. 이들을 지휘하는 에디터는 마크 스쿱을 포함해 3명이다. 그 외 데이터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데이터 기자가 2명, 데이터 에디터가 1명, 탐사보도 어시스턴트 1명, 편집자 1명, 컬럼비아대학과 함께 운영하는 펠로십 과정에 있는 펠로 1명이 그들이다.


미국 탐사보도의 지형은 <뉴욕타임스> 등 전통 언론에서 신생 언론으로 계속 확대되는 추세다. IRE 콘퍼런스에서는 신생 탐사보도 매체들의 기자들도 쉽게 볼 수 있었다. 캐나다의 공짜 문화 웹진으로 시작한 <바이스뉴스>는 2011년께부터 이집트혁명 등을 진지하게 다룬 고화질의 동영상 기사를 내보내면서 주목도를 높였고 현재 계속 성장하고 있다. <바이스뉴스>는 기후변화를 포함한 환경 위기 등 기성 언론이 잘 다루지 않는 주제와 관련해서 별도의 블로그를 운영하며 독자적 영역을 구축하고 있다. <뉴욕타임스>의 저명한 에디터 빌 켈러가 지난해 <뉴욕타임스>를 박차고 나가 미국 형사 시스템의 문제만을 다루겠다고 만든 비영리 언론 <더 마셜 프로젝트>, 미국 국가안보국(NSA)의 통화 감찰 기록, 프리즘 감시 프로그램 등 에드워드 스노든이 폭로한 NSA의 기밀 문서 등을 보도한 영국 <가디언>의 글렌 그린월드가 합류한 <인터셉트> 같은 신생 탐사보도 매체들이 미국 탐사보도 지형에 끊임없이 새 물을 들이붓고 있다.


탐사보도 지형에 새 물 들이붓는 매체들

그 어느 때보다 종이신문 등 기성 언론은 벼랑 끝에 놓여 있다. 한국에서는 그 위기에 대한 대응 전략으로 ‘온라인 어뷰징’이 한창이다. 자극적인 제목, 확인되지 않은 속보에 ‘단독’ 문패를 단 보도 등이 언론 전체의 신뢰를 떨어뜨리고 있다. IRE 콘퍼런스에서 확인한 바로는, ‘뉴스티클’ ‘퀴즈’ 등 바이럴 콘텐츠의 선두주자인 <버즈피드>는 정확히 그 반대 지점인 탐사보도 부문에서 역량을 넓히고 있다. 마크 호빗 IRE 총재는 <버즈피드> 등이 탐사보도를 시작한 이유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2000년대 중반까지 미국 언론들은 웹 트래픽을 올리기 위해 인기 있는 주제에 쉬운 이야기를 하는 방식으로 생존 전략을 짰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이 방법은 장기적 생존 전략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지금 <버즈피드>를 포함해 많은 언론사들은 다시 새로운 독자를 얻고 기존 독자를 유지하는 최고의 방법은 진실을 파헤치는 탐사보도 기사를 쓰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IRE 콘퍼런스에 참가하는 기자들이 꾸준히 늘고 있는 것도 미디어 변혁의 시기에 더 많은 기자들이 고민하는 방향이 ‘인터랙티브’한 탐사보도임을 잘 보여준다. 2005년 800명이었던 IRE 콘퍼런스 참가 기자 수는 2011년까지는 904명으로 미미하게 늘어나는 수준이었다. 그러나 2012년 1216명, 2014년에는 1664명으로 크게 늘었다. 올해 콘퍼런스에는 가장 많은 수인 1800여 명의 기자가 행사장을 채웠다. IRE 콘퍼런스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IRE 탐사보도상 시상식’에서 연설한 <뉴욕타임스> 기자 제임스 라이즌은 6월6일 ‘IRE 어워드’ 시상식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렇게 많은 탐사보도 기자가 있다니 정말 고무적인 일이다.”

필라델피아(미국)=박수진 기자 ji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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