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역백신, 없어서 못 맞히고 있어도 안 맞히고" - 강석기 과학칼럼니스트


‘기다림’(2015) 캔버스에 유채. 53×45cm.  

필자가 ‘사이언스’에 실린 사진을 보고 직접 그린 ‘기다림’(2015). 캔버스에 유채. 53×45cm. 

강석기 제공

edited by kcontents 

케이콘텐츠 편집



 일단 공포가 퍼져나가면 무슨 반박을 하더라도 오히려 공포에 대한 관심을 높여 공포를 시인하는 꼴이 된다.

- 벤 골드에이커, ‘배드 사이언스’

 

지난달 초 배달된 주간 과학저널 ‘사이언스’(3월 13일자)를 뒤적거리다 인상적인 사진을 발견했다. 


아기를 안은 채 앉아있는 흑인여성들의 모습이었는데, 무늬가 화려한 옷을 입은 여성도 있고 금팔찌를 두른 여성도 있었지만 표정은 다들 지쳐보였다. 곤히 잠들어있는 아기들도 왠지 안쓰러워보였다.

 

사진 오른쪽 위의 설명을 보니 탄자니아 엄마들이 아기들 백신접종을 기다리고 있는 장면이다. 흥이 많은 흑인들은 어디서 타악기를 두드리는 소리라도 들리면 다들 덩실덩실 춤이라도 출 것 같은데, 이 여인들은 오랜 기다림에 지쳐서인지 옆 사람과 수다를 떨 기운도 없는 듯하다.

 

이 사진은 저널 앞부분에 있는 ‘이번 호 주요 논문(in Science journals)’에 실렸는데, 지난해 에볼라 창궐로 고생한 서아프리카 3국의 백신접종률 저하에 대한 우려를 담은 논문을 소개하는 글과 한 묶음이다. 탄자니아는 이들 나라는 아니지만 사진의 분위기가 논문과 잘 맞아떨어져 쓴 것 같다.

  

의료체계 붕괴로 백신접종률 떨어져

미국과 영국, 스웨덴의 공동 연구자들은 논문에서 지난해 에볼라로 경제가 파탄나고 많은 의료인들이 사망한 기니, 라이베리아, 시에라리온 세 나라가 이제 또 다른 위기에 직면했다고 경고한다. 즉 얼마 안 되는 의료예산과 인력을 에볼라 퇴치에 다 쏟다보니 다른 전염성 질환에 대한 대비가 소홀해졌고 그 결과 새로운 역병 사태가 올 수 도 있다는 것. 특히 예방접종률이 급격히 떨어지면서 홍역 창궐을 우려했다.

 

홍역은 과거의 질병 같지만 우리나라에서도 종종 환자가 보고되는 전염성이 강한 바이러스성 질환이다. 사망률이 1% 미만이라 설사 걸리더라도 아주 심각한 건 아니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의료체계가 부실하고 영양상태가 안 좋은 나라에서는 사망률이 20%까지도 이르는 무서운 질병이다. 실제로 홍역백신접종이 널리 퍼지기 전에 홍역은 유아사망률을 높이는데 가장 큰 역할을 해 1980년에 무려 260만 명이 홍역으로 목숨을 잃었다. 지금도 매년 전 세계에서 10여만 명의 어린이가 홍역으로 사망해 교통사고나 에이즈로 인한 사망자수를 넘는다.

 

사실 이 수치도 세계보건기구(WHO)가 면역접종 프로그램을 강력하게 시행한 결과다. 즉 가난한 나라의 아이들의 백신접종률이 올라가면서 백신으로 막을 수 있는 전염병에 걸려 사망한 숫자가 2000년 90만 명에서 2010년 40만 명으로 뚝 떨어졌다. 특히 홍역은 50만 명에서 10만 명 선으로 떨어져 이 추세를 이끌었다.

 

그럼에도 이들 세 나라의 홍역백신 접종률은 62~79%이고 그마나 한 번만 접종한 경우가 많다. 홍역바이러스가 효과적으로 차단되려면 접종률이 95%는 돼야 하고 두 번 접종해야 한다. 그런데 에볼라 사태로 의료체계가 붕괴되면서 이들 세 나라는 이 접종률조차 유지하기 어렵게 됐다. 

 

논문에서는 현장조사를 토대로 접종률이 에볼라 이전 수준에서 75% 떨어지는 상황이 6개월, 12개월, 18개월 지속될 때 일어날 수 있는 현상을 시뮬레이션했다. 그 결과 18개월 동안 지속되면 홍역 발생자의 수가 에볼라 이전인 12만7000명의 두 배에 가까운 22만7000명에 이를 것으로 예측됐고, 이로 인한 추가 사망자 수도 2000~1만6000명에 이를 것으로 나왔다. 이는 에볼라로 인한 사망자수 1만1000여명과 맞먹는 수치다.

 

따라서 WHO를 비롯한 국제기구와 여유가 있는 나라들이 이들 세 나라의 백신접종률을 높이기 위해 적극적으로 움직여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나마 라이베리아는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 등의 도움을 얻어 이번 달부터 홍역예방접종 캠페인을 벌인다고 하는데, 기니와 시에라리온은 에볼라 뒷수습도 벅차 백신접종까지 챙길 여력이 없다고 한다.

 

1998년 엉터리 논문이 발단

미국의 월간과학잡지 ‘사이언티픽 아메리칸’ 5월호에는 특이한 사설이 한 편 실렸다. 미국의 홍역백신접종률을 높이기 위해 자녀의 접종을 망설이는 부모들을 설득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즉 홍역이 창궐하지 않으려면 백신접종률이 92~94%는 돼야 하는데, 미국은 현재 91%이고 콜로라도주나 오하이오주는 86%에 머무르고 있다는 것. 흥미롭게도 리비아와 탄자니아의 접종률이 99%에 이른다고 언급하고 있다. 사진 속 여성들이 기다린 보람이 있었나보다!

 

아프리카 나라들의 백신접종을 지원하는 미국이 오히려 백신접종률이 더 낮은 아이러니는 물론 국가가 방치해서가 아니다. 사람들이 홍역백신을 불신해 자녀들에게 맞히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홍역백신, 정확히는 MMR백신이 자폐증을 일으킬 수 있다는 우려에서 비롯한다. MMR은 홍역(measles), 볼거리(유행성이하염, mumps), 풍진(rubella)의 약자로 이들 세 바이러스에 대한 백신을 섞어 한꺼번에 접종할 수 있게 만든 게 바로 MMR백신이다.

 

백신에 대한 불신의 역사야 18세기 천연두 백신까지 거슬러 올라가지만 21세기에도 여전히 만연해 있는 게 현실이다. 그런데 이 가운데 대부분은 과학적 근거가 없고 이런 대표적인 예가 바로 홍역 백신이다. 영국 의사이자 과학저술가인 벤 골드에이커가 2008년 출간한 ‘배드 사이언스’에서 나쁜 과학의 마지막 사례로 든 게 바로 홍역 백신 논란이다. 16장 ‘백신을 접종하면 자폐증에 걸린다?’를 읽어보면 돈에 눈이 먼 한 의사가 쓴 엉터리 논문이 지식인이라고 자부하는 언론인들을 어떻게 농락했고 그 결과 언론보도를 신뢰하는 많은 사람들이 큰 피해를 입게 된 과정이 자세히 소개돼 있다.

 

1998년 2월 영국 로열프리병원의 앤드루 웨이크필드 박사팀은 의학저널 ‘랜싯’에 짤막한 논문 한 편을 발표했다. 장이 안 좋고 행동 장애(대부분 자폐증)가 있는 아이 열두 명 가운데 여덟 명이 MMR 백신을 맞고 며칠 뒤부터(평균 6.3일) 이런 증세가 나타났다는 부모와 주치의의 면담 내용과 몇 가지 검사결과를 담은 논문이다. 


교신저자인 웨이크필드는 기자회견에서 “MMR혼합백신보다 단독백신을 쓰는 게 낫다”는 주장을 하기도 했다. 2001년 웨이크필드는 일본 연구자들과 공동으로 장 질환과 자폐증이 있는 아이들의 백혈구에서 홍역바이러스(백신에서 유래했을 거라는 말이다)가 있음을 확인했다는 논문을 발표했다.

 

이때부터 본격적인 백신접종 반대운동이 벌어지기 시작했고 언론도 기름을 부었다. 아기를 위해 백신을 맞혔는데 아기가 자폐증에 걸려 통한의 눈물을 흘리는 부모들의 사연이야말로 가독성 높은 뉴스거리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해 12월 당시 총리였던 토니 블레어는 늦둥이 레오에게 MMR백신을 접종했냐는 질문에 ‘사생활’이라며 대답을 회피하면서 백신에 대한 영국인들의 불안이 고조됐다.

 

영국의 홍역백신 접종률은 1996년 92%에서 2008년 73%까지 급감했다. 특히 학력수준이 높은 사람들이 많이 사는 지역일수록 접종률이 더 낮아 60%까지 떨어졌다. 그 결과 홍역이 다시 돌아 2006년 740건, 2007년 971건에 이르렀고 사망자도 나왔다.

 

보건당국과 거대 제약회사의 카르텔에 맞서 백신의 위협에서 국민을 구한 영웅으로 추앙받던 웨이크필드는 그러나 ‘선데이타임스’의 브라이언 디어라는 집요한 기자에게 걸려 추락의 길을 걷게 된다. 디어는 1998년 논문에 여러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예를 들어 피험자 선정에 편견이 개입됐고 연구자의 입장에서 부정적인 결과는 제외됐다.

 

피험자인 아이들의 부모들은 MMR관련 소송을 준비하고 있었고 웨이크필드도 소송에 도움을 준 대가로 나중에 43만 파운드(약 7억 원)을 받은 사실이 드러났다. 또 홍역 바이러스를 검사하기 위해 요추천자나 대장내시경 등 아이들에게는 위험한 검사가 이뤄졌다. 또 2001년 일본 연구진들과 함께 발표한 바이러스 검출 논문도 가짜 양성, 즉 신호가 없는 데 있는 걸로 나온 오류로 밝혀졌다.

 

한마디로 MMR백신과 자폐증 연관 주장은 엉터리란 말이다. ‘랜싯’은 2004년 웨이크필드 박사팀의 1998년 논문에서 일부내용을 철회했고 2010년에는 논문 자체를 철회했다. 랜싯 사이트에 가면 이 논문을 다운받을 수 있는데, 각 페이지마다 빨간색의 ‘철회됐다(retracted)’라는 문구가 대각선으로 대문짝만하게 찍혀있다. 한편 웨이크필드 역시 이해 5월 의사면허가 박탈됐다. 이렇게 실상이 다 드러났음에도 여전히 적지 않은 미국 부모들이 자녀가 자폐증에 걸릴까봐 홍역백신을 꺼리는 게 현실이라고 사설에서는 개탄하고 있다.

 

2_1998년 의학저널 ‘랜싯’에는 MMR백신접종이 자폐증을 유발할 수 있다는 영국 연구진의 논문이 실렸다. 2001년 관련 논문이 나오면서 MMR백신과 자폐증 관련성이 주목을 받으며 영국의 백신접종률이 급감했다. 훗날 이 논문은 문제가 많은 것으로 밝혀져 2010년 철회됐다. - 랜싯 제공


2_1998년 의학저널 ‘랜싯’에는 MMR백신접종이 자폐증을 유발할 수 있다는 영국 연구진의 논문이 실렸다. 2001년 관련 논문이 나오면서 MMR백신과 자폐증 관련성이 주목을 받으며 영국의 백신접종률이 급감했다. 훗날 이 논문은 문제가 많은 것으로 밝혀져 2010년 철회됐다. - 랜싯 제공

1998년 의학저널 ‘랜싯’에는 MMR백신접종이 자폐증을 유발할 수 있다는 영국 

연구진의 논문이 실렸다. 2001년 관련 논문이 나오면서 MMR백신과 자폐증 관련성

이 주목을 받으며 영국의 백신접종률이 급감했다. 훗날 이 논문은 문제가 많은 것으로 

밝혀져 2010년 철회됐다. - 랜싯 제공



홍역 후유증도 무섭다

그럼에도 여전히 꺼림칙하다며 “백신을 안 맞아도 홍역에 안 걸릴 수 있고 설사 걸리더라도 사망률이 0.2%에 불과하다”라고 주장할 수도 있다. ‘사이언스’ 5월 8일자에는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에게 경종을 울리는 논문이 실렸다. 일단 홍역에 걸리면 회복되더라도 면역계가 수년 동안 손상돼 다른 전염성 질병에 걸려 사망할 확률이 훨씬 높다는 연구결과(그것도 선진국을 대상으로 한)가 실렸기 때문이다.

 


영국의 연도별 홍역발생건수(가로축)와 홍역이 아닌 전염병에 걸려 죽은 아이의 숫자(세로축)를 그래프로 나타내면 양의 상관관계가 나온다. 즉 홍역을 앓으면 한동안 면역력이 떨어져 다른 감염질환에 걸려 사망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말이다.  - 사이언스 제공

영국의 연도별 홍역발생건수(가로축)와 홍역이 아닌 전염병에 걸려 

죽은 아이의 숫자(세로축)를 그래프로 나타내면 양의 상관관계가 

나온다. 즉 홍역을 앓으면 한동안 면역력이 떨어져 다른 감염질환에 

걸려 사망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말이다.  - 사이언스 제공


세계적으로 홍역백신접종이 진행된 이래 특이한 현상이 발견됐다. 즉 가난한 나라의 경우 홍역백신접종이 실시된 이후 어린이사망률이 30~50% 떨어졌고 극빈국에서는 90%까지 줄어들었다. 


이는 홍역예방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이다. 1996년 ‘사이언스’에는 이 미스터리를 설명하는 논문이 실렸다. 즉 홍역을 앓고 나면 수주~수개월 동안 면역계가 ‘기억상실’에 걸려 다른 전염성 질환에 취약해진다는 것이다. 결국 후진국 아이들의 사망률이 급감한 건 홍역으로 인한 사망자 감소와 함께 홍역을 앓고 난 뒤 다른 병에 걸려 죽은 아이들의 수도 줄어든 게 주요 원인이라는 말이다.

 

이런 현상에 대한 명쾌한 메커니즘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최근 들어 이런 효과가 수년 동안 지속된다는 새로운 결과가 발표되고 있다. 즉 홍역을 앓는 게 아이들 면역계에 장기적인 악영향을 미친다는 말이다. 미국과 네덜란드의 공동연구자들은 이런 현상이 선진국에서도 일어나는지 알아보기 위해 대규모 의료 데이터를 분석했다.

 

즉 영국(잉글랜드와 웨일즈만)과 미국, 네덜란드의 보건 자료를 입수해 분석한 결과 홍역백신 접종률이 높아지면서 홍역발생이 줄어들자 정말 홍역이 아닌 전염병에 걸려 죽은 아이의 숫자도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연도별로 홍역 발생건수(가로축) 홍역이 아닌 전염병에 걸려 죽은 아이의 숫자(세로축)로 점을 찍어보자 역시 양의 상관관계를 얻었다. 연구자들은 이 자료로부터 홍역으로 인한 면역저하 현상이 2~3년 정도 유지됐다는 결론을 내렸다.

 

벤 골드에이커는 책의 16장을 아래의 인용구로 끝맺었다. 자폐증을 앓는 아들을 둔 캐런 프로서라는 여성의 말인데 안타까우면서도 당혹스러운 내용이다. 홍역백신이 찜찜해 접종을 안 하다가 홍역을 앓은 아이를 다른 전염병으로 잃은 부모들이 이번 논문에 대해 알게 된다면 이들이야말로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 아닐까.

 

“엄마라면 누구나 아이가 정상이기를 바라죠. 그런데 아이가 유전자 이상으로 인한 자폐증인 것 같다고 하면 정말 슬픈 일이죠. 게다가 그게 엄마가 동의해서 맞힌 백신 때문이라고 하면… 그냥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죠.”

강석기 과학칼럼니스트 sukkikang@gmail.com

edited by kcontents


"from past to future"

데일리건설뉴스 construction news

콘페이퍼 conpaper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