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으로, 자연의 품으로! [방석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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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으로, 자연의 품으로!

2015.05.18


화채봉 위로 철쭉동산을 거쳐 서리산 정상에 이르는 능선은 온통 연분홍빛으로 물들었습니다. 어른 키를 훌쩍 넘는 높이에 팔뚝만큼 튼실한 철쭉들이 능선을 따라 긴 터널을 이루고 섰습니다. 여인의 가녀린 손목처럼 휘어져 뻗은 가진 끝에선 연분홍 꽃들이 새색시 같은 미소를 머금은 채 하늘거립니다. 꿈처럼 황홀한 풍경입니다. 여기저기 꽃밭 속에서 환호성이 터집니다. 기념사진을 찍는 손길들이 분주합니다. 남자도 여자도 젊은이도 늙은이도 모두 꽃처럼 환한 웃음을 짓고 있습니다. 

지난달 초순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축령산자연휴양림 예약 페이지를 열어 보았습니다. 운 좋게도 꼭 하루 빈 날이 5월 13일. ‘잘하면 철쭉을 볼 수 있겠네’, 즉시 예약을 마치고는 입때껏 마음 졸였던 것입니다. 날씨가 너무 뜨거워서, 태풍 영향으로 비바람이 몰아쳐서. 이렇게 절정기에 딱 맞춰 철쭉꽃 터널을 걷게 될 줄이야, 함께 간 친구들도 부인네들도 일제히 환호성입니다.

“저기, 우리 사진 좀 부탁합니다.”
“네, 멋지게 서세요.”
“모델이 시원찮아서.”
“웬걸요. 꽃보다 더 이쁘신데.”

주중임에도 길게 줄지어 선 산행객들. 오르는 길이 좀 막혀도, 낯선 얼굴 껄렁한 수작에도 즐겁기만 합니다. 활짝 핀 꽃처럼 넉넉한 마음이 되어 서로서로 카메라, 휴대전화를 바꿔 가며 기념사진을 찍습니다. 복잡한 길에서 발등 좀 밟혔다고, 자동차 범퍼에 살짝 금이 그어졌다고 얼굴 찌푸리고 악쓰던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싶습니다. 

꽃나무 그늘에 펼쳐 놓은 점심 도시락은 절로 성찬이 됩니다. 휘늘어진 가지 끝에서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바람에 흔들리는 연분홍 꽃송이들이 잔칫날 둘러친 휘장처럼 흥을 돋웁니다. 이곳저곳 모여 앉은 자리마다 웃음꽃이 피어납니다. 자리를 털고 일어설 때도 종이 한 조각 과일 껍질 한 조각 남김이 없습니다. 자연의 시혜에 보답이라도 하듯 모두들 깨끗이 머문 자리를 정돈합니다. 언뜻 대모산 갈 때마다 마주치던 지하철 3호선 수서역 2번 출구의 쓰레기더미가 떠오릅니다. 깨진 유리창을 방치하면 더 많은 쓰레기가 쌓이고 더 많은 범죄가 유발된다는 ‘깨진 유리창 이론(Broken-window theory)이 실감나게 대비되는 현장입니다.

서리산에 오르는 길은 왼쪽이 조금 가파르고, 오른쪽이 다소 완만합니다. 우리는 왼쪽 길로 올라갔다가 오른쪽 길로 내려오기로 했습니다. 안내자가 그렇게 제안했고 일행 다수가 동의했기 때문입니다. 가파른 길도 일행이 보폭을 맞추고 속도를 맞추어 걷다보니 별 무리가 없었습니다. 오르막에 꼭 값비싼 등산화, 지팡이가 큰 위력을 발휘하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조금 헐한 등산화도 값싼 배낭도 산을 오르고 꽃을 즐기는 데 별 지장이 없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함께 간다는 사실일 뿐. 오순도순 즐거운 이야기를 나누며 함께 걸을 수 있다면 왼쪽인들 어떻습니까. 오른쪽인들 어떻습니까. 좀 빠른들 어떻습니까. 좀 늦은들 어떻습니까. 

숲속의 집 예약된 숙소에서 일행이 마주앉은 식탁도 정겹습니다. 곡차 몇 잔에 벌써 발그레해진 얼굴, 이럴 땐 좀 짓궂은 농담도 어물어물 잘 넘어갑니다. 복학해서도 공부는 뒷전, 여행길에 마주친 여학생들 붙들고 수작 걸던 얘기도 스스럼이 없습니다. 아부가 아니라 평소 마음속에 품었던 감사나 찬사도 평소보다는 훨씬 여유롭게, 진솔하게 털어놓게 됩니다. 아마도 대자연의 품에 안기면 그만큼 품성도 너그러워지는가 봅니다. 

숲속의 집에서 단잠을 깬 이른 새벽 산책길을 따라 계곡의 맑은 물줄기에 이르렀습니다. 손을 담그니 매끄러운 물이 손바닥을 간질입니다. 맑고 차가운 물에 세수를 하고 나니 기분이 더욱 상쾌해집니다. 오늘도 즐거운 하루가 될 거라는 예감이 듭니다.

경기도 남양주시 수동면에 있는 축령산자연휴양림은 1995년에 문을 열었습니다. 시설이 다소 낡긴 해도 맑은 숲속에서의 하룻밤은 도심에서 쌓인 피로와 스트레스를 날리기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거기에 철따라 피고 지는 꽃, 우거진 수목, 지저귀는 새들과 계곡의 맑은 물 소리가 눈과 귀와 코를 즐겁게 합니다. 누구나 인터넷을 뒤지면 휴양림 가는 길, 숙소 예약 방법을 자상하게 안내해 줍니다.

축령산뿐만이 아닙니다. 전국적으로 자연휴양림은 국립만 38개, 기타 지자체가 운영하는 공립과 민간의 사립 시설을 합치면 대략 140여 개나 됩니다. 국공립 휴양림은 영리 목적이 아니라 산림 자원을 보호하고 울창한 숲, 맑은 물, 아름다운 경관 등으로 국민 정서를 함양하고 보건 증진에 기여한다는 목적으로 마련된 온국민의 휴식공간입니다. 그래서 이용료도 비교적 저렴하고 시설도 대체로 좋은 편입니다. 

숲에서의 하루는 자신을 순화하고 정화하는 소중한 시간입니다. 특히 도시민들에게는 휴양림이 심신의 건강을 위해 더 없이 좋은 충전소가 될 것입니다. 각박해진 자신의 몸과 마음을 돌아보고, 여유와 생기를 되찾을 수 있도록 휴양림에서의 하룻밤을 권합니다.

필자소개

방석순

스포츠서울 편집국 부국장, 경영기획실장, 2002월드컵조직위원회 홍보실장 역임. 올림픽, 월드컵축구 등 국제경기 현장 취재. 스포츠와 미디어, 체육청소년 문제가 주관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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