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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병기? 우리말을 잘 가르쳐야지!
2015.05.15
교육부가 추진하는 ‘초등교과서 한자 병기’를 두고 찬반논란이 뜨겁습니다. 2014년 9월 교육부는 ‘문·이과 통합형 교육과정’의 하나로, 2018년부터 초등학교 3학년 이상 교과서에 한자를 함께 적는 방안을 추진하는데, 2018학년 초등 3·4학년, 2019학년 초등 5·6학년 교과서에 400~500자 정도의 한자를 한글과 함께 적도록 권장하는 교과서 집필 지침을 마련할 것인가 봅니다. 이에 한글단체는 강력하게 반대하고 나섰습니다.추진론자는 “한자 병기가 학생들의 어휘력 향상에 도움이 된다”고 주장하지만, 그 주장을 믿을 수 없습니다. 한자를 공부하지 않는 것보다는, 힘들여 공부하는 것이니 조금이라도 어휘력을 높이는 데 도움이야 되겠지요. '나라 國’을 생각해보죠. 저 글자에는 ‘나라’란 뜻이 있으니 ‘애국 국가 타국 망국 외국...’에 나오는 ‘국’으로 뜻을 대개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뜻은 한자를 배워야만 알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한자로 적지 않아도 ‘국’에는 나라라는 뜻을 가진 글자가 있으니 ‘국’이 들어간 낱말이라면 뜻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습니다. 교과서에 한자를 함께 적어야 생기는 효과가 아닙니다.다른 문제가 있습니다. “한자(漢字) 병기(倂記)가 학생(學生)들의 어휘력(語彙力) 향상(向上)에 도움이 된다”와 같이 적으면 어떻습니까? 글을 읽고 인식하는 속도가 무척 늦어집니다. 한자를 적지 않아도 뜻을 알 수 있는데, 한자를 ㅎ마께 적으니 뜻을 알아채는 데 시간이 훨씬 더 걸립니다. 한자를 썼기 때문에 생긴 나쁜 효과입니다. 어려운 시험을 준비하는 수험생은 한자를 같이 적은 책으로 공부하지 마십시오. 한글로 쓴 책으로 공부하는 사람보다 합격하기 어렵습니다. 분명합니다.한자를 공부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려고 잘못 쓰는 보기로‘명예회손’을 듭니다. 나는 아직도 한자 훼(毁)을 제대로 쓸 줄 모릅니다. 중고등학교 때 외우려고 수십 번도 더 썼지만 여전히 쓸 줄 모릅니다. 한자를 적지 않아도 됩니다.‘명예훼손’이라고 낱말을 정확하게 가르치면 됩니다. 살아가는데 필요한 말, 정확한 말을 충분히 가르쳐야 합니다. 한자 공부보다 그 시간에 우리말을 더 가르치는 것, 이것이 학교에서 할 일입니다.한자를 공부해야 할 사람도 있습니다. 한자로 적힌 역사 기록을 연구할 사람은 한자를 제대로 배워야 합니다. 우리나라 역사 기록물은 한자로 된 것이 많으므로 이를 연구할 사람이 많이 있어야 합니다. 이런 사람은 한자를 깊이 공부해야 합니다. 이런 사람은 정책으로 길러내야 합니다. 그렇지만 초등학생에게, 온 국민더러 한자 배우라고 떠밀 일이 아닙니다.나는 우리나라가 60년대 세계에서 가장 못 사는 나라에서 지금에 온 것은 한글이 있어서 가능했다고 생각합니다. 외국 기술을 우리 것으로 소화하여 세계 시장에 팔 제품을 만들어야 했습니다. 원문을 보고 기술을 익혀야 했다면 불가능했을 겁니다. 원어로 된 기술서를 우리말로 옮겨 기술을 익혔기에 빨리 따라잡을 수 있었습니다.지금은 지식 기반 사회입니다. 지식이 가치를 생산하는 시대죠. 지식 기반 시대에 한글만큼 뛰어난 글자가 있겠습니까? 이렇게 뛰어나고 쉬운 우리글을 두고 그 어려운 한자를 못 써 안달인지 모르겠습니다. 우리말을 더 풍부하게 만드는 데 애쓸 일입니다.오늘 5월 15일은 세종대왕이 태어난 날입니다. 세종은 ‘백성이 제 뜻을 쉽게 펼칠 수 있게’ 우리글을 만들었습니다. 세종의 뜻, 교육의 본질을 생각한다면 교육부는 한글을 어떻게 빛낼 것인가를 고민해야 합니다. 교육은 백년을 내다보고 정책을 세워야 합니다. 교육부는 앞으로 다가올 시대를 제대로 읽길 바랍니다. 교육부가 없어져야 우리나라 교육이 산다는 쓴소리가 더는 안 나오면 좋겠습니다. 우리 꿈나무 초등학생을 한자로 괴롭히지 않길 바랍니다.
필자소개
고영회(高永會)
진주고(1977), 서울대 건축학과 졸업(1981), 변리사, 기술사(건축시공, 건축기계설비). (전)대한기술사회 회장, (전)과실연 수도권 대표, 세종과학포럼 상임대표, 대한변리사회 회장 mymail@patinf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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