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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숍 풍경
2015.05.07
얼마 전 지인과 만나 얘기하러 프랜차이즈 커피숍으로 들어갔습니다. 젊은 여자 종업원이 카운터에서 주문을 받았고 얼마 후 우리를 향해 말했습니다.“커피 나왔습니다.” 지인은 종업원을 향해 느닷없이 커피를 테이블로 갖다 달라고 요청했고, 종업원은 그런 서비스는 안 된다고 대답했습니다. 이 갈등에서 지인이 이겼습니다. 홀에 사람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종업원에겐 응원자가 없었던 탓입니다. 만약 홀에 사람이 많았다면 갈등은 종잡기 어려웠을지도 모릅니다. 종업원은 커피 잔을 테이블에 툭 내려놓으며 별 손님을 다 보겠다는 표정을 지었습니다. 지인과 종업원 사이에 벌어지는 갈등을 보면서 이상야릇한 상념이 떠올랐습니다. 요즘 커피숍은 셀프서비스가 추세이니 지인의 행동이 과한 듯했습니다. 그러나 이내 커피숍이라고 반드시 셀프서비스가 당연히 받아들여져야 하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는 생각이 고개를 내밀었습니다. 식당에서 5,000원짜리 밥을 주문해도 주인이나 종업원이 오만가지 반찬 그릇을 나르며 서비스를 해주는데 달랑 종이컵에 커피를 붓고는 5,000원을 받으면서 손님더러 가져가라는 서비스 태도가 도대체 뭐란 말인가 하는 반감이 들었습니다. 더구나 커피숍의 옛 버전인 다방에서는 종업원이 커피 날라다주는 것은 당연한 서비스였는데 어떻게 이렇게 바뀌어 버린 것일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지인도 아마 옛날 다방의 서비스를 생각하며 그런 행동을 했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커피숍에서 고객이 카운터에 나가 주문을 하고 커피가 나오면 스스로 갖다 마시는 관행은 아마 미국식 프랜차이즈 커피숍이 한국에 들어오면서 생긴 일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특히 스타벅스가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고, 그곳에서 커피 마시는 것이 고품격 소비를 상징하는 것처럼 젊은 직장인들 마음을 사로잡으면서 생긴 추세인 것 같습니다. 게다가 맥도널드 패스트푸드 점도 이런 셀프서비스 문화에 한몫했다고 봅니다. 하지만 그 연원을 찾아보자면 황당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미국에서 스타벅스나 맥도널드의 셀프서비스 제도는 값싼 식음료를 시스템에 의해 저비용으로 제공하는 방안으로 정착된 것입니다. 스타벅스든 맥도널드든 품격하고는 거리가 먼 저렴하고 간편한 커피숍이고 음식점입니다. 그게 한국에 도입되면서 비교적 높은 가격과 셀프서비스를 결합한 상술로 고품격의 서비스처럼 변장한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우리나라 사람 스스로 ‘커피공화국’이란 말을 할 정도로 커피 문화가 우리 일상을 지배해가고 있습니다. 세계 6대 커피수입국이란 통계도 그렇지만 우후죽순처럼 생겨나는 커피숍이 이런 현상을 말해줍니다. 불황인데도 점심시간이면 서울 시내 중심가의 커피숍에는 비싼 값을 지불하면서 셀프서비스 커피 주문하는 사람들로 장사진을 이룹니다. 커피숍의 고급화는 프랜차이즈이든 아니든 상관없이 보편화되고 있습니다. 실내장식은 말할 것도 없고, 노트북을 가진 젊은 세대를 위해 와이파이를 설치하고 그들의 자리를 따로 마련해 놓을 정도입니다. 노트북을 펼쳐놓고 이어폰으로 음악을 들으면서 손은 쉴 새 없이 커피가 든 종이컵과 베이글 조각을 왔다 갔다 합니다.커피숍은 이렇게 시설에는 어마어마한 투자를 하면서도 고객을 위해 차를 날라다 주는 서비스를 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신세대 고객을 길들이는 데 성공했기 때문일 것입니다.커피와 커피숍을 지배하는 것은 맛과 멋입니다. 오히려 맛보다는 멋이 커피 소비자의 매력일 것입니다. 세계 각국의 커피 원두 메뉴를 펼쳐보며 글로벌 감각을 느끼고, 프랜차이즈 브랜드가 새겨진 종이컵에서 느끼는 약간의 사치스러운 감정 같은 게 비싼 커피 값을 지불하는 보상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커피를 좋아하는 기성세대에게 값이 비싸고 셀프서비스가 안 되는 커피숍은 스트레스입니다. 한 번 마시고 버리는 멋진 종이컵의 반 환경성과 낭비성이 마음을 불편하게 합니다. 여기에 착안해서 새로운 컨셉의 커피숍이 생겨날 수는 없을까요? 커피숍도 좀 더 다양해졌으면 좋겠습니다.
필자소개
김수종
한국일보에서 30년간 기자 생활. 환경과 지방 등에 대한 글을 즐겨 씀.저서로 '0.6도' '다음의 도전적인 실험' 등 3권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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