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학과 인간 1] ‘비스페놀A 프리’의 진실 - 강석기 과학칼럼니스트


비스페놀A와 이를 대체하는 용도로 쓰이는 비스페놀S, 비스페놀F 분자의 구조. 기본 골격이 상당히 비슷함을 

알 수 있다. - 가임과 불임 제공/동아사이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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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학이 가져다주는 이득이 약물과 식품첨가물의 독성, 환경오염, 화학전 같은 유해한 효과에 가려지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그 결과 화학과 화학자들이 사회에서 상대적으로 저평가되고 있다.

- ‘사이언스’ 3월 13일자 사설에서

 

‘애증(愛憎)의 관계’라는 말이 있다. 보통 매력적인 사람들에게 느끼는 감정으로 잘 몰랐을 때는 외모나 능력만 보고 애정을 느끼지만 어떤 계기로 가까워져 인간성의 실상을 알게 되면서 어떤 사람의 모든 면이 다 좋을 수는 없다는 걸 깨닫게 되기 마련이다. 러시아의 작가 도스토옙스키는 “난 러시아 사람 하나하나를 볼 때마다 혐오감을 감출 수 없지만 그럴수록 러시아인들을 더욱 사랑한다”는 애증의 관계에 대한 멋진 말을 남기기도 했다.

 

애증의 관계가 꼭 사람들 사이에서만의 일은 아니다. 과학 역시 애증의 대상인데, 예를 들어 물리학의 경우 인간 이성의 최고봉에 있지만 물리학 덕분에 가능해진 원자력산업은 적지 않은 사람들에게 증오의 대상이다. 생명과학 역시 다채로운 지식의 보고이지만 유전자조작이나 배아줄기세포 같은 얘기만 들어도 경기를 일으키는 사람도 있다. 그럼에도 애증의 관계에서 화학을 능가하지는 못할 것이다. 화학은 애증의 관계가 가장 격렬하게 표현될 뿐 아니라 아마도 애정보다 증오가 더 큰 과학일 것이다.

 

학술지 ‘사이언스’ 3월 13일자에는 문제를 일으키는 화합물을 대체하는 일이 쉽지 않은 현실을 다룬 글이 실렸다. 최근 수년 사이 많은 나라에서 비스페놀A를 젖병에서 퇴출시켰지만 그 결과 안전한 젖병이 만들어지고 있다고 장담할 수는 없다고 한다. - 사이언스 제공

학술지 ‘사이언스’ 3월 13일자에는 문제를 일으키는 화합물을 대체하는 일이 쉽지 않은 현실을 다룬 글이 실렸다. 최근 수년 사이 많은 나라에서 비스페놀A를 젖병에서 퇴출시켰지만 그 결과 안전한 젖병이 만들어지고 있다고 장담할 수는 없다고 한다. - 사이언스 제공

종합과학저널 ‘사이언스’ 3월 13일자는 표지부터 시작해서 사설, 기사, 해설, 논문, 심지어 서평까지 여러 곳에서 화학을 다뤘다. 이 글 앞에 인용한 문구는 화학자 세 사람이 공동명의로 쓴 사설에 나오는 대목으로 화학을 전공한 필자로서는 그 심정을 모르는 바가 아니다.

 

하지만 열 번을 잘 해줘도 한 번 잘못하면 돌아서는 게 인지상정인 것을 어쩌겠는가. 이번 호만 봐도 화학을 옹호하는 사설을 싣고 분자 모듈을 조합하는 방식으로 자동화한 합성법을 소개한 심층기사와 표지논문으로 화학의 밝은 면을 부각하는가 싶더니 이 모든 걸 ‘가리기에’ 충분한 어두운 내용을 담은 해설도 싣고 있다. 서평 두 편도 다 화학 관련 서적을 다루고 있는데, 그 가운데 한 권인 ‘Banned(사용금지)’ 역시 화학의 어두운 면을 다루고 있다.

 

흥미롭게도 해설과 ‘Banned’에 대한 서평이 공통의 주제를 다루고 있다. 즉 문제를 일으키는 화학물질을 대체하는 과정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으면서 여전히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심지어 더 악화되는 결과를 낳았다는 것. 그럼에도 대다수 사람들은 일이 제대로 처리됐거나  되고 있는 걸로 알고 있는 게 현실이다.

 

‘후회하지 않을 대체를 하려면(Toward substitution with no regrets)’이라는 제목의 해설은 내분비교란물질의 대표주자인 비스페놀A를 대체하는 과정에서 드러난 문제점을 조명하면서 이런 일을 막기 위해 화학자들이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논의하고 있다.

 

서평에서 다룬 책인 ‘Banned’는 1972년 DDT의 사용금지(미국)를 상징하는 제목이다. 1962년 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이 출간된 뒤 일어난 환경운동의 승리로 상징되는 DDT 퇴출이 더 해로운 살충제가 널리 퍼지게 된 계기가 된 아이러니를 농약과 독성학의 역사라는 폭넓은 관점에서 조명하고 있다. ‘(이런) 화학 하나하나를 볼 때마다 혐오감을 감출 수 없지만 그럴수록 화학을 더욱 사랑하는’ 필자이기에 2회에 걸쳐 해설과 서평이 다룬 내용을 소개하면서 화학이 나가야할 길을 고민하고자 한다.

 

남성 생식계에 특히 심각한 영향

미국 예일대 화학자들이 쓴 해설은 지난 1월 학술지 ‘가임과 불임’에 실린 프랑스 연구자들의 논문이 계기가 됐다. 즉 지난 수십 년 동안 문제가 되어온 비스페놀A를 대신해서 쓰이고 있는 비스페놀S와 비스페놀F 역시 그렇게 안전한 화합물은 아니라는 내용이다. 비스페놀A는 익숙하지만 비스페놀S와 비스페놀F는 처음 들어본다는 독자들이 많을 것이다.

 

무설탕제품(sugar free)을 표방함에도 여전히 달다면 여기엔 뭔가가 있듯이(과당이나 인공감미료 첨가) 최근 비스페놀A를 쓰지 않았다는 플라스틱이 많이 나오지만 물성이 눈에 띠게 나빠지지 않았다면 여기에도 뭔가가 있는 것이다(즉 비스페놀S나 비스페놀F 첨가). ‘비스페놀A 프리’ 플라스틱으로 만든 장난감을 비싸게 주고 사면서 ‘그래도 애한테는 안전하다니까…’라며 위안한 부모는 속았다는 느낌이 들 것이다. 하물며 이 대체 화합물들 역시 안전성 측면에서 비스페놀A와 별 다를 게 없다면 어떻겠는가.

 

비스페놀A(bisphenol A)는 1891년 합성된 분자로 페놀계열 고리분자 두 개가 프로판 골격에 좌우대칭으로 붙어있는 구조다. 1950년대 들어 비스페놀A로 고분자, 즉 플라스틱 폴리카보네이트를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이 발견되면서 비스페놀A는 화려하게 재조명됐다. 폴리카보네이트는 물성이 워낙 뛰어나 안경, CD 등 수많은 제품에 쓰였고 비스페놀A의 연간 생산량은 340만 톤에 이르렀다. 그뿐 아니라 비스페놀A는 통조림 내부 코팅재인 에폭시수지 등 다양한 재료에 첨가물로 쓰이고 있다.

 

1936년 이미 비스페놀A가 에스트로겐 같은 활성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이 발견됐음에도 워낙 쓸모가 많았기 때문에 다들 모른척하고 쓰고 있었다. 그러나 비스페놀A가 점점 널리 쓰이면서 문제가 하나 둘 터져 나오기 시작했고 이와 관련된 논문이 1만 편이 넘게 발표됐다. 그 결과 수년 전부터 여러 나라들이 비스페놀A 사용을 규제하기 시작했다.

 

비스페놀A는 당뇨와 비만, 심혈관질환 등 다양한 질병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그 가운데서도 생식계, 특히 남성의 생식계 발달에 미치는 영향이 집중적으로 연구됐다. 즉 비스페놀A에 노출될 경우 태아의 생식계 발달에 문제가 생길 수 있고 그 결과 생식기 이상이나 정자수 감소 같은 현상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

 

예를 들어 2013년 발표된 프랑스 남성 2만6000여 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결과를 보면 1996년에서 2005년 사이 매년 1.9%씩 정자수가 감소하는 것으로 나왔다. 덴마크인을 대상으로 한 또 다른 연구에서는 고환암 발생률이 1960년 10만 명 당 4명에서 2000년 10명으로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변화가 비스페놀A 때문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개연성이 높다.

 

이와 관련해 ‘고환발육부전증후군’이라는 흥미로운 가설이 있다. 남성화프로그래밍창(masculinization programming window)이라고 부르는, 남성 태아가 발달하는 결정적인 시기에 비스페놀A에 노출될 경우 고환 발육에 문제가 생기고 그 결과 생식기 발육부전이나 정자수 감소 같은 현상이 나타난다는 것. 사람의 경우 임신 6.5주에서 14주까지의 기간이 남성화프로그래밍창에 해당한다.

 

생식기 발육부전의 대표적인 예로 잠복고환과 요도하열이 있다. 잠복고환은 배에서 만들어진 고환이 음낭으로 내려오지 않는 증상으로 지역에 따라 남성의 2~9%에서 발견된다. 요도하열은 요도가 음경 끝이 아니라 그 아래쪽에 위치하는 현상으로 신생아의 0.2~1%에서 나타난다. 문제는 두 증상 모두 증가추세라는 것이고 여기에 비스페놀A가 관련돼 있다는 것.

 

논문에는 지난 2012년 ‘환경과학보건지’에 실린 국내 연구자들의 조사결과가 인용돼 있는데 좀 충격적이다. 즉 요도하열을 보이는 신생아의 혈중 비스페놀A 농도를 조사한 결과 그렇지 않은 신생아의 수치보다 평균 7배나 높게 나왔다는 것.

 

아무튼 이런 상황이다 보니 각국에서는 비스페놀A 사용을 규제하기 시작했다. 먼저 유아제품에서 시작됐는데 젖병의 경우 캐나다는 2008년, 프랑스는 2010년 유럽연합(EU)은 2011년부터 비스페놀A 사용이 금지됐다. 우리나라 역시 2012부터 젖병에 비스페놀A 사용을 금지하고 있다. 프랑스는 지난 1월부터 모든 식음료 용기에서 비스페놀A 사용을 금지하고 있다.

 

논문은 이런 ‘비스페놀A 프리’ 제품에 비스페놀A 대신 쓰이고 있는 비스페놀S나 비스페놀F는 믿을만한가라는 의문에서 시작한다. 즉 비스페놀A와 기본 골격이 동일한 이들 분자가 안전하다는 믿을만한 충분한 증거가 없다는 것. 이들은 태아에서 적출한 고환조직을 대상으로 이 물질들의 작용을 조사했다. ‘사람 태아에서 어떻게 고환조직을 꺼내지?’ 이런 의문이 드는 독자도 있을 텐데 낙태한 태아에게서 얻는다. 

 

실험결과 놀랍게도 비스페놀S와 비스페놀F 모두 내분비교란 작용에 있어서 비스페놀A와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즉 비스페놀A 대체 물질을 처리한 시료에서도 남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 분비량이 떨어졌던 것. 남성 태아 발달 과정에서 테스토스테론이 부족해지면 생식기 발육 이상으로 이어진다. 결국 ‘비스페놀A 프리’ 제품을 쓴다고 해서 ‘내분비교란물질 프리’는 아니라는 말이다.

 

버터향기의 향기롭기 못한 진실

‘사이언스’ 해설로 돌아와서 저자들은 비스페놀 사례 외에 실패한 대체의 또 다른 사례를 소개했다. 이번엔 천연물질이기도 한 부탄디온(2,3-butanedione)이다. 버터 특유의 풍미를 주는 부탄디온은 가공식품에 버터풍미를 주기 위한 원료로 합성돼 널리 쓰였다.

 

그런데 공장 근로자처럼 이 물질에 지속적으로 노출될 경우 폐 세포가 손상돼 폐쇄성세기관지염 같은 심각한 질환이 유발될 수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식품회사들은 풍미가 비슷한 펜탄디온(2,3-pentanedione)을 대체 물질로 쓰기 시작했다. 하지만 정밀한 독성실험을 수행한 결과 이 분자도 비슷한 손상을 입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비스페놀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구조가 비슷한 분자(탄소원자가 하나 더 있다)이므로 어찌 보면 뜻밖의 결과도 아니다.

 

이런 일이 반복되다보니 미국 국립연구회의(NRC)는 지난해 ‘대체 화합물 선택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기에 이르렀다. 즉 문제가 있는 물질을 대체할 물질이 환경과 건강에 안전하다는 정보가 충분한가를 면밀히 검토해야 한다는 것이다. 해설은 이런 성공적인 사례로 목재보존제 대체를 들고 있다.

 

기존에 목재보존재로 쓰이던 CCA는 크롬과 비소를 함유하고 있기 때문에 발암성 등 위험성이 문제가 됐다. 따라서 이를 대체해 구리와 암모늄염 구조인 ACQ라는 화합물이 도입됐다. ACQ는 흰개미 퇴치 등 목재보존력은 비슷하면서도 토양오염 등 문제는 훨씬 적은 것으로 밝혀져 현재 널리 쓰이고 있다고 한다. 그럼에도 ACQ를 처리한 목재에서 유출되는 구리가 수중 생태계에 미치는 독성은 아직 충분히 규명되지 않은 상태라고 한다.

 

필자들은 “많은 경우 기능은 유지하면서도 독성은 바람직한 수준으로 떨어진 대체물은 이직 발명되지 않았거나 발견되지 않았고 심지어 떠올릴 수도 없다”며 안전한 화학으로 갈 길이 여전히 멀다고 고백하고 있다. 화학에 대한 애증은 당분간 계속될 거라는 얘기다.

강석기 과학칼럼니스트 sukkikang@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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