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ww.freecolumn.co.kr
난센스 정치의 허실
2015.04.14
·# 덩샤오핑의 개혁 개방 이전까지 중국 경제는 참담한 지경이었습니다. 그 시절 경제를 살리기 위한 황당한 정책이 있었습니다. ‘참새 대숙청’과 ‘대약진 운동’입니다.<참새 대숙청>한 농부가 “참새 떼가 나락을 다 주워 먹는다”고 불평을 하자, 마오쩌둥은 “참새를 모두 없애라”는 엄명을 내렸습니다. 3억 명의 농민이 동원되어 참새 잡이에 나섰습니다. 수백 수천 명씩 들판으로 나가 참새를 잡아댔고, 새총으로 귀신같이 참새를 잡는 농부가 영웅 대접을 받기도 했습니다.농사를 망치는 참새를 대숙청하는 정책은 일단 대성공을 거두었습니다. 그러나 참새가 사라진 벌판에는 해충이 창궐하여 대흉작이 이어졌습니다. 이 때문에 수많은 인민이 굶어죽는 사태가 빚어졌습니다. 결국 중국 정부는 비밀리에 소련에 참새를 수출해 달라고 요청을 했다고 합니다. 중국 역사상 가장 어려운 시기 중 하나였습니다.<대약진 운동>산업 부흥을 위해서는 철이 필요한데, 철 생산량을 10년 내에 영국을 추월하고 20년 내에 미국을 앞지르겠다는 중국 정부의 황당무계한 계획이 대약진 운동입니다. 이를 위해 전국에 수만 개의 용광로를 급조하여 쇠란 쇠는 모두 집어넣었습니다. 실제로 1957년 535만 톤이던 철강 생산량이 1년 만에 1,070만 톤으로 두 배나 늘었습니다.하지만 이렇게 만들어진 철은 대부분 쓸모가 없어져버렸습니다. 철강을 소재로 하는 공업이 취약했기 때문입니다. 대신 용광로를 가동하기 위해 엄청난 벌목이 자행되어 국토는 더욱 황폐화하였습니다. 멀쩡한 쇠붙이를 고철로 만들기 위해 나무란 나무는 다 베어버린 꼴입니다.# 1917년 러시아는 공산주의 혁명에는 성공했지만 국가경제는 서구에 비해 많이 뒤떨어졌습니다. 특히 일본과의 전쟁과 2차 대전으로 농업생산량은 절대부족 상태였습니다. <집단농장의 허구>옛 소련(Union of Soviet Socialist Republic) 시절 흐루시초프 총리는 집단농장 수를 대폭 줄여 국영농장으로 만들었습니다. 국영농장이 사회주의 본질에 더 가깝고 이 체제가 기술적으로 우월하다는 논리였습니다. 그러나 농민들의 거센 저항으로 1958년 모든 농업 장비를 소유할 수 있도록 하는 집단농장 체제로 전환했습니다.대신 정부는 집단농장에서 생기는 수입 중 개인에 대한 분배를 줄이고, 사회적으로 가치있는 사업에 투자하도록 압력을 가했습니다. 실제로 냉장고 세탁기 진공청소기 등 가정용품은 공동으로 사용하도록 했습니다. 자동차의 개인 소유를 금지하고 무료 교통수단을 제공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또한 여성이 가사노동에서 해방될 수 있도록 하는 무료 공동식사와 자녀 양육기관 건설 등 미래의 공공도시 건설 청사진을 내놓았습니다. 그러나 집단농장은 점차 생산성이 떨어져 흐루시초프가 그토록 강조한 ‘문화적으로 발전된 건전한 사회 건설’이라는 꿈과는 멀어졌습니다.집단농장의 정치교육 담당 당원과 농민 간의 문답은 이를 극명하게 설명해 줍니다.당원-“소비에트 경제체제의 원리가 뭐요?”농민-“당신들은 우리에게 임금을 주는 척하고, 우리는 당신들에게 일을 해 주는 척하는 것이지요.”<일장춘몽 옥수수의 꿈>이보다 앞서 흐루시초프는 이상적 공산주의의 조속한 달성을 위해 농산물 생산을 늘릴 처녀지 개발에 박차를 가했습니다. 북부 카자흐스탄과 서부 시베리아 및 러시아 남부 지방을 곡창지대로 변모시키는 계획입니다. 1954년 2,800만 헥타르의 새 경작지를 만들어 56년에는 53년 이전보다 곡물 생산량이 일시적으로 3배 이상 늘어나기도 했습니다.그러나 급조된 땅은 비옥도가 떨어지고 비료조차 모자라, 60년 이후 절반 가까이가 못 쓰게 되거나 냉해 등으로 농사를 망쳐버렸습니다. 59년 미국을 방문한 흐루시초프는 오하이오주의 들판 가득한 옥수수 물결에 감명을 받아 귀국하자마자 대대적인 옥수수 재배를 지시했으나 이마저도 실패했습니다. 러시아와 오하이오 지역 간의 위도 차이를 간과한 결과입니다.# 권력 세습 3대에 걸쳐 전 인민에게 ‘쌀밥과 고깃국’을 배불리 먹여 주겠다는 북한 권부의 염원은 아직까지도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칼제비 국(칼국수)도 실컷 먹지 못합니다.<다락논의 반격>1995년 김정일은 절대농지 부족을 극복하고 식량을 증산하기 위해 전국 대부분의 산을 깎아 다락논과 밭을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이 정책은 대실패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다락논이나 밭에서 증산되는 식량보다 나무를 베고 산비탈을 깎아버려 큰비나 장마 때 산사태가 아래쪽 논밭을 쓸어버리는 바람에 오히려 식량 생산량이 줄어들었습니다.그러나 북한은 자연의 한계에 도전하는 북한 인민의 의지를 보여주기 위해 국경 지역 산의 8부 능선까지 깎아 다락논과 밭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리고는 ‘21세기의 태양 김정일 장군 만세’라는 구호 팻말을 곳곳에 설치했습니다. 필리핀·페루나 우리나라 남해의 오랜 세월 가꿔온 다락논처럼 관광객이나 몰려들었으면 좋으련만.우리는 지난해 공무원·군인 연금 부족분을 메우려고 3조8,000억 원의 세금을 더 내야 했습니다. 공짜 맛도 제대로 보지 못했는데 복지 재원은 거덜이 나고 있습니다. 거기다 2003년 이후 31조 원을 116개 해외 자원 개발 사업에 투자했으나 26조 원은 회수가 불투명하고(감사원 판정), 2019년까지 5년간 갚아야 할 돈이 22조 원을 넘는다고 합니다.더 높은 나무에 둥지를 트는 새나, 더 깊은 물속에 집을 짓는 물고기가 인간에게 잡히는 까닭은 먹이를 탐내기 때문입니다. 절대 권력자의 농업 정책 실패는 ‘인민을 위해’라는 구실로 묻혀버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장삼이사의 먹이 탐욕을 정치적으로 이용하거나, 전문성도 없는 고관대작들이 과욕을 부리면 결과는 패가망신과 국가도탄밖에 남지 않습니다.
필자소개
김홍묵
경북고, 서울대 사회학과 졸업. 동아일보 기자, 대구방송 이사로 24년간 언론계종사. ㈜청구상무, 서울시 사회복지협의회 사무총장, ㈜화진 전무 역임.
Copyright ⓒ 2006 자유칼럼그룹.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freecolumn.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