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소리하는 휴대전화" - 강정수 연세대 커뮤니케이션연구소

웨어러블의 ‘자기 최적화’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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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넷은 20세기 문명의 가장 위대한 발명이었다. 


인터넷 위에서 다양한 서비스가 진화하고 있고, 어느덧 페이스북·트위터·카카오톡 등은 인간과 인간의 관계를 새롭게 구성하고 있다. 인간관계뿐 아니다. 


인터넷 기술은 인간과 육체의 관계를 재설정하기 시작했다. 스마트폰은 인간에게 정보를 제공하고, 인간의 데이터를 저장하며 인간을 추적한다. 


우리 인간은 스마트폰에 말을 걸며, 이들 기기를 마치 절친한 친구처럼 삶의 곳곳에서 휴대한다. 특히 피트니스 밴드, 스마트워치(사진) 등 이른바 웨어러블 기기는 인간 육체와 기계를 한 몸으로 만드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


마셜 매클루언은 1964년 <미디어의 이해>(Understanding Media)에서 미디어를 “인간의 확장”으로 이해하고 있다. 만약 웨어러블 기술을 매클루언의 미디어로 이해한다면, 웨어러블 기기는 휴대전화와 스마트폰을 잇는 자연스러운 진화의 단계다. 


그러나 그리스 비극 작가 소포클래스는 “죽을 운명인 육체에 대단한 그 무언가가 찾아온다면 이는 저주와 함께 온다”고 말했다. 휴대전화처럼 웨어러블 기기 또한 시간의 차이는 있겠지만 개인 삶과 사회의 보편적 도구로 확산될 것이다. 이 때문에 웨어러블 기기가 가져올 수 있는 의도하지 않는 결과에 대해 비판적인 검토가 필요하다.


개인 육체에 대한 데이터를 수집하고 평가하는 웨어러블 기기는 자기최적화(Self-optimization)라는 철학을 포함하고 있다. 내가 오늘 하루 몇 보를 걸었는지, 얼마의 칼로리를 소비했는지 알려준다. 내게 다양한 추천을 제시한다. 내일은 좀더 움직이고 좀더 적게 먹을 것을 권할 수 있다. 


기계의 목소리가 때론 참견 또는 잔소리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더욱 무서운 것은 이른바 걱정 어린 충고 뒤에 숨어 있는 인간 규범이다. 웨어러블에 담긴 인간에 대한 철학은 무엇이 잘못되었고 무엇이 옳은지, 무엇이 좋고 무엇이 나쁜지를 알고 있다. 


웨어러블 기기는 인간이 옳고 좋게 살아가면 그에 맞는 칭찬을 늘어놓거나 보험료 인하 등 경제적 혜택을 선사할 수 있다. 반대의 경우도 가능하다. 인간에게 자제력을 강제하고 방탕을 억제하는 방식은 인간을 특정 규범으로 훈육할 수 있다.


웨어러블 기기가 가져올 수 있는 (의도하지 않은) 사회적 효과를 근거로 웨어러블의 긍정 효과를 부정하거나 거부하는 태도가 바람직한 일은 아니다. 절제와 훈육을 강요하기보다는 생활의 재미를 더하고, 인식의 지평을 확대하고, 정보를 더욱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이를 통해 삶의 질을 향상하는 웨어러블 서비스가 계속 출현할 것이다. 


하지만 웨어러블 기기에서 생산·수집되는 데이터보다 인간의 삶의 질과 건강은 더욱 폭넓게 정의될 수 있음을, 인간에 따라서는 자기최적화보다 자기결정권이 더욱 중요한 가치를 가질 수 있음을, 웨어러블 서비스가 생산하는 데이터가 보험료 차별 등으로 악용될 수 있음을 인정하는 일 등은 웨어러블 기기와 서비스 시장을 열어가기 위해 함께 고민해야 하는 지점이다.

강정수 연세대 커뮤니케이션연구소 전문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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