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 누구를 위한 ‘공영통신’인가

박노황 새 사장, 

현충원 참배·국기게양식 ‘애국 행보’에 

‘공정 보도를 위한 최소한의 장치’ 편집총국장제 무력화

‘국영·관영적 논조’ 오명 벗고 공공성, 

정치적 독립성 지켜나가는 게 시급 과제로 


연합뉴스 사옥


Q. 만약 당신이 <연합뉴스> 사장이 된다면, ‘국가 기간 뉴스통신사’로서 <연합뉴스>의 위상을 강화하기 위해 어떤 행사 또는 정책을 택하겠습니까?(복수 응답 가능)


① 국립현충원을 참배한다

② 24시간 365일 사옥 앞에 국기를 게양하겠다고 선언한다

③ 세월호 보도 등 사회적 논란이 일었던 보도를 다시 살펴서 저널리즘의 질적 수준을 높일 방안을 찾는다

④ 노동조합과 단체협약으로 약속된 내용을 일단 제쳐둔다


3월25일 취임한 박노황 <연합뉴스> 사장은 ①, ②, ④를 택했다. 현재까지는 그렇다. 그는 취임 뒤 첫 대외 일정으로 3월28일 국립서울현충원을 참배했고, 3월30일 서울 종로구 사옥 앞 야외에서 국기 게양식을 열었다. <연합뉴스>와 그 계열사인 연합뉴스TV, 연합인포맥스 임원, 보직간부 등이 함께했다. 사옥 앞 국기 게양대에는 야간 조명이 새로 설치됐다. 이전에는 국경일에만 게양하던 국기를 앞으로 24시간 365일 상시 게양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2012년 2월15일 서울 종로구 수송동 사옥 앞에서 공병설 

당시 노조위원장이 “지난 3년간 의 기사는 공정보도와 거리

가 멀었다. 가슴 아픈 자기반성 위에서 사장 연임 반대 

투쟁을 시작으로, 국가 기간 통신사로 바로 서고자 노력하겠

다”며 1인시위를 하고 있다. 류우종 기자


정부·여당에 보내는 충성 메시지?

2012년 2월15일 서울 종로구 수송동 사옥 앞에서 공병설 당시 노조위원장이 “지난 3년간 의 기사는 공정보도와 거리가 멀었다. 가슴 아픈 자기반성 위에서 사장 연임 반대 투쟁을 시작으로, 국가 기간 통신사로 바로 서고자 노력하겠다”며 1인시위를 하고 있다. 류우종 기자


‘나라 사랑하는 마음’에 무슨 문제가 있으랴마는, 회사 안팎에서 우려가 빗발쳤다. ‘정치적 독립’이 중요한 언론사의 대표여서 그렇다. 지난해 말 박근혜 대통령이 영화 <국제시장>의 국민의례 장면을 언급하며 ‘애국심’을 강조한 일이 떠오르지 않을 수 없다.


“‘때로는 정권이 숨기고 싶어 하는 진실도 파헤쳐야 하는 소명을 지닌 언론사 대표가 하기엔 적절치 않은 행사’라거나 ‘정부·여당에 충성 메시지를 보내려는 게 아닌가’라는 지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한겨레21>의 질문에 대해, <연합뉴스> 사 쪽은 “그런 우려와는 거리가 멀다. <연합뉴스>가 헌신할 대상은 국민”이라고 답했다. <한겨레21>은 <연합뉴스> 기획조정실 산하 미디어전략부를 통해 서면으로 질의해 회사의 공식 입장을 담은 답변서를 받았다.


노조와의 단체협약을 무력화하는 ④번 선택도 논란이다. 핵심은 ‘편집총국장’ 제도의 폐지 여부. 편집총국장제는 <연합뉴스> 구성원들이 2012년 103일간의 파업으로 얻어낸 성과물이기 때문이다.


2012년 <연합뉴스>의 파업 계기는 박정찬 당시 사장의 ‘연임’이었다. 박정찬 사장의 첫 임기(2009~2012) 동안 <연합뉴스>는 회사 안팎에서 보도의 객관성·공정성이 크게 무너졌다는 평가를 받았다. 한명숙 전 총리가 뇌물을 받았다는 혐의로 불구속 기소돼 2010년 재판받을 당시 보도가 대표적이다. 제대로 된 검증 없이 한 전 총리를 ‘유죄’로 단정한 듯한 기사를 내보냈다(한 전 총리는 2013년 대법에서 최종 무죄판결을 받았다). 기사 초안을 쓴 기자들이 “(데스킹 과정에서) 왜곡된 기사에 이름을 넣을 수 없다”고 데스크에 반발하자, 기자 이름 대신 ‘법조팀’이란 바이라인을 붙여 기사를 내보낸 사건도 있었다.


2009년 정부의 ‘4대강 사업’ 보도는 초대형 국책사업인데도 검증보다 ‘장밋빛’ 묘사에 치우쳤다. 2010년 ‘이명박 정부 반환점’ 특집 기사는 비판 여론을 뺀 채 찬사만 가득하다는 혹평을 받기도 했다. 2011년 말 개국한 보도전문채널 연합뉴스TV도 편향 보도 시비를 비켜갈 수 없었다.


현장에서 취재하는 <연합뉴스> 기자들은 “정부 찌라시”라고 욕하는 시민들로부터 고초를 겪기도 했다. 구성원들이 경영진에 책임을 묻기 시작했다. 그런데도 박정찬 사장이 연임을 시도해 성공하자, ‘<연합뉴스> 바로 세우기’를 슬로건으로 내건 파업이 시작됐다. 1989년 파업 이후 23년 만이었다.


편집총국장제는 이때 노사가 협의해 만들었다. 경영진이 ‘편집상무’ 직책을 맡은 임원을 통해 보도에 개입하며 편집권을 훼손했다는 판단에서 비롯한 제도다. 편집총국장은 기자직 사원의 임면동의 투표를 거쳐 임명하고, 취임 6개월 뒤부터는 공정보도 책임평가제(불신임투표제)를 적용할 수 있도록 했다. 이후 편집총국장제는 ‘공정보도를 위한 최소한의 제도적 장치’를 상징하게 됐다.


하지만 박노황 신임 사장은 3월25일 취임사에서 “편집총국장제와 같은 불합리한 요소들은 과감히 개선하겠다”고 했다. 실행이 빨랐다. 취임 하루 만인 3월26일 임원진을 교체하고 27일 보직간부 78명의 대규모 인사를 내는 등 조직 개편을 단행했다. 편집총국장을 임명하는 대신 ‘콘텐츠융합 담당 상무이사’(신설)와 ‘편집국장 직무대행’ 인사를 발표했다. 편집국장 직무대행에 대한 기자직 사원들의 임면동의 투표는 이뤄지지 않았다. 노조는 “단협 위반”이라며 반발했다.


‘재정 자립’과 ‘위상 정립’에 대한 고민

“편집총국장제가 ‘폐지’된 것이 맞느냐”는 <한겨레21>의 질문에 사 쪽은 “노사 합의로 도입한 편집총국장제도 및 임면동의 투표 제도를 폐지할 계획은 없다. 다만 올해 노조와 협의해 단협을 개정하여 제도를 개선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고 답했다. 그러나 사 쪽은 새 경영진이 편집총국장제를 “비효율적”이며 “제도 도입 뒤 콘텐츠 경쟁력이 오히려 떨어지고 퇴보했다는 외부의 지적이 적지 않으며, 인사권·경영권을 침해하는 문제가 있다”고 판단한다고 덧붙였다.


박노황 사장의 취임사나 사 쪽의 공식 답변서에서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연합뉴스>의 ‘위기’를 강조한다. 미디어 환경 변화에 대응해야 하는 경영 위기, 국가 기간 뉴스통신사로서의 위상과 역할을 확립해야 할 필요성을 명분으로 내세우는 것이다.


이런 ‘위기의식’은 다른 구성원들도 품고 있다. 노조가 3월 새 사장 선임을 앞두고 조합원들을 상대로 벌인 설문조사에서 응답자 376명 가운데 143명(38%)이 차기 경영진이 가장 시급히 해야 할 일로 ‘새로운 수익원 확보를 통한 재정안정성 강화’를 꼽았다. 노조는 노보를 통해 “재정안정성 강화는 2013년 설문조사에서 4위였다가 올해 1위로 뛰어오르면서 경쟁 격화와 전재료 급감에 따른 구성원들의 불안감을 반영했다”고 풀이했다. 같은 조사에서 ‘차기 경영진이 직면한 가장 큰 도전과제’를 묻는 질문에는 ‘뉴미디어 시대 조직·비전 재정비’(136명, 36.17%)가 1위로 꼽히기도 했다.


‘재정 자립’과 ‘위상 정립’에 대한 고민은 1980년 <연합뉴스> 설립 때부터 꾸준히 이어져왔다. 과거 뉴스통신사의 역할은 신문·방송에 기사·사진 등을 판매하는 ‘뉴스 도매상’에 집중됐다. 하지만 신문사들의 경영 상태가 국제통화기금(IMF) 사태를 거치며 악화되자 1999년 이후 기사 전재료가 동결됐다. 2001년에는 뉴스통신사 <뉴시스>가 설립되면서 20여 년간 유지돼온 <연합뉴스> 독점 체제가 막을 내리고 통신사 간 경쟁이 시작됐다.


이런 <연합뉴스>의 숨통을 틔운 일이 2003년 일어났다. ‘뉴스통신진흥에 관한 법률’이 통과돼 <연합뉴스>가 국가 기간 뉴스통신사로서의 법적 지위를 획득한 것이다. 외형상으로는 여전히 주식회사지만, ‘뉴스통신진흥회’라는 특수법인이 최대주주가 되어 사장 선임권을 쥐고 경영을 관리·감독하는 공영 언론이 됐다. 정부나 공공기관으로부터 제공받는 지원금에 대한 법적 근거가 생긴 것이다. 2004년에는 KTX(고속철도)에 뉴스를 공급하는 독점 사업권을 따내는 등 수익원을 다각화하며 경영에 힘을 기울였다. <연합뉴스>는 1993년 이후 12년 만인 2005년에 영업 흑자를 기록한다. ‘공영언론’이라는 지위 회복이 없었다면 힘들었을 일이다.


미디어 환경 변화로 독자와 광고주를 잃어가는 신문·방송 등 기존 미디어의 입장에서는 <연합뉴스>가 저 홀로 ‘승승장구’하는 것을 좋게 받아들일 수 없었다. 특히 <연합뉴스>가 대형 포털 사이트에 기사를 공급하는 데 대한 비판을 중심으로 <연합뉴스>에 적대적인 목소리나 불만이 갈수록 커졌다. 일부 언론은 <연합뉴스>와의 전재 계약을 끊었다. 한때 총매출액의 70% 이상을 차지하던 전재료 수익은 2000년대 하반기부터 30% 이하로 급락했으며, 최근에는 10%대로 떨어졌다. <연합뉴스>는 여전히 흑자이지만, 계열사인 보도전문채널 연합뉴스TV는 2011년 개국 때 당기순이익 -43억원, 2012년 -182억원, 2013년 -67억원을 기록하고 있다.


논의조차 안 된 ‘국가 기간 뉴스통신사’ 역할

여러 논란은 <연합뉴스>의 위상 또는 역할과 관련돼 있다. ‘공적 도매상’으로서의 <연합뉴스>가 미디어 생태계에서 차지하는 위치는 무척 중요하다. <연합뉴스>의 뉴스 생산이 언론사들의 수요에 맞게 조정돼 <연합뉴스> 이용률이 늘 경우, 언론사들의 뉴스 생산 비용이 절감되고 재정 부담이 축소될 수 있다. 동시에 <연합뉴스> 뉴스의 질적 수준이나 뉴스 생산 방식이 국내 뉴스산업 전반의 발전과 공공성 증대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러나 <연합뉴스>가 ‘국가 기간 통신사로서의 공적 기능 수행’으로 내세우는 핵심은 국제·지역·북한 뉴스, 재외동포와 다문화 가족 뉴스, 국내 뉴스를 6개 외국어로 번역하는 뉴스 서비스다. 2004년 <연합뉴스>의 해외 취재망은 14개국 특파원 18명 파견 수준이었으나, 현재는 28개국 특파원 42명, 통신원 18명 등 총 60명으로 늘었다. <연합뉴스>의 경영 전략도 기존 언론사들의 수요에 집중하기보다 ‘또 다른 수요’를 찾는 데로 기울어 있다.


다시, 박노황 신임 사장의 ‘돌출’ 행보에 주목해보자. 이달부터 <연합뉴스>와 정부의 구독료 협상이 시작된다는 점, 정부와의 구독 계약에 의거한 뉴스 서비스 평가가 올해부터 정례화된다는 점 등을 고려하면, 그의 행보가 정부·여당을 향한 ‘구애’라는 정치·경제적 해석이 힘을 얻을 수밖에 없다. <연합뉴스> 경영진 입장에서 가장 손쉬운(?) 비즈니스 파트너가 현재로서는 정부뿐이기 때문이다.


“통신사로서 ‘공정성’도 주요한 상품 가치”

지난 3월30일 서울 종로구 수송동 사옥 앞에서 국기 게양식이 열렸다. 박노황 신임 사장은 이 자리에서 “오늘 게양된 국기는 가 24시간 365일 불철주야 기사를 공급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언제나 사옥 앞에 우리와 함께할 것”이라며 “자랑스러운 태극기 앞에서 사원 여러분들과 함께 언제나 신속 정확하고 불편부당한 뉴스로 국가와 사회를 위해 헌신하는 국가 기간 뉴스통신사로서의 책무를 다할 것을 당부드린다”고 말했다. <미디어스> 제공


언론사와 정부의 ‘신뢰 관계’를 쌓는 방법 또한 이미 입증된 바다. 2012년 KBS 새노조가 폭로한 총리실의 ‘YTN 최근 동향 및 경영진 인사 관련 보고’ 문건을 보면, 그 과정의 일부가 드러나 있다. 총리실은 배석규 당시 YTN 신임 사장에 대해 “취임 1개월여 만에 노조의 경영 개입 차단, 좌편향 방송 시정 조치를 단행” “현 정부에 대한 충성심과 YTN 개혁에 몸을 바칠 각오가 돋보임” “노조가 강력 반발했으나 새 대표가 주동자 징계, 해고자 출입 금지 등 강경 대응하자 조합원들의 결집력이 약해져 사실상 굴복”이라고 기록했다. 이후 배석규 사장은 한 번 연임에 성공한 뒤 5년여 만인 2015년 3월에 임기를 다 채우고 물러났다.


오정훈 <연합뉴스> 노조위원장은 “<연합뉴스>가 국가 기간 뉴스통신사로서 역할을 하고 있다는 걸 강조하기 위해서는 공공성, 정치적 독립성을 지켜나가는 편집 방향이 필요하다고 본다. 편집권 독립을 위한 제도적 장치가 꼭 필요하다”고 말했다. 최영재 한림대 교수(언론정보학부)는 “통신사로서 ‘공정성’도 주요한 상품 가치 중의 하나다. 경영진도 공정보도에 신경 써야 하는 이유”라며 “<연합뉴스> 사장을 뽑는 ‘뉴스통신진흥회’를 향한 정부·여당의 영향력 행사 가능성을 줄일 수 있도록 지배구조를 시급히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연합뉴스>의 최대주주인 ‘뉴스통신진흥회’는 정부(대통령) 추천 2명, 국회의장 추천 1명, 여당 추천 1명, 야당 추천 1명, 한국신문협회 추천 1명, 한국방송협회 추천 1명 등 총 7명의 이사로 구성된다. 박노황 사장은 박정찬 전 사장 때 편집국장을 지낸 경력 탓에 노조가 ‘부적격 인사’로 지목했으나 뉴스통신진흥회는 그를 사장으로 뽑았다. 노조는 뉴스통신진흥회의 이사 수를 늘리고 시민단체, 전문가 등 다양한 주체가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1980년 <동양통신> 사장이던 김성진은 신군부로부터 “통신사 통합 절차는 우리가 알아서 할 테니, 등 외신과의 재계약 문제를 성사시켜달라”는 ‘협박 섞인 요청’을 받는다. 국제적 통신사들은 당시 한국의 사정을 어느 정도 알고 있었으며, “신군부가 주도하는 통합 통신사가 어떤 성격인지 알 수 없는 상태에서는 재계약을 수락할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다급해진 김성진 사장이 직접 미국으로 가서 사장을 만났을 때, 사장은 거두절미하고 질문부터 했다.


박노황 체제, 앞으로 3년은…

“새로 생기는 통신사가 한국의 <타스통신>이 되는 거 아닙니까?”


<타스>는 당시 소련의 국영통신. 김성진 사장은 새로 생길 통신사가 AP처럼 국내 언론사의 모임 형태로 운영될 것이라고 설명하면서 곤궁을 벗어난다.


올해로 설립 35년을 맞은 <연합뉴스>는 ‘국영·관영적 논조’란 오명을 벗고 ‘공영’ 뉴스통신사로서 산업적·저널리즘적 위상을 굳힐 수 있을까. 이번 박노황 사장 체제가 분수령이 될 가능성이 크다. 박노황 사장의 임기는 3년이다. 연임이 가능하다.


*이 기사는 책 <연합뉴스 25년사(1980~2005)>와 논문 ‘디지털 미디어 융합환경에서의 뉴스통신사 구조 변화’(김관규·김충식), ‘디지털 미디어 환경하에서 ‘국가 기간 뉴스통신사’의 역할’(남재일·최영재), 발표문 ‘뉴미디어 시장의 변화와 연합뉴스의 역할’(김영욱)을 참조했으며, <미디어오늘> 김도연 기자, <미디어스> 김수정 기자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한겨레신문 김효실 기자 tran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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