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청사’, 우리의 서글픈 거울인가 [이성낙]

서울시청사 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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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청사’, 우리의 서글픈 거울인가

2015.04.08


며칠 전 우리나라의 현대 건축 예술을 찾아 독일 방문단이 서울을 방문했습니다. 건축 전문 저널리스트로서 《건축 가이드 - 서울(Architectural guide - Seoul)》(2014)의 저자이기도 한 울프 마이어(Ulf Meyer)가 독일의 전문가 그룹을 인솔하고 온 것입니다. 그의 시각을 통해 서울에 자랑스러운 현대 건축물이 많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것은 새로운 즐거움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서울 동대문에 들어선, 자하 하디드(Zaha Hadid, 1950~ )가 설계한 DDP 건물을 둘러보면서 흥에 넘치는 목소리로 신나게 설명하는 그의 모습은 참으로 인상적이었습니다. 동행자들이 필자에게 던지는 따듯한 부러움의 눈길도 흐뭇한 기쁨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일행은 서울시 청사(설계자 유걸)를 보러 서울 광장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국내 여론에서 심히 엇갈리는 평가를 받는 신청사 건물을 외국 전문가는 어떻게 설명할까 내심 궁금하기도 하고 긴장되기도 했습니다. 인솔자는 신청사가 옛 식민 시대의 유물인 구청사를 위에서 큰 파도(波濤)가 압도하는 형상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신청사의 청록색 유리 외장은 한국이 얼마나 그린 에너지 정책을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한 예라고 덧붙였습니다. 그러곤 신청사 지붕에 깔려 있는 태양광 집열판을 가리키기도 했습니다. 아울러 서울 지역의 대기오염 지수가 수년 전에 비해 괄목할 만큼 개선되었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면서 청사 내부도 친환경적으로 설계해 건물 내부 벽면이 초록색 식물로 가득하다고 말했습니다. 아낌없는 칭찬을 들으며 일행은 ‘서울특별시청사’라고 쓰인 신청사 안으로 들어섰습니다. 

그런데 안에서 청사 유리 외벽을 보는 순간 필자는 못 볼 것을 본 듯 아찔해졌습니다. 때마침 청사 밖에서 비치는 햇빛은 투명해야 할 외벽 유리가 얼마나 엉망으로 관리되고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었습니다. 외벽 유리에는 여러 해 동안 겹겹이 쌓이고 쌓인 ‘오물’이 가득했습니다. 필자는 너무나 창피해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은 심정으로 서둘러 밖으로 나왔습니다. 도저히 그들의 시선을 마주 보기 힘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밖에서 보니 청사의 유리 외장은 더욱 가관이었습니다. 걸레로 대충대충 훔친 자국이 마치 무슨 ‘추상화’를 보는 듯했습니다. 필자는 근래 이렇게 지저분하게 관리하는 건물을 본 적이 없었습니다. 창피하다 못해 우울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날따라 맑은 하늘을 원망하기도 했습니다. 짙은 구름에 햇빛이라도 가렸더라면……. 

청사 안팎에서 근무하며 지나다니는 시장 이하 여러 직원의 눈에는 저런 모습이 보이지 않는 걸까? 온갖 부정적인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그때 하얀 헝겊으로 말끔히 닦고 닦아 투명해진 유리창을 보며 흐뭇해하는 영화의 한 장면이 생각났습니다. 얼마 전 보았던 <미스터 터너(Mr. Tuner)>라는 영화인데, 영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화가 조지프 말러드 윌리엄 터너(Josef Mallord William Turner, 1775~1851)의 생애를 다룬 것이었습니다. 

화가의 일생과 작품을 둘러싼 크고 작은 스토리가 흥미롭고, 주연을 맡은 티모시 스폴(Timothy Spall)이 2014년 칸 영화제에서 최우수주연상을 받았음에도 흥행에는 크게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영화를 본 필자에게는 매우 인상적인 장면이 하나 있었습니다. 화가의 마지막 삶을 곁에서 지켜본 하숙집 주인이자 동거녀인 여인이 고인이 된 터너를 그리워하며 유리창을 닦는 장면입니다. 여인은 침울한 마음을 달래보려는 듯 처음에는 양손에 쥔 흰 천으로 힘없이 유리창을 닦습니다. 그러다가 천천히 정성껏 유리창을 닦기 시작합니다. 유리창은 이윽고 투명할 만큼 깨끗해집니다. 그리고 우울해하던 여인은 그 투명한 유리창을 보며 옅은 미소를 짓습니다. 필자는 왠지 모르게 이 장면이 퍽 인상적이었습니다. 

깨끗한 유리창이 내뿜는 소박함은 ‘화려하면서도 사치하지 아니해야 한다(華以不侈)’는 우리 조상들의 정신을 생각나게 합니다. 또 “검소하면서도 누추해서는 아니 된다(儉以不陋)”는 말이 생각나기도 합니다. 그러나 서울특별시 청사의 ‘특별’히 지저분한 유리창은 검소하지도 않고 누추하기 그지없었습니다. 서울 시민의 문화 수준을 이렇게 떨어뜨릴 수도 있는가 싶어 민망하고 분(憤)했습니다. 

어쩌면 우리 사회의 투명하지 않은 거울이 서울시 청사의 더러운 유리창에 반영되어 있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윈스턴 처칠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람이 건물을 짓고 살다 보면 건물이 사람을 바꿔놓는다.” 우리 모두에게 던지는 경고의 고언(苦言)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필자소개

이성낙

뮌헨의과대 졸. 프랑크푸르트대 피부과학 교수, 연세대 의대 교수, 아주대 의무부총장 역임.
현재 가천대 명예총장, 의ㆍ약사평론가회 회장, (사)현대미술관회 회장, (재)간송미술문화재단 이사

박대문의 야생초사랑

솜나물 (국화과)

앙증맞고 깜찍한 솜나물입니다. 이른 봄 갈색 낙엽만이 뒹구는 황량한 땅바닥에 몰래 숨어 바깥세상 엿보듯 꽃을 피웁니다. 발밑에 두고도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작은 꽃대에 버거운 꽃판을 피워 올려 봄을 맞이합니다. 아직 찬 기운이 산야에 가득한 때라서인지 잎과 꽃줄기가 보송보송한 솜털에 싸여 있고 펴지지도 않은 새잎이 꽃대와 함께 올라옵니다.

필자소개

박대문

환경부에서 공직생활을 하는 동안 과장, 국장, 청와대 환경비서관을 역임했다.
우리꽃 자생지 탐사와 사진 촬영을 취미로 삼고 있으며,
시집 『꽃벌판 저 너머로』, 『꽃 사진 한 장』, 『꽃 따라 구름 따라』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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