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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포르에서의 '껌 씹는 자유'
2015.04.01
싱가포르 사람들이 스스로를 지칭하는 표현 가운데 하나가 ‘Fine Country’입니다. 말 그대로 ‘좋은 나라’라는 뜻이겠지만 ‘벌금(罰金) 국가’라는 자조적인 의미도 강하다고 하지요. 길가에 휴지를 버리거나, 침을 뱉거나 할 경우 여지없이 딱지를 떼일 만큼 규율이 엄격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심지어 지하철에서 음식을 먹거나 공공 화장실에서 용변 뒤에 물을 내리지 않아도 벌금적용 대상에 포함된다고 하니 말입니다.건물 내 금연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벽마다 붙어 있는 경고판에는 ‘No Smoking’이라는 문구에 ‘법에 의해 금지된다(prohibited by law)’는 표현이 따라 붙습니다. 세계적으로 담배 그림에 대각선의 빨간줄 경고판이 보통이지만 싱가포르에서는 제재가 한층 철저하다는 사실을 말해줍니다. 거리 곳곳에 감시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어 낭만적인 일탈조차 허용되지 않는 만큼 통제된 분위기에 대한 집단적인 반발심리를 이해할 만합니다.리콴유(李光耀) 전 총리가 타계하면서 이러한 사회 규율이 어떻게 바뀔지 관심이 쏠리고 있습니다. 작은 신생 도시국가를 ‘일류 국가’로 일으켜 세운 그를 ‘국부(國父)’로 추앙하고 있으면서도 그가 남긴 정치·사회적 유산을 어떻게 이끌어가야 할 것인지에 대한 재평가 움직임이 엿보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5만6000달러에 이르면서도 일탈의 여지가 없는 빡빡한 생활에 대해서는 은근히 불만을 표시하는 그들입니다.이러한 제재 대상 가운데 하나가 길거리에서 껌을 씹는 것입니다. 껌을 씹다가 함부로 버리게 되면 길거리가 껌 자국으로 지저분해진다는 이유로 껌 수입과 판매가 법으로 금지되고 있습니다. 껌을 씹다가 적발될 경우 쓰레기 투기와 같은 기준에 따라 1000SGD(싱가포르 달러), 그러니까 우리 돈으로 대략 80만원 정도의 벌금을 내야만 합니다. 껌 조각의 단물을 빨려면 엄청난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는 얘기입니다.물론 껌을 씹는 자체가 불법은 아닙니다. 껌의 수입이 금지되어 있으므로 개인 반입도 덩달아 금지되어 있는 셈입니다. 잇몸 건강 등의 이유로 껌을 꼭 씹어야 하는 경우에는 치과의사 처방을 받아 약국에서 살 수 있다는 예외조항이 있다고 하지만 그렇게까지 해야 한다는 사실에 넌더리를 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나마도 미국과의 자유무역협정(FTA)에 따라 지난 2004년부터 무설탕 껌에 대한 수입이 허가된 결과입니다.좀더 정확히 말하자면, 껌의 수입 및 판매 금지는 리콴유의 결정은 아니었습니다. 그의 뒤를 이은 고촉동(吳作棟) 총리가 1992년 내린 결정입니다. 하지만 리콴유가 진작부터 ‘깨끗한 싱가포르’ 정책을 추진해 왔다는 점에서 같은 맥락으로 바라보는 것이 타당합니다. “수도꼭지가 새고 수세식 변기가 제대로 움직이지 않거나 정원 잔디밭이 너저분한 것은 나라가 부패했다는 증거”라고까지 리콴유는 평소 강조했습니다.가지런한 사회 환경이 국가 전체의 청렴도나 건실함으로 연결된다고 간주했던 것입니다. 따라서 이를 위해서는 국민들을 앞서서 이끌어야 하며, 정부 방침을 따르지 않으려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과도한 벌금을 매겨서라도 억지로나마 따라오게 만들어야 한다는 게 리콴유의 개인적인 신념이었습니다. 바로 그러한 연결선 위에서 법질서 확립 정책이 추진됐고 공직사회의 부정부패가 척결되었습니다.그렇다면, 이제 싱가포르 길거리에서 다시 껌을 씹을 수 있도록 허용될 수 있을까요. 지금껏 싱가포르가 고속성장을 이루는 과정에서 드러난 여러 문제점을 고쳐야 한다는 의견이 대두되면서 엄격한 벌금제도의 완화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고, 그 하나로 이 문제가 주목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더욱이 최근의 불경기로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증폭되면서 기존 질서에 대한 반발감도 함께 커지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할 수는 없습니다.하지만 역사적인 경험으로 미루어 하나의 제재가 풀어질 경우 그것으로 그치는 경우는 별로 없었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가령, 껌의 수입과 판매를 떠나서도 쓰레기 투기나 흡연규제 등 어느 하나의 제재가 느슨해진다면 끝내 연쇄적인 도미노 현상으로 싱가포르 사회를 지탱해 왔던 기존 체제의 전면적인 붕괴로 이어질 가능성이 적지 않습니다. ‘리콴유 이후’의 싱가포르가 당면한 문제는 껌을 씹도록 허용하느냐 하는 단편적인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는 얘기입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특별한 부존자원도 없는 싱가포르가 지금처럼 세계적인 부국으로 발돋움할 수 있게 된 비결이 개인들의 사소한 일탈행위에도 엄격한 원칙을 들이댄 데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1965년 독립 당시 마실 물조차 변변찮아 말레이시아에서 공급받아야 했던 처지에서 지금은 아무 수도꼭지에서나 물을 받아 그대로 마실 수 있게 된 것이 거리에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지 못하도록 다스린 강력한 리더십에 있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앞으로 싱가포르 사회가 어떻게 변화해 갈 것인지는 순전히 싱가포르 국민들이 자율적으로 선택할 문제입니다. 그러나 길거리에 휴지나 담배꽁초를 버릴 경우의 제재가 풀어진다면 현재 싱가포르가 누리고 있는 국제적인 위상을 곧바로 반납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지금 정책에 답답함을 느낀 나머지 완화정책을 선호한다면 결국에는 좁은 길거리에 가래침을 마구 뱉어도 거의 손을 쓰지 못하는 지경에 이를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달리 표현해서, 휴지를 길거리에 버려도 제재를 받지 않는 사회가 바람직하거나 자유로운 사회도 아닙니다. 오히려 법질서를 지킨다고 하면서도 지도층부터 법규를 제멋대로 무시하는 사회가 문제입니다. 사회 질서가 그런 식으로 망가진 다음 다시 리콴유의 리더십을 갈망한다 해도 그때는 이미 버스가 지나간 다음이겠지요. 싱가포르에서 껌 씹는 문제를 포함해 벌금정책이 어떻게 논의될 것인지에 관심이 쏠리는 이유입니다.
필자소개
허영섭
이데일리 논설실장. 한경대학교 지식재산연구원 겸임교수. 전경련 근무. 경향신문과 한국일보에서 논설위원 역임. ‘일본, 조선총독부를 세우다’, ‘대만, 어디에 있는가’ 등의 저서가 있다.
박대문의 야생초사랑
노루귀 (미나리아재비과) Hepatica asiatica Nakai
해마다 봄이 시작되면 겨우내 굶주림에 눈 고팠던 보고 싶은 들꽃들! 이른 봄 야생화가 눈에 어른거립니다. 올해도 어김없이 피어나려나? 혹여 야속한 자의 손을 타서 없어지지 않았나? 초조함과 궁금증에 못 이겨 꽃 피는 시기 맞춰 아니 가고 못 배기게 되었으니 꽃님이 짝사랑이 보통을 넘었나 싶습니다.
박대문
환경부에서 공직생활을 하는 동안 과장, 국장, 청와대 환경비서관을 역임했다.우리꽃 자생지 탐사와 사진 촬영을 취미로 삼고 있으며,시집 『꽃벌판 저 너머로』, 『꽃 사진 한 장』, 『꽃 따라 구름 따라』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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