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D 프린팅은 빛 좋은 개살구 인가?

'예측할 수 없는 미래'가 올 것인가
아직은 걸음마 수준 과도한 환상은 곤란

출처 et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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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D 프린팅 메이커스 페스티벌'이 열린 지난 3월 17일 국회 의원회관 2층 로비. 


'3D 프린팅, 더 이상 예측할 수 없는 미래가 온다'라는 거창한 제목과는 달리 행사장은 한산했다. 그 부조화가 '시작은 미약하나 그 끝은 창대하리라!'는 성경 구절을 떠올리게 했다.


정말 예측할 수 없는 미래가 오고 있는 것인지 확인하기 위해 3D 프린터로 장난감을 만드는 한 업체의 부스로 향했다. 업체에서 가져다 놓은 3D 프린터 홀로 물건을 '출력'하고 있었다. 프린터의 노즐이 앞뒤로 움직일 때마다 플라스틱 재료가 한 층씩 쌓여 갔다. 이렇게 쌓다 보면 완성품 하나가 나온다.

아직까진 인형, 피규어 등 흥미 위주 상품
국산 기술로 3D 프린터를 만든다는 업체에 제품 하나당 완성 시간을 물었다. 업체 직원은 "보통 3~4cm 정도의 높이를 찍어내는 데 1시간 정도 걸린다"고 말했다.

또 다른 부스에선 30cm 정도 높이의 신혼부부 인형을 찍어내고 있었다. 이 부스는 부부뿐만 아니라 프란치스코 교황, 박근혜 대통령 등 유명인의 반신상도 만들고 있었다.

부스를 지키던 고인수 셰에라자드웍스 이사는 "보통 3D 프린터 제품은 단색밖에 표현을 못하기 때문에 일단 하얀색 재료로 출력한 뒤 수작업으로 채색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옆에 있는 작은 인형들을 보여주며 "채색까지 해주는 기계도 있지만 가격도 비쌀 뿐더러, 수작업으로 마무리하는 것과 품질 차이가 많이 난다"고 말했다. 고 이사 말대로 색이 입혀져 나오는 제품은 단색 제품에 비해 이목구비가 뚜렷하지 않았다.

장난감, 인형, 전등, 쿠키 등 3D 프린팅으로 만들어낸 제품들은 다양했다. 기계가 저절로 물건을 만든다는 사실은 신기했지만, 굳이 저런 제품들을 3D 프린팅으로 만들어야 할까라는 의구심은 가시지 않았다.

3D 프린팅은 예측할 수 없는 미래를 만들어낼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는 '차세대 혁신기술'이다. 하지만 당장의 3D 프린터만 보면 그런 미래가 쉽게 그려지지 않았다.

페스티벌에 참여했던 한 학계 관계자는 "예상대로 피규어, 인형 등 흥미 위주의 상품이 많았다. 다른 3D 프린팅 관련 행사에서 본 것과 별 차이가 없다. 일시적인 흥미를 끌 순 있을지 몰라도 꾸준히 이용하고 싶다는 생각을 이끌어내긴 어려워 보인다"는 평을 내렸다. 전문가들은 3D 프린팅의 '가능성'과 '현실'은 다르게 봐야 한다고 말한다. 

3D 프린팅이 '3차 산업혁명'을 가져올 가능성이 있는 기술이긴 하지만, 아직은 걸음마 수준이라는 뜻이다. 3D 프린팅의 혁신성은 무엇보다 프로슈머(생산자이면서 동시에 소비자)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점에 있다. 예를 들어 3D 프린팅이 보편화된 시대의 자동차산업을 생각해 보자. 지금의 소비자들은 자동차 기업이 만든 몇 가지 모델 중에서 선택할 권리밖에 없다. 

그러나 3D 프린팅이 보편화된 시대의 소비자라면, 기존의 자동차 디자인을 본인이 원하는 형태로 얼마든지 바꿀 수가 있다. 또한 자동차 매장까지 갈 필요도 없이, 본인이 원하는 위치에서 직접 차를 '출력'할 수도 있다. 미국에선 벌써 이런 시도가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지난해 9월 미국의 한 업체는 세계 최초로 전기자동차 스트라티를 3D 프린터로 만들어냈다. 차체와 바퀴 등을 출력하는 데 44시간이 소요됐으며, 이후 조립 등의 과정을 거쳐 대중에게 공개됐다. 스트라티의 차체를 자세히 보면 3D 프린터로 찍은 흔적이 지층이 쌓인 듯한 무늬로 남아 있다. 전문가들은 현재 기술력으로도 카센터에서 수리용 부품뿐만 아니라 차체를 3D 프린터로 뽑아내는 일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상상하기 힘든 디자인으로 제조 혁신"
주승환 부산대 연구교수는 "3D 프린팅이 일반화되면 물건을 사는 게 아니라 디지털화된 디자인을 구매한다. 좀 더 시간이 지나면 우리가 지금 워드프로세서를 자유롭게 사용하듯 디자인 소프트웨어를 쉽게 사용할 날이 올 것이다. 

사람들의 취향이 다양해지면 질수록 다품종 소량생산이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최성권 한국폴리텍2 산업디자인과 교수도 "예를 들면 여기 스피커가 있다. 우리가 보기에 스피커처럼 생겼다. 수십년간 본 모양은 저것이 전부니까. 앞으로 3D 프린팅에서는 일반 금형시스템에서 만들지 못하는 제조 혁신이 일어난다. 

상상하기 힘든 디자인이 주변에 나오기 시작할 것"이라고 말했다. 수치로만 봤을 때 3D 프린팅은 분명 떠오르는 시장이다. 미래창조과학부 자료에 의하면, 2012년 기준으로 전 세계의 3D 프린팅 관련 시장의 규모는 약 22억 달러(약 2조4778억원)다. 또한 향후 10년간 연평균 10% 이상 성장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미래 먹거리' 차원에서 뛰어들 여지가 많은 시장이라 할 수 있다.

관련 기술도 속속 진화 중이다. 3D 프린터의 재료로 플라스틱만 쓰였지만 최근 들어 금속, 도자기 등 더욱 단단한 재료를 사용할 수 있는 방향으로 기술이 발전하고 있다. 의료, 식품뿐만 아니라 집까지 만들어내는 단계로 접어들고 있다.

미국 남캘리포니아대학은 2010년쯤 3D 프린터를 이용해 시멘트 잉크로 건물을 찍어내는 등고선 건축술(contour crafting)을 개발했다고 발표했다. 이 기술이 실생활에 적용될 경우 싼 값에 주택을 공급할 수 있게 된다. 지난해 4월에는 중국의 윈선사가 이 기술을 이용해 하루 만에 2~5층짜리 주택 10채를 완성해 화제가 됐다. 주택 1채당 제작비는 약 5000달러였다. 아직은 실제 사람이 거주할 만큼 튼튼한 건물은 아니지만 가능성은 충분히 보인 것이다. 3D 프린터 한 대로 의식주를 모두 해결할 수 있는 길이 열리고 있는 것이다. 그 외에도 의료, 국방 등 여러 가지 산업 현장에서 3D 프린팅 기술은 '가능성'을 보이고 있다.

한국 시장은 초보단계, 기술수준도 부족
그러나 한국의 3D 프린팅 시장은 아직 갓난아기 수준이다. 미래부의 자료에 따르면, 2014년 기준 한국의 3D 프린팅 시장 규모는 약 760억원 수준이다. 특히 하드웨어(프린터)의 국내업체 시장 점유율은 10%에 불과하며, 주류인 분말 방식(SLS)의 기술 수준이 많이 부족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최성권 한국폴리텍2 교수는 "모든 산업이 마찬가지지만 생태계가 만들어지지 않으면 지속될 수 없다. 이제 막 생태계가 만들어지는 단계"라고 말했다. 정부도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에서 전략 모델로 2025년까지 3D 프린팅 로드맵을 만들고 있고, 미래창조과학부는 3D 프린팅 관련 소프트웨어 개발과 기술을 전파하는 강사들 양성에 나설 계획이다. 또한 미래부는 2020년까지 최소 5개의 3D 프린팅 글로벌 선도기업을 양성하고, 1.7%에 불과한 시장점유율을 15%까지 끌어올리겠다는 방침을 정했다. 

전국 각지에 있는 창조경제혁신센터를 통해 3D 프린팅 기술을 보급할 계획도 있다. 최 교수는 "국가 차원의 밑그림은 긍정적인 방향으로 그려졌다"고 평가했다. 주승환 교수도 3D 프린팅 대중화는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하지만 아직 낮은 기술 수준에 처해 있는 3D 프린팅에 대한 과도한 환상을 심어주는 방식은 되지 않아야 한다고 선을 그었다. 

그는 "2D 프린터에 비유하자면 지금의 3D 프린터는 도트 프린터 수준이다. 지금 3D 프린팅 제품에 만족하지 못하는 것은 레이저 프린터가 나오기 전까지 2D 프린터가 속도도 느리고, 출력물의 품질이 낮았던 것과 마찬가지"라며, "3D 프린팅 기술이 어떤 계기로 질적인 향상을 하게 되고, 엔지니어링(공학)에 대한 이해도가 있는 제조업자가 많아지면 자연스레 더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주 교수는 정부가 내세우는 것에 비해서 실제 3D 프린팅 기술 개발에 인색하다고 아쉬워했다. "아이폰을 세상에 내놓은 스티브 잡스와 같은 사람이 갑자기 나타나 순식간에 세상을 바꿔놓을 수 있다. 그런데 우리 정부의 순수 3D 프린팅 기술개발 예산은 40억원 정도만 잡혀 있다. 향후 100년간 후손들의 먹거리를 만들 수 있을지는 앞으로 몇년이 정말 중요하다."

3D 프린팅 Q&A
3D 프린팅은 아직 미지의 기술이다. 3D 프린팅에 대해 '무한한 가능성이 있는 첨단기술' 정도의 막연한 인식이 퍼져 있지만 실제로 3D 프린터로 제품이 만들어지는 것을 본 사람은 많아야 5만명 내외일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3D 프린팅에 대한 궁금증을 Q&A로 풀어본다.

Q 3D 프린팅은 언제부터 시작됐을까.
최근 몇 년 사이 3D 프린팅이 각광받은 건 사실이다. 그러나 층층이 재료를 쌓아 3차원 물건을 만든다는 발상은 이미 34년 전에 시작됐다. 1981년 일본 나고야현 산업연구소의 고다마 히데오가 최초의 3D 프린팅 방식을 고안했다. 하지만 특허를 출원하진 못했다. 

3D 프린팅 기술을 처음 특허출원한 사람은 미국의 엔지니어 척 헐이다. 1986년 광경화성 액상수지 방식(SLA)으로 그가 만든 회사가 현재까지 3D 프린팅 시장을 주도하는 3D 시스템즈다. 개인용으로 많이 쓰이는 압출적층 방식(FDM)의 3D 프린터는 1990년 스트라타시스 사가 처음 상용화했다. 

30년도 넘은 기술이 최근 갑자기 주목받게 된 것은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공로가 크다. 오바마 대통령은 2013년 신년 연설에서 3D 프린팅 산업을 '제3의 산업혁명'으로 치켜세우며, 3D 프린팅 산업에 대한 집중투자를 통해 미국 제조업을 되살리겠다는 의지를 밝혔는데, 이를 계기로 3D 프린팅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또 한 가지는 SLA, FDM 등 3D 프린팅 관련 주요 기술의 특허가 2004년부터 2019년까지 줄줄이 만료된다는 점이다. 더 이상 비싼 로열티를 지불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개인이나 중소기업도 비교적 적은 비용으로 3D 프린터를 만들 수 있게 됐다. 이 과정에서 새로운 기술 혁신도 일어나고 있다.

Q 2D 프린터처럼 집집마다 보급될 가능성이 있나.
통계청에 따르면, 다섯 집 중 한 집이 문서 인쇄용 2D 프린터를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현 시점에서 개인이 3D 프린터를 쓸 여지는 크지 않다고 보고 있다. 일단 가격이 문제다. 개인용 3D 프린터의 경우 기곗값이 100만~500만원 수준이다. 재룟값도 ㎏당 수만~수십만원에 달한다. 인쇄 속도도 느리며, 중간에 오류가 날 경우 재료를 재활용하기도 어렵다. 

프린터 사용 진입장벽도 높은 편이다. 3D 프린터를 가진 개인이 스스로 3D 디자인을 하거나, 다른 사람이 만든 디자인 데이터를 가져와서 인쇄해야 한다. 그러나 전문 지식이 없는 개인이 디자인 프로그램을 익히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한국에는 디지털 데이터를 거래하는 시장도 형성되어 있지 않다. 

전철규 3D프린팅코리아 발행인은 "3D 프린팅은 진입장벽이 제법 높기 때문에 과거 개인용 컴퓨터 보급처럼 되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어린아이들에게 호기심과 재미를 줄 수 있다면 그들이 성인이 될 땐 상황이 달라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디지털 데이터 거래시장이 활성화되고 기계와 재룟값이 좀 더 낮아진다면 충분히 대중화의 가능성도 있다고 예상한다.

Q 3D 프린터가 보급되면 공장이 없어질까.
몇몇 전문가들은 전 세계 곳곳에 3D 프린터가 깔리면 사람들이 굳이 대량생산된 제품을 구매하지 않아도 되고, 결국 3D 프린팅이 제조업을 대체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영국의 '3D 허브즈'는 전 세계 1만3000여대의 개인용 3D 프린터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디자인 데이터만 갖고 있다면, 자신과 가까운 3D 프린터 소유자에게 돈을 지불하고 인쇄를 부탁할 수 있다. 최성권 한국폴리텍2 교수는 "지금은 다른 나라에서 물건을 만들고 싶어도 생산설비를 다 갖춰야 하는 등 비용이 많이 든다. 하지만 3D 프린터 네트워크가 보편화되면 설비를 갖출 필요 없이 해당 지역의 3D 프린터를 통해 물건을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최 교수는 "그래도 많은 학자들은 3D 프린팅이 기존 생산체계를 완전히 대체하긴 어려울 것이라고 본다. 우리 세대가 살아 있는 동안에 많으면 25% 정도 비중을 차지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덧붙였다.

Q 3D 프린팅을 넘어섰다는 4D 프린팅은 어떤 기술인가.
올해 초부터 3D 프린팅이 이미 4D 프린팅으로 진화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다. 4D 프린팅은 인쇄한 물건이 스스로를 특정한 모양으로 변형시킨다는 게 차이점이다. 스스로 조립해 완성품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하지만 4D 프린터가 '4차원 물건'을 만드는 건 아니다. 

생산 기계가 3D 프린터라는 점은 마찬가지며, 형상기억합금과 같은 '스마트 재료'를 쓴다는 것만 다르다. 최성권 교수는 "기존 3D 프린터로 뽑은 물건을 완성품으로 만들려면 조립, 채색 등 후처리 과정이 필요하다. 4D 프린팅으로 이름 붙여진 기술은 후처리가 어려운 우주 공간이나 미세공정에서 이용할 수 있는 것으로, 3D 프린팅과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하긴 어렵다"고 말했다.

Q 3D 프린팅을 접하고 싶으면 어떻게 해야 하나.
일반인이 3D 프린팅을 접하고 싶다면 전국의 무한상상실이나 창조경제센터를 찾으면 된다. 이들 기관에서 3D 프린팅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는데, 프로그램에 따라 3D 프린팅 실습을 하는 경우도 있다. 또한 전국의 무한상상실에는 일반인들이 이용할 수 있는 3D 프린터가 비치되어 있다. 

3월 23일 현재 전국적으로 37대의 3D 프린터가 운용되고 있다. 장비 사용 자체는 무료이나, 재료비가 필요한 경우도 있다. 사용 하루 전 예약제로 운영된다. 3D 프린팅 관련 기업에서 3D 프린팅 체험관을 운영하기도 한다.
경향신문 백철 기자 pudmake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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