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하지 못한 한국인들 [임철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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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하지 못한 한국인들

2015.03.20


1년 내내 무슨 무슨 날이 참 많지만 오늘 3월 20일은 세계 참새의 날, 프랑스어의 날, 세계 행복의 날(International Day of Happiness) 세 가지가 겹친 날입니다. 참새의 날은 참새를 보호하자는 거고, 프랑스어의 날은 유엔의 6대 공용어 중 하나인 프랑스어를 보존하고 가꾸자는 날입니다. 중국어의 날은 곡우인 4월 20일, 영어의 날은 4월 23일, 러시아어의 날은 6월 6일, 스페인어의 날은 10월 12일, 아랍어의 날은 12월 18일입니다.   

세계 행복의 날은 2012년 6월 28일 유엔 총회를 통해 선포됐습니다. 왜 이날을 골랐는지 확인하기 어려운데 행복의 중요성이야 모르는 사람이 없을 테고, 오늘 하루만 행복하자는 것도 당연히 아닐 것입니다. 참새의 날이나 프랑스어의 날과 달리 대체 뭘 어떻게 하자는 건지도 좀 막연합니다.  

그런 터에 유엔이 행복의 날을 맞아 ‘행복노래 리스트’를 발표한다고 밝혔습니다.
전 세계 음악팬이 참여하고 유명 음악인들이 선정하는 방식입니다. 희망자들은 장르에 관계없이 자신을 행복하게 해주는 음악을 ‘해피사운즈라이크’라는 해시 태그(#HappySoundsLike)를 달아 소셜미디어에 올리면 됩니다.  

그렇게 올린 음악을 전문가들이 평가해 행복노래 리스트를 선정합니다. 영국의 싱어송라이터 에드 시런과 제임스 블런트, 미국의 존 레전드, 프랑스 DJ 다비드 게타, 포르투갈의 팝 스타 다비드 카헤이라 등이 곡을 평가하는 큐레이터들이랍니다. 선정된 노래는 스트리밍 서비스(Streaming service) 믹스라디오(MixRadio)를 통해 공개됩니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미국의 음악 전문 채널 MTV 스타일로 만든 영상을 통해 이 계획을 발표하면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도 좋아한다는 스티비 원더의 ‘사인드, 실드, 델리버드(Signed, Sealed, Delivered I'm Yours)’에 한 표를 던졌습니다. “나는 사인되고 포장돼 당신에게 배달됐어요”라는 의미로, 알기 쉽게 말해 “너에게 나를 보낸다”는 노래입니다.  세계적 유명인사 두 명으로부터 표를 얻은 스티비 원더는 시각장애를 딛고 독자적 음악 세계를 구축한 가수입니다. 한 차례 이혼 경력이 있지만, 그의 노래는 “고통받고 있는 전 세계 수백만 명과의 연대를 보여주기 위해 음악이라는 만국의 언어를 사용하겠다”는 유엔의 캠페인 취지에 잘 맞는 것 같습니다.   

유엔의 새로운 기획을 보면서 나에게 행복을 느끼게 해주는 노래가 뭘까 생각해 봅니다. 해시 태그인지 머시긴지 어려워서 잘 모르겠고, 큐레이터들의 이름도 생소하기만 하니 내가 좋아하는 곡을 소셜 미디어에 올릴 일은 없습니다. 그런 열의와 극성과는 거리가 먼 사람입니다. 나와 성향이 비슷한 내 또래의 사람들이 좋아하는 뽕짝이 ‘행복노래’에 낄 여지도 거의 없어 보입니다.     

중요한 것은 행복 자체에 대한 생각입니다. 한국인들은 왜 행복하지 않은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유엔이 지난해 세계 행복의 날을 맞아 156개국을 대상으로 조사한 국민행복지수(GNH)에서 한국은 41위였습니다. GDP(국내총생산) 13위, 1인당 국민소득 29위라는 다른 부문의 등위와 대비되는 지수입니다. 알다시피 우리나라는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중에서 자살률 1위인 불행한 나라입니다.   

행복지수 1위인 덴마크는 대학까지의 교육비와 병원비가 무료이고 월급에 육박하는 실업급여를 2년간 지급할 만큼 사회 안전망이 세계 최고 수준입니다. 물론 그런 게 다는 아닙니다. 자기 인생을 어떻게 살지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환경을 국가와 사회가 보장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세금이 높아 빈부격차가 적고, 직업에 관계없이 서로 존중하는 문화가 정착돼 있습니다. 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 세금이 허투루 쓰이지 않는다는 믿음이 있으니 복지가 탄탄합니다(이상 오연호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 부분 인용). 

우리가 덴마크처럼 될 수는 없습니다. 세금과 복지논쟁으로 싸우다 세월이 다 갈 것입니다. 가난하지만 행복한 나라 부탄으로 눈을 돌려봅니다. 인구 72만의 소국 부탄은 2011년 유럽 신경제재단(NEF)이 발표한 국가행복조사에서 143개국 중 1위였습니다. 부탄 국민 100명 중 97명이 “나는 행복하다”고 답했습니다. 

부탄은 유엔보다 40년이나 전인 1972년에 GNH를 만들어 행복 중심의 경제 발전을 추구해왔습니다. 경제 문화 환경 정부 등 4개 항목과 심리적 복지, 건강, 문화, 시간 사용 등 9개 영역을 각각 72개 지표에 따라 평가해 수치화하는 행복 측정 공식입니다. GDP 대신 GNH를 국가 발전의 잣대로 삼은 부탄은 총리를 위원장으로 각 부처 장관이 참여하는 국민총행복위원회를 만들어 운영해왔습니다. 72개였던 지표가 지금은 33개로 줄었다는데, "당신은 정부를 믿습니까”라는 설문은 한 번도 빠진 적이 없습니다.    

지난해 내한한 지그메 틴레이 전 부탄 총리는 한국은 정말 놀라운 국가이지만 한국인들은 너무 치열하게 살다가 몸과 마음이 피폐해진 상태라고 진단했습니다. 남들의 시선과 평가를 의식하다 보니 내면적 만족감을 포기하는 일이 많고 수면도 부족한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그가 권하는 것은 충분한 수면과 명상입니다. 부탄 GNH의 평가요소에는 하루에 얼마나 명상하는지가 포함돼 있다고 합니다. 이 명상은 종교적 행위가 아니라 편안히 앉아 자신의 삶을 생각하고 점검하는 행복 추구행위입니다.   

이제 한국인들은 많은 것을 이루었으니 마음을 챙기라는 게 그의 권고입니다. 무엇보다 잠을 많이 자고 직장에만 두었던 관심을 가족과 친구에게로 돌리라는 것입니다. 일은 좀 줄이고 자신만을 위한 시간을 늘려 다른 사람들과의 조화를 추구하다 보면 사회가 변할 것이라는 조언이었습니다. 

허핑턴포스트 미디어그룹 회장인 아리아나 허핑턴도 ‘제 3의 성공’에서 비슷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특히 디지털, 휴대폰으로부터의 일탈이나 로그오프를 권한 허핑턴도 수면과 명상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제 3의 성공은 돈이나 권력이 아니라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진실되고 충만한 삶을 사는 것입니다. 스마트폰을 끄자 가족과 친구가 보이기 시작했고 자기 자신의 삶에 더 충실해졌다는 게 허핑턴의 경험담입니다.   

우리는 왜 행복하지 않은지, 지금 이 상태에서 어떻게 하면 행복을 지향할 수 있는지를 생각하는 게 ‘세계 행복의 날’에 해야 할 일일 것입니다. 행복노래에 어떤 게 선정되든 우리나라 노래가 있든 없든 그런 것 잊어버리고 오늘부터 충분히 잠을 자는 게 좋겠습니다. 논어에 수기안인(修己安人)이라는 말이 있던데 나의 수양과 행복을 통해 주변 사람들을 편안하고 행복하게 해 준다는 말입니다. 그러려면 내가 먼저 편안하고 행복해야 합니다. 내 행복을 주변에 전파하고 나의 성공을 사람들과 나누는 것이 중요합니다.

필자소개

임철순

1974~2012년 한국일보 근무. 문화부장 사회부장 편집국장 주필 및 이사대우 논설고문을 역임했다. 
한국기자상, 삼성언론상, 위암 장지연상 수상. 
현재 이투데이 주필 겸 미래설계연구원장, 자유칼럼그룹 공동대표, 한국언론문화포럼 회장, 
한국1인가구연합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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