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의 자격과 교육의 역할 [김홍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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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의 자격과  교육의 역할

2015.03.19


얼마 전 교육부가 중고등학교의 상업 과목을 없애기로 했다는 짤막한 기사를 보고 적잖이 놀랐습니다. 우리가 먹고 입고 잠자는 생활 일상은 상행위를 벗어나 이루어질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그런 발상을 했는지, 그것도 교과과정에서 아예 삭제하겠다는 것인지, 아니면 교육부 어느 간부의 ‘개인적인’ 의견인지 알 길도 없습니다.

다만 외국에서 학교에 다닌 적이 있는 아들과 손자 이야기를 들어 보면 우리나라 교육 시스템과 엄청난 차이가 있음을 알게 됩니다. 입시 위주의 주입식 교육이 아닌 체력과 인성교육, 삶에 필요한 생활교육,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 사회교육 등입니다. 직접 경험하거나 들어서 아는 사람도 많겠지만 새겨들을 몇 가지만 소개할까 합니다.

# 18년 전 1997년 봄, 고등학교 1학년짜리 둘째 아들을 오스트레일리아 멜버른으로 유학 보냈습니다. 속속 외국으로 나가는 친구들 소식과 멜보른 출신 원어민 영어 교사의 권유로 몸살을 앓는 아들을 여러 번 말렸지만 주저앉힐 수가 없었습니다. 물론 당시 서울에서의 학비, 과외비, 생활비보다 그곳의 모든 비용이 더 싸다는 계산 끝에 내린 결론이었습니다.

그해 겨울, 방학(그곳은 여름방학)을 맞아 1년 만에 귀국한 아들이 털어놓은 객지생활의 소회는 안쓰러운 점도 한두 가지가 아니었지만, 그곳 교육 과정은 무릎을 치게 만들었습니다. 고등학교 1학년까지 10학년(초등 6년+중등 3년+고등 1년)을 수료하면 시민으로서의 자격을 인정하는 제도입니다. 

우선 고1이 되면 학생들은 은행에서 예금과 대출 과정 등 금융거래 실습과 부동산 매매, 임대, 전월세 등에 관한 요령을 부동산 개발 회사에서 직접 익히도록 합니다. 그리고 스스로 이력서를 작성해 기업에서 한 달가량 인턴 과정의 실습을 하고, 턱시도와 이브닝드레스를 입혀 남녀 학생이 파티를 열어 춤도 추고 테이블 매너도 배우도록 합니다.

이처럼 사회생활에 필요한 몇 가지 실습 교육이 끝나는 고1 학기말에 학교가 인정해 주는 것이 시민 자격입니다. 이전에 익힌 가감승제, 구구단 등 셈법과 국어(영어) 역사 등 기본 지식을 토대로 사회생활을 하는 데 필수적인 생활교육입니다. 영국의 정치범, 사상범들을 대거 이주시킨 나라인데도 교육 시스템은 놀랍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지난달 맏손자가 멜버른의 초등학교에 들어갔습니다. 놀라운 것은 바로 2학년에 편입한 사실입니다. 태어나 줄곧 스위스에서 살아 영어를 전혀 모르고, 작년 그곳 초등학교에 두 달 남짓 다닌 것이 고작인데도. 아이 엄마가 걱정을 했지만 멜버른 학교의 교장과 담임교사들(한 반 학생 20명에 담임 3명)의 강권으로 학교생활 첫해에 월반을 한 셈입니다.

교장과 담임교사들의 주장은 교과과정을 익히는 것보다 아이가 또래들과 비슷한 상황(나이, 키 등 발육 상태)에서 어울려야 즐겁게 뛰어놀고, 적응도 더 잘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다행히 손자는 매일  교복 차림에 도시락을 싸 들고 혼자 등교해 친구도 사귀고, 놀이도 즐기며 재미있어 한다고 합니다. 성적보다 건강한 신체, 건전한 정신을 중시하는 인성교육인 것 같습니다.

손자가 스위스 학교에 다닐 때는 절대 부모가 데려다 주거나 데려오지 못하도록 했다고 합니다. 아이가 20여 분이나 혼자 걸어 다니다 혹시 유괴라도 당하면 어쩌나 걱정되어 엄마가 등굣길 반쯤을 바래다주다가 들켜 경고를 받기도 했습니다. 스위스는 ‘안전한 나라’라는 정부의 자부심과 지신감이 코흘리개 교육 때부터 적용되는 본보기입니다.

# 오래전 캐나다 토론토의 은행 지점에 몇 해 근무한 적이 있는 친구는 상당히 감동 받은 사건이 있었다고 털어놓았습니다. 딸아이가 다니던 초등학교에서 한쪽 팔이 없는 장애 어린이가 친구들한테 놀림을 받고 울음을 터뜨린 일이 벌어졌습니다. 우리 같으면 우는 아이를 달래고 악동들을 나무라거나, 쉬쉬할 정도이지만 그 학교의 징벌은 달랐습니다.

교장이 직접 전교생을 모아 놓고 이튿날 전원 보조대로 한쪽 팔을 목에 걸고 등교하도록 엄명을 내렸습니다. 만 하루를 한 팔만으로 가방 메고, 밥 먹고, 운동도 하도록 한 것입니다. 철없는 몇몇 어린이들의 잘못이지만 전교생 모두가 장애 어린이의 불편을 체험하고, 아픔을 공유하게 한 것입니다. 남에게 피해를 주어서는 안 된다는 사회교육입니다. 

필자소개

김홍묵

경북고, 서울대 사회학과 졸업.  동아일보 기자, 대구방송 이사로 24년간 언론계종사.  ㈜청구상무, 서울시 사회복지협의회 사무총장, ㈜화진 전무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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