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같지 않다 [김창식]

www.freecolumn.co.kr

봄 같지 않다

2015.03.18

몇 십 년 만의 꽃샘추위도 물러가고 일교차가 있지만 뺨을 어르는 한낮의 햇살이 살갑습니다. 하지만 세상 사람들이 마냥 봄을 반기는 것은 아닌 듯합니다. 봄을 맞는 심사를 부정적으로 형용하는 말 중 가장 유명한 말은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봄이 왔지만 봄 같지 않다)’일 것이에요. 이 한자성어는 전한(前漢) 말기 화친 혼인으로 흉노족의 선우(부족장)에게 시집 간 궁녀 왕소군(王昭君, 생몰년도 불명)의 서글픈 심사를 헤아린 후인(後人) 동방규(東方叫)의 시에서 유래한 것입니다. 왕소군은 서시, 초선, 양귀비와 함께 중국 역사 상 4대 미인으로 꼽히는 아이돌 스타입니다(달기는 메달 권 밖).

지난달 상처해 관심을 모으기도 했던 은퇴한 노 정객 JP(김종필 전 총리) 역시 같은 구절을 인용한 적이 있습니다. 1980년 민주화에 힘입은 ‘서울의 봄’ 때 신군부에 의해 다른 2김(YS, DJ)과 함께 ‘부패 정치인’으로 몰려 퇴출된 후 소회를 말하는 자리에서였죠. JP가 누구인가요? 5 ·16 이후 대한민국의 산업화에 기여하고 직선제 개헌과 민주화 이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전 대통령 등 이질적 권력들과 차례로 손을 잡았으나 그 자신은 최고 권좌에 오르지 못한 비운의 정치가이자 ‘현대사의 연출가’가 아니겠습니까.

왕소군이나 JP는 아닐지언정 봄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 주위에도 많을 것입니다. 환자, 실직자, 장애인, 성적 소수자, 은퇴를 앞둔 가장이나 농어촌 주민, 도시 영세민, 소외 이웃, 신용불량자 같은 사회적 약자들을 떠올릴 수 있겠지요. 대학 졸업반이거나 졸업을 하고도 직장이라든가 마땅한 할 일을 찾지 못한 젊은이들, 이른바 ‘취준생(취업준비생)’도 그런 범주에 속할 거예요. 얼마 전 한 신문에서 ‘취준생’들의 자괴감과 열패감을 스토리텔링 형식으로 다룬 르포 기사를 보았습니다. 

‘나(기사의 주인공)’는 노량진 부근 창문 없는 한 칸 고시텔에 기거하며 식사는 컵밥, 라면 같은 인스턴트식품으로 때웁니다. 토익문제집과 한국사 교재, 노트북과 충전기, 연습장과 필통을 챙겨 일찍 도서관으로 향합니다. 이른 새벽부터 경쟁이 시작됩니다. 자칫 늦기라도 하면 빈자리를 찾을 수 없거든요. 종일 책을 뒤적이고 ‘인강(인터넷 강의)’으로 일과를 마감합니다. 주말에는 편의점 등에서 아르바이트를 합니다. ‘취준생’에게 아르바이트가 ‘선택과목’이 아닌 ‘전공필수’가 된 지는 사뭇 오래됐답니다.

스스로를 ‘취업 루저’라고 칭하며 열패감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젊은이의 고통이 남의 일 같지가 않은 것은, 지방대학에 다니는 아이(둘째)가 있어서 동병상련(?)의 정이 전해온 때문인지도 모르겠네요. 누구의 잘못도 아니련만, 세상의 시선과 사회적 편견에 노출된 지방대학 아이여서 여간 마음이 쓰이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 해도 한때 '한가락 했던(공부 말고)' 아이인지라 주말엔 친구 따라 ‘강남’도 다녀오곤 하는 모양이에요. 며칠 전 아이가 말을 걸어오더군요. 나는 내심 긴장했죠.

“아빠, 강남에 가면 말야, 외제 차가 그냥 택시야.”
“그만큼 흔하단 말이겠지.”
“근데 비까번쩍한 초고층 건물도 즐비해.”
“당연한 거 아냐? 강남이니까. 그게 어때서?”
“이런 거 생각해 봤어? 건물마다 주인이 있다는 거.”

필자소개

김창식

경복고, 외국어대 독어과 졸업. KAL 프랑크푸르트 지점장 역임.
한국수필(2008, 수필) 신인상 . 시와문화(2011, 문화평론) 신인상.

박대문의 야생초사랑

앉은부채 (천남성과) Symplocarpus renifoliu

한겨울 추위가 막바지 용을 쓰는 2월 말에서 3월 초 사이에 피는 야생화! 겨우내 꽃소식에 안달이 난 꽃쟁이들이 애타게 갈망하며 기다리는 꽃 중 하나인 앉은부채. 겨울 잔설이 채 녹기도 전에 주변의 낙엽 색깔과 비슷한 자줏빛 얼룩무늬가 박힌 연한 자갈색 꽃대가 꽁꽁 얼어붙은 땅을 뚫고 쏘옥 올라와 강하고 질긴 생명의 힘을 보여주는 꽃입니다.

필자소개

박대문

환경부에서 공직생활을 하는 동안 과장, 국장, 청와대 환경비서관을 역임했다.
우리꽃 자생지 탐사와 사진 촬영을 취미로 삼고 있으며,
시집 『꽃벌판 저 너머로』, 『꽃 사진 한 장』, 『꽃 따라 구름 따라』가 있다.

Copyright ⓒ 2006 자유칼럼그룹.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freecolumn.co.kr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