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ww.freecolumn.co.kr
"글이 어떻게 밥이 되나요?"
2015.03.09
“정말 글만 써서 먹고 사나요?” “그렇습니다.”“ 설마.., 아니겠지요, 아닌 것 같은데요.” “그럼 이 나이에 몸이라도 팔 수 있겠습니까?^^”“아, 그런 말이 아니라.., 신아연씨가 ‘있어’ 보여서요.”“ 에이, 설마요.” 얼마 전 작은 모임 뒤풀이 자리에서 제가 글쟁이라고 하니 어떤 분이 (지금 시대에) 글쓰기가 어떻게 밥벌이가 될 수 있냐며 의아해했습니다. “먹는 것도 나름이겠지만 어쨌든 지금까지 굶어 죽지 않았으니 이 자리에 있지요.” 나의 이어진 대꾸에 “그런 거짓말은 안 하는 사람입니다.”라며 옆에서 거드는 지인의 말에 웃음이 터졌습니다.여하튼 그분은 ‘뭘 좀 아는 사람’임에 틀림없습니다. 우선 작금의 한국 사회에서 글로 먹고 사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을 알고 있고, 그보다 더 잘 아는 것은 신아연이 유명 작가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제깟것이 무슨 글을 얼마나 잘 쓰길래 글을 밥으로 바꾸는 재주가 있으려고.’하며 혼잣말을 했을지도 모릅니다. 차라리 ‘글 밥’ 대신 ‘탁발’을 다닌다고 했더라면 오히려 믿었을 겁니다. 그분의 말씀을 통해 한국과 21년이란 갭을 가지고도 글로 먹고 사는 제 자신에 대해 경탄, 감탄, 찬탄의 ‘자뻑’에 빠짐과 동시에, 글도 하나의 생산물, 제품임에도 여간해선 돈과 바꿀 수 없는, 글을 써서는 정녕 굶게 되는 이상한 사회 구조를 다시금 통탄, 한탄, 지탄하게 됩니다. 낯 뜨거운 ‘야설’을 제하고 우리나라에서 글만 써서 먹고 사는, 소위 전업 작가가 0.001%나 될까요? 지금 제가 그 0.001%에 속한다 쳐도 제 형편이란 것이 겨우 입에 풀칠이나 하는 옹색하기 그지없는 상황이니, 그럼에도 그분이 저를 ‘있게’ 봐 준 것은 황공하기 이를 데 없는 일입니다. 글뿐 아니라 음악, 미술 등 우리 나라 예술 및 문화 현실은 말 그대로 ‘불모의 땅’입니다. 자본의 고물을 덕지덕지 묻혀 옥석 구분 없이 현란하게 상품화시키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전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니까요. 속된 말로 씨가 말랐습니다. 낭중지추, 불세출의 천재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글쟁이, 환쟁이, 음악쟁이, 연극쟁이’ 등이 기본 생활을 할 수 있는, 원한다면 전업의 길을 갈 수 있는 현실적인 직업이 될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적어도 제 한 입 풀칠을 하고, 식솔을 거느리고 있다면 최소 한 달 200만원의 벌이는 될 수 있는 구조 속에서 글이면 글, 그림이면 그림, 음악이면 음악을 할 수 있어야 상식이 통하는 사회라고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고시 폐인’처럼 ‘문학 폐인’이 주변에 더러 있습니다. 한 달에 200만원은 고사하고 몇 년 간 ‘죽어라’ 글을 써서 출판한 결과가 고작 200만~300만원이라고 하더군요. 청춘의 꿈이 삭아진 자리, 되돌아 가기에는 너무 많이 와 버려, 이제는 지친 어깨로 생계를 떠맡은 아내에게 얹혀 사는 비루하고 무능한 ‘구박중년’의 자화상만 남은 것입니다. 글을 쓰는 것이, 그림을 그리고 음악을 하는 것이, 연극 등 기타 예술 활동을 하는 것이 ‘천형’처럼 되어버린 세상입니다. 엄살이 아니라 살자고 태어난 생명이 굶어 죽게 생겼으니 그런 재능, 그런 욕구를 가졌다는 자체가 천벌 받은 것이 아니고 무엇인가요? 지난 2012년 문화 예술인 실태조사에 따르면, 예술인의 66.6%는 예술 창작 활동에 따른 수입이 월평균 100만원 미만이라고 합니다. 메세나(문화예술· 스포츠 등에 대한 원조 및 사회적· 인도적 입장에서 공익사업 등에 지원하는 기업들의 지원 활동을 총칭하는 용어)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봅니다. 사회가 해 줄 수 없다면 이를 대신하여 기꺼이 ‘비빌 언덕’이 되어주고자 하는 귀한 활동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나라는 아직 미미한 수준이지만 그럼에도 ‘나비의 날갯짓’은 꾸준히 계속되고 있습니다. 머지 않아 ‘나비 효과’를 거두게 될 날을 기대해 봅니다. 한국에 다시 돌아온 지난 1년 반 동안 저는 단체는 아니지만 제 글을 후원하는 개인들로부터 명실공히 메세나 혜택을 받았습니다. 그분들은 재정적 지원을 비롯해 글로 먹고 살 수 있도록 이런저런 모양의 밥벌이 토대를 마련해 주셨고, 지금도 한결같이 저의 ‘문운(文運)’을 기원하고 계십니다. 사람은 인정과 사랑을 먹고 사는 존재입니다. 예술가들은 타고난 성정이 여리기에 더욱 그러합니다. 공동체가 그들에게 작으나마 생활 대책 마련의 도움을 준다면 그들은 반드시 은혜에 보답할 것입니다.
필자소개
신아연
이화여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1992년 7월, 호주로 떠났다. 시드니에서 호주동아일보 기자, 호주한국일보 편집국 부국장으로 일하다 2013년 8월, 한국으로 돌아와 자유기고가, 강연자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는 중앙일보, 여성중앙, 과학과 기술 등에 에세이를 연재하며, KBS 라디오에 출연 중이다. 낸 책으로 <심심한 천국 재밌는 지옥> <아버지는 판사 아들은 주방보조>, 공저 <자식으로 산다는 것>이 있고, 2013년 봄에 <글 쓰는 여자, 밥 짓는 여자>를 출간했다. 블로그http://blog.naver.com/shinayoun
Copyright ⓒ 2006 자유칼럼그룹.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freecolum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