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스타일'로 한복 부활을 [신아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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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 스타일'로 한복 부활을

2015.02.23


'눈을 씻고 찾아 본다’는 말처럼 지난 설 연휴 동안 제 시야 안에서 ‘눈을 씻고 봐도’ 겨우 한두  명이었습니다. 한복 입은 사람들 말입니다. 안 입어도 너무 안 입는 거 아닌가요? 21년 만에 한국에 다시 돌아온 이래 추석과 설을 각각 두 번째 맞으면서 ‘우리 옷’은 거의 사라졌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이래도 되는 걸까 하는 위기감과 우려로 마음이 무겁습니다. ‘비싸서 안 입는다, 불편하다’는 이유를 대지만 다 핑계입니다. ‘입성 치레’가 심한 우리나라 사람들이 돈이 없어서 한복을 안 입을 리 없고, 더구나 여자들이 불편을 이유로 멋 부리기를 포기했다는 소리를 동서고금을 통해 일찍이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수요만 있다면야 값의 고하를 막론하고 명품부터 ‘짝퉁’까지 단계별로 입수할 수 있고, 많이 입기만 한다면 값이야 저절로 조정될 것 아닌가요. 한복이 안 비싸다는 게 아니고 안 불편하다는 게 아니라 그것이 외면의 사유라기보다는 변명 같이 들린다는 뜻입니다. 

설에 조카의 아홉 살 아들의 세배를 받았습니다. 지 엄마 어렸을 때 설빔이 고왔던 기억이 나면서 종손이 한복을 ‘못 얻어’ 입은 건 순전히 부모 탓이란 생각을 했습니다. 어렸을 적 기억에도 없는 한복이라면 평생 못 입어 볼지도 모릅니다. 한복이 점차 자취를 감추고 있는 상황에서 장가 들 때라고 입을 수 있다는 보장도 없습니다. 결혼식에서 폐백도 사라지는 추세니까요. 어쩌면 그 아이는 민속박물관에 걸린 것을 감상만 하는 세대가 될지도 모릅니다.     

지난 해 통계청이 무작위 110명을 대상으로 한복에 관한 설문 조사를 한 결과, '한복을 가지고 있다'고 답한 사람은 겨우 13%(14명), 나머지 87%(96명)는 '없다'고 했답니다. 한복이 있는 사람 중에도 설날과 추석 등 명절에 꺼내 입는 사람은 110명 가운데 고작 4명뿐이었다고 하지요. 

전국의 20대 미혼 남녀 175명을 대상으로 한 또 다른 조사에서는 1년에 한 번도 한복을 입지 않는다는 응답이 94%, '최근 5년 사이에 입은 적 없다'는 85%, ‘아예 한복을 입어본 적이 없다’는 대답이 19%나 되었다고 합니다. 한복을 입어 본 적이 있다고 해도 스티커 사진을 찍으려고, 한복 체험 행사장에서, 관련 행사를 위한 아르바이트를 할 때였다니 그런 경우라면 입었다기보다 그저 한번 ‘걸쳐 본’것이라 옹색하고 민망하게 들립니다.    

제가 정기 기고를 하는 월간지 <과학과 기술> 2월호에도 이 주제를 다뤘습니다. 글을 읽은 지인 한 분이 한복을 입지 않는 작금의 사태는 뿌리가 병든 나무와 같이 심각한 일이라고 우려했습니다. 일제 강점기 때 우리말과 우리글 사용을 금하고, 창씨개명을 강요하며, 창경궁에 동물원을 만드는 등 우리의 얼과 민족 문화를 말살한 정책과 맥을 같이 한다는 지적이었습니다. 

‘옷은 곧 정체성’이라는 인식을 일본 제국주의 정권이 간파했기에 식민지 국가 조선의 옷을 여염집 옷걸이에서 끌러내려 기생집에 가져다 놓은 결과, ‘직업 여성의 옷’이라는 ‘성공적 이미지’ 개선 작업을 할 수 있었고 이후 일반 부녀자들이 한복 입기를 꺼리게 되어 정체성의 한 맥을 끊어 놓았다는 것입니다.  

“아닌 게 아니라 안 할 말로다 요즘 한복은 여염집 여자들을 죄다 ‘어우동’처럼 야시시하게 보이도록 만든다. 화려함이 지나치고 변형이 지나쳐서 형태나 색이나 선에서 단아함이나 우아함보다는 어지러운 현란함과 난해함을 풍긴다.   

‘한복진흥센터’라는 단체에서 지난해 전국 10~60대 5,000명 남녀를 대상으로 한복에 대한 전반적인 인식을 조사한 것 중에 길에서 한복 입은 사람을 보면 ‘특수 직업인처럼 보인다’는 응답도 상당수 있었다는 점이 비슷한 생각을 뒷받침하는 게 아닐까. 

한복의 생명은 단아함과 청초함, 그러면서도 화사하고 고운 태에 있다고 생각한다. 울긋불긋, 주렁주렁, 겹쳐부풀림 등으로 과장된 한복의 변신이 ‘유죄’까지는 아니라 해도 좀 심하게 나간다는 느낌이 드는 것은 나만의 ‘까칠함’은 아닐 것이다.” <과학과 기술>에 기고한 내용입니다. 

외교관이었던 그 지인은 의복이 존재를 규정한다고 하면서, 회교권 국가에서 근무할 때 우리에겐 유별나 보이는 그들의 고유 의상에 대해 그 나라 여성들의 인식을 직접 들었다고 합니다. 그것은 곧 자신의 문화적 자부심과 안정감을 반영하는 ‘정체성’이었답니다.  250여 다민족으로 구성된 호주에서도 각 민족의 고유 의상은 정체성의 상징이라는 경험을 통해 그분의 말씀에 공감했습니다. 

하물며 단일 민족임을 자랑 삼는 우리나라에서 점점 더 한복을 안 입는다는 것은 심각한 일입니다. 일제의 잔재를 청산하려는 노력 중에 ‘민족 의상 회복’은 퇴행하고 있다는 점이 매우 안타깝습니다.

본질에 다가가기 위한 방편으로 이미지를 적절히 활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일제가 기생집 옷걸이에 걸어 놓은 한복을 여염집 안방으로 되돌려 놓기 위해 한국의 이른바 '상위 문화'를 주도하는 ‘강남스타일’의 작동이 요청되는 바입니다. 여성 한복부터 시작한다는 전제하에 강남 여자들이 한복을 먼저 좀 입어주길 바랍니다. 한복의 부활을 위해  ‘한복이 요즘 강남에서 뜬다’는 이미지 전략으로 가자는 말씀입니다.

필자소개

신아연

이화여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1992년 7월, 호주로 떠났다. 시드니에서 호주동아일보 기자, 호주한국일보 편집국 부국장으로 일하다 2013년 8월, 한국으로 돌아와 자유기고가, 강연자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는 중앙일보, 여성중앙, 과학과 기술 등에 에세이를 연재하며, KBS 라디오에 출연 중이다.    
낸 책으로 <심심한 천국 재밌는 지옥> <아버지는 판사 아들은 주방보조>, 공저 <자식으로 산다는 것>이 있고, 2013년 봄에 <글 쓰는 여자, 밥 짓는 여자>를 출간했다. 
블로그http://blog.naver.com/shinayoun

박대문의 야생초사랑

가지복수초 (미나리아재비과)

찬바람이 가시기도 전 남녘에서 전해오는 봄꽃소식은 야생의 꽃을 찾는 이들의 마음에 봄불을 지피고 꽃쟁이들은 이른봄부터 설레는 가슴에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은 충동에 봄 앓이를 시작합니다. 올해에는 유달리 입춘이 되기도 전에
꽃소식이 전해지면서 괜스레 마음이 조급해지고 설렘에 들뜹니다.

필자소개

박대문

환경부에서 공직생활을 하는 동안 과장, 국장, 청와대 환경비서관을 역임했다.
우리꽃 자생지 탐사와 사진 촬영을 취미로 삼고 있으며,
시집 『꽃벌판 저 너머로』, 『꽃 사진 한 장』, 『꽃 따라 구름 따라』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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