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사석에서 이런 말을 하는 걸 들었습니다. 문화인들의 모임에 가면 문화부 장관님 오셨다고 하고, 체육단체의 행사에 참석하면 체육부 장관님 오셨다고 반기더랍니다. 그렇다면 관광업계 종사자들은 관광장관님이라고 부를 법도 한데 그런 말은 하지 않더라는군요.
문화와 관광은 그렇다 치고 문화와 체육업무가 한데 잘 어우러지는 일인지는 모르겠습니다. 1994년 말 건설부와 교통부를 합칠 때 ‘화학적 결합’론이 나왔지만, 문화체육관광부의 한 지붕 세 가족은 그런 차원의 결합을 말하는 것도 어울리지 않아 보입니다. 좌우간 장관은 1년 내내 정신이 없을 것 같습니다.
나는 외환위기 직후 신문사의 기구 통폐합에 따라 네 부를 하나로 묶어 부장으로 일한 적이 있습니다. 문화부+과학부+여성부+생활부=문화과학부라는 기구였습니다. 미술 담당 기자가 젊은 작가 아무개의 감성적인 터치와 대담한 붓질에 대해 이야기하면 조금 있다가 가요 담당 기자가 김건모의 히트곡에 관한 기사를 들이밉니다. 의학 담당으로부터 새로운 헬리코박터균 치료법에 대해 설명을 듣느라 머리가 아파 죽겠는데, 과학 담당 기자가 다가와 “줄기세포가 거시기 머시기...” 합니다. 그게 끝이 아닙니다. 이 가을 여성복 패션의 경향은 뭐가 어떻고, 이번 주 여행 면의 행선지는 어딘데 어떻게 꾸미고... 매일 매일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습니다.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의 일이 쉽지 않으리라고 생각하는 것은 어느 것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게 없는데도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챙기지 못한 경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지금 문화부는 그런 조직이나 기구만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 갈등'으로 바람 잘 날이 없는 형국입니다. 차관 시절에도 석연치 않게 그만두었던 유진룡 장관이 지난해 해외 출장 중 해임 통보를 받고 쫓겨나더니 인사를 둘러싼 온갖 잡음이 들리고, 대통령 업무보고를 하는 1월 22일에는 1차관이 출근도 하지 않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러다 결국 사표를 냈는데 배경과 이유가 뭔지 도무지 아리송합니다.
아무개 차관이 ‘청와대 인사 개입설’의 배후이며 실세이고, 김진선 평창 동계올림픽 조직위원장이 사퇴한 것도 인사 장난이며 마사회 간부 인사가 어떻고 저떻고, 박근혜 대통령이 “나쁜 사람들이라고 하더라”고 지적한 사람들은 이렇고 저렇고... 문화체육관광부 사람들은 일은 안 하고 말질 고자질만 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또 걸핏하면 조직을 개편하는데 누가 더 청와대에 가까우냐에 따라 1차관과 2차관의 담당 영역이 수시로 달라집니다.
이 정부에서만 그런 것도 아닙니다. 이명박 정부 때도 1, 2차관의 업무가 왔다갔다 했습니다. 그때도 차관이 외부 행사에 다녀오는 길에 경질 소식을 들은 일이 있습니다. 조선시대의 육조(六曹)를 기준으로 하면 문화부는 예조(禮曹)의 고갱이인 셈인데, 인사가 난맥인 데다 고위 공직자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와 배려도 없습니다.
지금 문화체육관광부는 얽히고설킨 업무에다 심성마저 꼬인 사람들이 자리와 먹이다툼이나 하고 있는 곳처럼 보입니다. 9월 개관 예정인 국립 아시아문화전당 운영주체 결정이 난항을 거듭하고 있고, 3년 앞으로 다가온 평창 동계올림픽 준비는 지지부진합니다. 경기장 건설비를 누가 대느냐 하는 문제로 지자체와 문화체육관광부가 대립하고 있습니다. 제대로 굴러가는 게 하나도 없어 보입니다. 근본적인 문제는 새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타 부처 업무가 붙거나 떨어지는 게 반복되면서 처음부터 이해관계 충돌 요인을 안고 출범하기 때문입니다.
문화부를 별도로 독립시켜야 합니다. 문화부 장관을 문화업무에 전념하게 해야 합니다. 문화융성을 부르짖고 세계 속의 한류를 자랑스러워하는 나라의 문화행정이, 그리고 문화행정의 행정문화가 겨우 고작 이런 수준이어서야 되겠습니까? 문화부를 독립시키고 제대로 된 사람을 장관으로 임명해 창의적으로 소신껏 일할 수 있게 해 줘야 합니다.
임기 중이라고 해서 정부 조직 개편을 못할 것도 없습니다. 1968년에 발족된 문화공보부는 노태우 대통령 때인 1989년 12월 말 문화부와 공보처로 분리됐고, 바로 1990년 1월 3일 문화부가 신설됐습니다. 문화부 신설은 노 전 대통령의 임기 시작과 함께 이루어진 일이 아닙니다. 노 전 대통령은 이렇게 문화부를 신설하고 초대 장관에 이어령 씨를 모셔 문화행정의 기틀을 잡게 했습니다.
그런데 그 뒤 김영삼 대통령 때인 1993년 3월 문화체육부로 바뀌더니 1998년 2월 김대중 대통령 때 문화관광부가 되고, 이어 이명박 대통령 때인 2008년 3월 문화체육관광부로 몸집이 더 커져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새 정부 출범 당시 이 부처에 손을 대지 않은 대통령은 노무현 전 대통령과 박근혜 대통령입니다.
이제 문화부를 독립시켜 성숙한 문화국가로 나아가야 합니다. 경제부총리 교육부총리만 중요한 게 아닙니다. 문화부총리는 왜 안 됩니까? 문화 진흥을 하기 위해 독자적인 기구를 신설하는 것을 반대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사실은 신설도 아니고 엄밀히 말하면 복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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