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유 마시는 사람은 '어른아이' - 이상희 미국 UC리버사이드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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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동아 제공 아이스크림을 먹거나 우유를 마시면 괴로운 사람들이 있습니다. 속이 메스껍거나 배에 가스가 차고, 심하면 설사를 하거나 토합니다. 잘 알려져 있듯, 아이스크림이나 우유에 있는 탄수화물인 락토오스(유당)를 소화시키는 효소인 락타아제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 증세는 ‘유당분해효소결핍증(lactose intolerance)’이라고 합니다. 안타깝게도 이 증세는 고칠 수가 없습니다.우유를 매일 조금씩 마신다고 내성이 길러지지 않습니다. 다만 증세만 나아지게 할 수 있습니다. 락타아제가 들어있는 알약을 먹어서 외부에서 효소를 공급해 주면 됩니다.
이상한 건 우유 마시는 어른 미국에서는 한동안 우유를 못 마시는 증세를 비정상적인병으로 여겼습니다. 그런데 인류학자들이 문제를 제기했지요. 우유를 못 마시는 어른보다, 우유를 마실 수 있는 어른이 ‘비정상’이라는 것입니다.
실제 과학적으로 유당분해효소결핍증은 병이 아닙니다. 젖먹이 동물인 우리는 모두 락타아제를 만들 수 있는 유전자를 가지고 태어납니다. 그래야 엄마의 젖을 먹고 소화시킬 수 있으니까요. 아기가 태어나서 모든 영양을 모유로 해결하는 동안에는 락타아제를 만드는 유전자가 활발한 활동을 합니다. 그리고 이유기를 거치면서 락타아제를 점점 덜만듭니다. 젖을 떼고 어른이 먹는 음식에 의존할수록 락타아제는 더욱 줄어들고, 대신 다른 소화 효소가 많이 만들어집니다.
우유를 마시는 강아지. 강아지는 마시는 우유를 왜 인간 어른 은 견디지 못할까. 마실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istockphoto 제공 결국 어른이 되면 락타아제를 만드는 유전자는 활동을 멈춥니다. 우유를 소화시킬 수 없게 되지요. 유당분해효소 결핍증은 어른이 되면 자연적으로 나타나는 대단히 정상적인 현상입니다. 연구해야 할 증상은 오히려 어른이 돼도 여전히 우유를 마실 수 있는 ‘유당분해효소지속증(lactase persistence)’이어야 할지도 모릅니다.
세계 곳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조사해 보면 인류학자들의 말이 맞습니다. 전세계에서 우유를 마실 수 있는 어른은 각 인구 집단별로 약 1~10%에 불과합니다. 아시아의 대부분, 아프리카의 대부분, 유럽의 상당 부분이 속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정상적인’ 젖먹이 동물입니다.
그런데 어른이 돼서도 우유를 마실 수 있는 특이한 사람들이 대다수인 지역이 있습니다. 유럽의 스웨덴, 덴마크, 아프리카의 수단, 그리고 중동의 요르단, 아프가니스탄 등 입니다. 이들 지역에서는 어른이 돼도 락타아제를 만들어내는 사람들의 비율이 70~90%로 높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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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유 돌연변이’ 1만 년 이내 등장 이렇게 어른이 돼도 우유를 마실 수 있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지역은 모두 오랜 기간 목축업과 낙농업을 해 온 곳입니다. 우유를 비롯한 유제품이 음식의 주를 이룹니다. 그래서 학자들은 우유를 마실 수 있는 능력과 목축업, 낙농업 사이에 상관관계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꽤 설득력 있어 보이는 이 가설이 맞다고 밝혀진 것은 최근의 유전학 연구 덕분입니다. 어른이 돼서도 락타아제를 계속 만들어내는 사람들은 락타아제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락타아제를 만들어내는 돌연변이가 하나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유럽의 스웨덴에서 보이는 돌연변이는 아프리카의 수단에서 보이는 돌연변이와 염기 서열이 서로 다릅니다. 이는 스웨덴 사람들이 수단으로 이주하거나 반대로 수단사람들이 유럽으로 이주해서가 아니라, 지역별로 각각 따로 발생한 돌연변이라는 뜻이죠. 이런 락타아제 돌연변이가 지금까지 적어도 네 종류 발견됐습니다.
유전학자와 인류학자들은 이 유전자의 돌연변이가 나타난 시기를 연구했습니다. 유럽에서 낙농업은 신석기 시대이후에 시작됐습니다. 만약 유럽의 신석기인들이 락타아제 돌연변이를 가지고 있었다면, 이는 돌연변이를 원래 지니고 있던 사람들이 목축업과 낙농업을 했다는 뜻이 됩니다. 반대로 돌연변이가 없었다면, 목축업과 낙농업 때문에 돌연변이가 증가했다는 뜻이 되죠.
2007년, 독일 구텐베르크대와 영국 런던대 공동 연구팀이 낙농업이 정착되기 이전 신석기 시대 인골에서 고 DNA(조각조각난 옛날 DNA)를 채취해 분석했습니다. 그 결과 락타아제 돌연변이는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유럽에서 이 돌연변이가 본격적으로 증가한 시점은 낙농업이 시작된 이후가 됩니다. 이는 약 1만 년 전 이후로, 비교적 최근의 일입니다.
우유 마시는 인류는 왜 늘어났나 우유를 마실 수 있는 어른의 비율. 파란 쪽은 비율이 낮은 지역이고 빨간 쪽은 높은 지역이다. 세계 대부분은 녹색과 파란색(50% 이하)이다. 북서 유럽, 북서 아프리카, 중동 지역에 빨간 부분(90% 이상)이 집중돼 있다. 과학동아 제공 결국 락타아제 돌연변이는 목축업과 낙농업 때문에 증가했습니다. 이것은 돌연변이 유전자를 지닌 사람들이 그렇지않은 사람들보다 후손을 많이 남겨야 가능하지요. 반대로 우유를 마실 수 없는 사람들은 일찍 죽거나 후손을 많이 남기지 못해야 하고요. 최근인 1만 년 전에 발생한 돌연변이가 인구 중 최고 90%를 차지할 정도로 증가하려면, 자연선택을 대단히 강력하게 받았을 겁니다.
그렇다면 우유의 어떤 성분이 이렇게 삶과 죽음을 가를 정도로 중요했을까요. 여기에는 몇 가지 가설이 있습니다. 먼저 ‘우유를 마시면 키가 크기 때문’이 있습니다. 확실히 우유를 많이 마시는 북서 유럽 사람들은 키가 큽니다. 그런데 이들이 키가 큰 이유가 단지 우유를 많이 마시기 때문인지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우유 속 성분 중에 어떤 성분이 키와 몸집을 키우는지 화학적으로 정확하게 밝혀진 바가 없습니다.
칼슘과 단백질을 섭취하기 위해서라는 가설도 있습니다. 하지만 칼슘과 단백질을 얻기 위해서라면 우유 대신 소화하기 쉬운 치즈나 요구르트를 먹어도 됩니다(우유를 발효시키는 과정에서 락토오스가 소화시키기 쉬운 형태로 변합니다). 이렇게 ‘문화적인 방법’을 통해 적응하면 되는데, 굳이 돌연변이라는 ‘생물학적인 방법’을 이용할 필요가 있었을까요. 실제로 중동 지역에서는 낙농업이 발달했지만, 북서 유럽에 비해 락타아제 돌연변이를 가지고 있는 어른들의 비율이 그다지 높지 않습니다. 치즈나 요구르트 등 유제품의 형태로 우유를 섭취하는 문화 때문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우유를 통해 비타민 D를 섭취하기 위해서라는 가설도 있습니다. 비타민 D는 몸에서 칼슘을 흡수하는 데에 중요한 성분입니다. 햇빛 속의 자외선을 받아서 몸에서 직접 만들어내는 유일한 비타민입니다.
실제로 북서 유럽은 햇빛이 잘 나지 않습니다. 여기까지만 보면 이 가설이 타당해 보입니다. 하지만 다른 지역을 보면 맞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아프리카 수단은 햇빛이 잘 나는 지역인데도 락타아제 유전자 돌연변이를 지닌 비율이 높습니다.
결국, 우유의 어떤 성분이 삶과 죽음을 갈랐는지는 무수한 가설만을 남긴 채 여전히 풀리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도 이유도 모른 채 우유와 아이스크림을 맛있게 먹고 있습니다.
인류와 우유, 젖소의 공진화 목축업과 우유는 사람의 유전자를 바꿨고, 다시 사람은 가축 젖소를 변화시켰다. 젖소와 사람 모두 1만 년 사이에도 진화 했다. - BMC 진화생물학 제공 지난 1만 년 동안, 인류는 어른이 돼서도 우유를 마실 수 있는 돌연변이와 함께 진화했습니다. 그런데 사람만 변한 것이 아닙니다. 우유도 변했고, 우유를 생산하는 젖소도 변했습니다. 우리가 먹는 쌀이 야생미와는 아주 다른 맛이듯, 가축이 된 젖소에서 나오는 우유도 종자 개량을 거치며 맛이 바뀌었습니다. 사람 젖에 가까운, 사람 입맛에 맞는 젖으로 말입니다. 우리의 입맛에 맞게끔 우유의 맛을 바꾸기 위해 젖소의 유전자도 변화시킨 것입니다.
한때, 신석기 시대가 시작되고 농경 문화가 발달하면서 인류가 더 이상 진화하지 않았다고 생각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유전학과 인류학 연구를 통해 새롭게 드러난 인류의 모습은, 지난 500만 년 동안과 마찬가지로 최근 1만 년 사이에도 왕성하게 진화하고 있습니다. 동아사이언스 에디터 윤신영 기자 | 글 이상희 미국 UC리버사이드 교수 sang-hee.lee@ucr.edu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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